“전우여, 그대들은 미국에도 영웅”
서해교전 전적비 찾은 美 참전용사들 “차렷! 경례”
“한국선 잊혀져가는데…” 유족들 선물받고 눈물
9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사령부 내 충무동산. 지난 2002년 서해교전 전적비와 교전 당시 침몰했던 참수리 357호 고속정이 전시돼 있는 이곳에 벽안(碧眼)의 노병(老兵) 7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 ▲ 9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사령부 내 충무동산을 찾은 참전용사들이 서해 교전에서 사망한 한국 장병들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조인원기자 | |
전적비 뒤편에 세워져 있는 6개의 동판에서 발걸음을 멈춘 이들은 일제히 힘찬 거수경례를 올렸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서후원 중사…. 서해교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우리 장병들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들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미국 ‘센트럴 매사추세츠 한국전 참전기념탑 건립위원회(Korean War Memorial Committee of Central Massachusetts)’ 회원인 이들은 모두가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참전용사들. 서해교전 유족들의 초청으로 방한한 이들은 지난해 6월 전적비가 세워진 이후 참전용사로는 처음 찾는 손님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매사추세츠주에 191명 전사자가 새겨진 참전기념탑을 건립했고, 당시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30·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본부회대표)씨가 제막식에 참석하면서 인연이 맺어졌다.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프랜시스 캐롤(70) 건립위원회 회장은 “한국인들의 영웅은 곧 미국인들의 영웅이기도 하다”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웅들의 존재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판에 새겨진 한국 장병들의 얼굴을 한장 한장 정성스레 사진을 찍었다.
참전용사들이 경례를 하는 동안 유족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 윤영하 대위의 아버지 윤두호(62·해사 18기)씨는 “멀리 외국에서 아들들을 찾아와주니 고마워서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 잊어가가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적비에 헌화한 이들은 357호 고속정을 둘러봤다. “이곳 후갑판에서 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병장이 전사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통역 장교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귀울였다. 이들은 갑판 곳곳에 노란 색으로 표시돼 있는 총탄 자국을 일일이 손으로 어루만지기도 했다. 고 서 중사의 어머니 김정숙(49)씨 등은 아들의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안내판을 연방 손으로 닦아내며 흐느꼈다. 윌리엄 멀로니(75) 예비역 중장은 “그들은 자유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 진정한 영웅들입니다.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들을 기억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해군 제2회관에 마련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유족들과 정을 나눈 참전용사들은 매사추세츠 참전기념탑에 게양돼 있던 태극기와 본국에서 가져온 벽돌 한 장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한상국 중사 외 다섯 명의 해군들을 추모하기 위하여(In Memory and Honor of HAN SANG KOOK and FIVE FELLOW SAILORS 2002)’라는 글씨가 새겨진 이 벽돌은 미국에도 똑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5월 31일)에 이 벽돌을 참전기념탑에 올리면서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이름을 전사자명단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참전용사들은 떠나기 전 고인들의 부모들 앞에 일렬로 서서 힘찬 거수경례를 했고, 가족들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어색하게 경례를 받았다. 이들은 부모들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한 뒤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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