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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양보

Written by. 김인술   입력 : 2014-07-07 오전 11: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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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강의를 위해 가끔 남도기행을 할 때가 있다. 일전에는 안보강의차 경남 하동을 간 적이 있다. 강의를 마치고 지역 유지 몇 분과 식사를 하는 도중 인근 지명과 관련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 옥종면 ‘가마고개’에 관한 얘기였다.

 때는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 하동 땅 종화골에 사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비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인근에 있는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때마침 고개 넘어 안계골에 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집안에서도 딸을 출가시키기 위한 가마 행차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양쪽 집안의 가마가 고갯마루에서 만났던 것이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상대방 가문의 혼사에 대해 축하를 보내며 비켜 갔을 법한데 당시에는 사색당쟁이 한창이던 때라 서로가 먼저 비키라고 삿대질을 하며 대치했다고 한다. 길을 먼저 비켜주면 학맥과 학파를 굽히게 되고 체면이 손상되는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양쪽 집안의 가마가 고갯마루에서 꼼짝도 않은 채 며칠간을 버티게 됐는데 급기야는 이 소문을 들은 유생들까지 몰려들어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팽팽하게 맞선 양 가문의 대결은 결국 학파의 명예와 체면을 선택하는 쪽으로 판가름이 났다. 이에 집안의 큰 어른들은 가마에 앉아 있는 신부들에게 큰 돌덩이를 넣어주며 무언의 자살을 강요한 것이다. 이 돌덩이를 안고 양쪽 집안 규수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자 고갯마루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이곳 사람들은 이 고개를 가마고개라 부르고 있다고 했다. 결국 잔치 길이 돼야 할 길이 저승길이 되고 만 것이다. 극단적 대립과 체면의식이 가져온 어이없는 결과였다.

 우리 인간관계의 기본도 소통과 신뢰 그리고 화합과 양보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와 내가 있기에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며 네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상대성을 인식할 때 인간관계의 증진은 물론 조직사회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6ㆍ25전쟁도 동족의 화합을 망각한 김일성 집단의 불장난이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돼야 진정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이룩할 수 있고 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6·25전쟁 이후 2700여 회의 대남도발을 자행하고도 이를 시인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진정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 스스로 변해야 할 일이다.

 최근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GOP 총기사고도 집단 따돌림 또는 계급 열외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계급체계로 이뤄진 병영 내에서 계급의 존엄성을 무시한다면 군 기강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계급만을 강조하다 보면 그동안 군이 추구해온 병영가정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화합과 양보를 바탕으로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사랑을 베풀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낼 때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투력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 대치로 가문의 죄 없는 딸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마고개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인술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 출처 : 국방일보 7월7일 17면 '오피니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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