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사 오천년
흔히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일컬어 반만년의 역사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호국보훈 연혁의 개시를 일반적으로 1961년의 원호청 설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공식적 보훈정책은 1961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아직 백년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그 연혁이 반만년을 아우르는 한민족이라는 범주에서 호국보훈을 생각하면 태고적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는 호국보훈과 함께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 국가의 존속 및 발전의 기저에는 호국보훈이 깔려 있다. 즉 국가의 보전과 호국보훈 정책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보전 및 발전에 호국보훈은 그 필요조건으로 기능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기원 2333년에 세워졌다. 비록 직접적인 사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2200여 년 동안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그 명맥을 유지한 고조선에 호국수호의 정신과 그를 예우하는 보훈 시책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임에 틀림없다.
한민족사에서 호국수호의 정신을 최초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은 기원 108년 고조선의 멸망 시 최후까지 항전한 고조선의 대신 성기(成己)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거왕이 살해되고 수많은 중신들이 한나라에 투항하는 등 국가의 멸망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었음에도 대신 성기는 고국의 수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이른바 호국정신을 발휘하여 그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겼다.
한편 이러한 호국정신이 개인을 넘어서 단체의 수준에서 발현된 예로는 삼국시대의 호국단체인 신라의 화랑도, 고구려의 선비, 백제의 수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청소년 등으로 이루어진 군사단체로 정복전쟁 시대에서 요구되는 시대정신인 호국수호의 구체적 발현물이자 국민단결의 매개물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삼국통일의 주역으로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호국정신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호국수호의 영웅과 호국단체로서 삼국부흥운동군 및 고려의 삼별초 등에서 꾸준히 이어져 우리 민족 보전과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그 기원부터 호국정신을 발휘하였는데 그렇다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국가의 보훈정책 또한 존재해야 한다. 사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만족사 초기의 대표적 보훈기사는 서기 551년에 세워진 단양적성비문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공략함에 큰 공을 세우고 전몰한 야이차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포상하며 추후 야이차에 준하는 공을 세운 이가 있으면 그 후손에게는 대를 이은 포상이 있을 것임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훈정책 또한 우리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여러 국난 이후에는 각종 공신이 책정되었고 그들에게 지급되었던 공신전이라는 토지가 존재했다. 일례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은 사후 왕례에 의거한 안장절차가 이루어졌고 그 후손인 평산신씨 일족은 조선시대에도 국가 차원의 예우와 지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
더 나아가 1405년에는 이러한 유공자들을 전문적으로 예우하기 위한 이조의 속사(屬司)로서 고훈사(考勳司)를 설치하여 공신에게 봉작 또는 관직 추증 및 시호를 내리며, 이들의 능 또는 관련 전각에서 제사를 맡아보는 자를 관리하는 등의 사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처럼 호국정신 발휘와 그에 따르는 보훈의 예우는 한민족 오천년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해왔다. 왕조 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자를 기리고 그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수천년 전의 우리 조상들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신 혹은 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일차적으로는 유공자 및 그 유가족의 명예 및 생계와 관련되고, 이차적으로는 국난 등의 상황에서 국민들의 위국헌신의 정신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애국심의 선양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취가 이 땅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하는 길임을 당대인들도 이미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호국과 보훈의 연원을 역사적 견지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호국 및 보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며 아주 오래전, 즉 우리 민족이 국가를 세우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하나의 전통이자 문화요 한민족의 영원한 존속을 보장하는 상징 또는 정신 그 자체라는 점이다.
사실 전술했던 성기나 신숭겸 등의 사적, 고훈사 및 공신전 등의 세부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호국보훈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일이다. 지금 우리가 드러내 나타내야 할 충이란 바로 공신 혹은 유공자들의 호국정신 및 그에 따른 보훈에 관련된 사항이다.
우리나라 호국보훈은 반만년의 역사와 함께 이룩된 것으로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즉 호국보훈의 역사는 유구한 연원을 지닌 우리 민족의 정신이자 자긍심의 대상임을 인지하는 일이 현충일을 맞이하여 드러내 나타내야 할 충의 첫 걸음인 것이다.(Konas)
오제호 (의정부보훈지청 보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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