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미국이 월남 파병을 요구했을 때, 이를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광해군의 만주 파병 이후 약 350년 만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평화 헌법에 의해 해외로 파병할 수 없는 일본이 걸프 전 이후 차근차근 준비하여 이젠 사실상 전투병까지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아쉬워서 그럴까. 경제의 손길은 뉴욕에서 아마존까지 지구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군사의 발길은 동해 한가운데 작은 점 독도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일본은 이른바 정상 국가, 보통 국가, 다시 말해서 국제 사회에서 성인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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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년에 200억불 이상의 원유를 중동으로부터 들여오는데, 그 긴 항로를 미국의 함대 덕분에 공짜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이 중의 일부를 일본에 맡기려 하고 일본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돈은 들지만, 일본의 위상은 한껏 올라가고 장기적으로 보아 경제적으로도 그것이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원유 해상로가 위협에 처할 수 있는데, 이 때 일본이 그 일부를 지키게 되면, 원유를 싼 값으로 안전하게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맹주로 올라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동참 못한 우리나라는 값을 두 배 쳐주어도 원유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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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우리는 중국의 안보 우산에 들어감으로써 스스로 성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집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애어른으로 남았다. 군대가 있었지만, 선조 무렵에 이르면 이미 군대는 장부상의 군대로 전락했고 그것은 양반관료가 백성을 수탈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변질했다. 돈을 바치면 누구나 군에 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돈으로 군역을 면제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돈과 쌀을 강탈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일본이 쳐들어올 게 뻔했지만, 국제 사회에서 어린애였기 때문에 전혀 전쟁에 대비할 줄 몰랐던 것이다. 1,000만 조선인 중에 문신 이이와 무관 이순신 이 두 사람만이 성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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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우리는 군대를 창설했지만, 조선 5백년 문민 정치의 집단무의식을 물려받은 우리 위정자들이 군에 대해서 워낙 무지했기 때문에 정규병 한 사단을 동원해도 빨갱이 한 소대를 못 당할 정도로 군대가 허약했었다. 6·25를 겪으면서 세계 최고의 군대와 함께 일하면서 비로소 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 이후로 우리는 60만 현대 군대를 보유함으로써 비로소 한 국가로서 자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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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파병으로 한국은 고려 이후 600년 만에 비로소 국제 사회의 성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중국의 안보 우산 500년, 일본의 안보 우산 50년, 미국의 안보 우산 20년에서 벗어나 당당히 대한민국의 안보 우산을 쓰게 되었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그 이후로 우리와 대등한 국가가 되었다. 민심을 잃어 연전연패하는 미군이나 월남군과는 달리 따이한은 민심을 사로잡아 연전연승해서 미국과 월남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게다가 월남 특수로 한국은 호황을 구가했다. 월남 파병은 명예와 안보와 경제를 모두 챙긴 쾌거였다. 구소련이나 북한에서 보듯이 군사만 강하고 경제가 허약하면, 국가의 자존심만 세울 수 있을 뿐 국민의 삶이 공포와 기아에 시달리게 되는데, 우리는 월남 파병으로 한꺼번에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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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휴전선에서 대거 빠져나갈 뻔했던 미군이 2004년에 드디어 빠져나가고 있다. 그 당시 우리의 탁월한 선택으로 계속 머물러 월남파병의 대가로 현대 무기로 거듭난 국군과 함께 무력적화통일밖에 모르는 북한으로부터 안보를 지켜 주던 미군이 중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방비를 GNP 대비 6%에서 3%로 줄여 한국으로 하여금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해 준 미군이 대책 없이 자주 국방을 외치는 한국을 버리고 중동으로 성큼성큼 발길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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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안보에서 벗어나, 함께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싸운 동맹군의 손을 뿌리치고, 월남전을 통해서 이전의 형님 국가에서 친구 국가로 바뀐 미국의 손을 뿌리치고, 세계 12위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한국이 500년 동안 안보를 맡기고 스스로 성인이기를 포기했던 옛 시절로, 백성은 산과 들의 초근목피를 남겨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고 나라는 봄바람에도 쓰러질 만큼 허약했던 옛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 1300년 동안 금수강산을 속국으로 만들거나 일개 성(省)으로 편입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하는 중국을 영원한 구세주로 믿고 그 안보 우산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려 한다. 300만이 굶어 죽어도 최소한의 개혁개방 조치도 안 취하고, 나라의 근간이라는 노동자·농민은 여전히 거들떠보지도 않고, 협박과 구걸로 전세계로부터 빼앗고 얻은 식량으로 노동자·농민의 당이라는 공산당과 인민의 군이라는 군대만 높이 들어올려 그 정신력이 해이해지지 않을 만큼 먹이며 오로지 독재권력과 군사력 강화에만 혈안이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령님과 장군님의 나라를, 민족이란 이름으로, 평화란 이름으로, 자주란 이름으로, 무조건 용서하고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북한을 선망하면서 그 안보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한다.
안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6·25 동란, 월남전 --우리는 처절하게 경험하고 생생히 목격하고도 월남파병과 산업화로 모처럼, 600년 만에 유아단계에서 벗어나 늠름한 청년으로 장성한 나라가 지혜와 힘을 아울러 갖춘 장년의 나라로 올라설 생각을 않고 그리워 그리워 유아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엉큼한 중국의 빈 젖을 빨고 사악한 북한의 쓴 젖을 빨려고 한다.
최성재(자키모=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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