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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간첩 이선실 남한 간첩으로 몰려 고문으로 사망”

NK지식인연대 “1999년 심화조 사건때 처형” 제기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4-08-12 오후 4: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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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 최대 간첩사건인 ‘남한 조선로동당 사건’ 주모자로 알려진 거물 간첩 이선실(여·1916년생)이 1999년 ‘심화조’사건 당시 ‘안기부의 간첩혐의’로 체포돼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이선실의 사망 시기도 당초 알려진 2000년 8월이 아니라 1999년 말인 것으로 전해졌다.

 ‘심화조’ 사건은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안전성 내에 ‘심화조’라는 조직을 만들어 북한 고위급 2만 여 명을 간첩 등으로 몰아 처형한 사건이다.

 북한 전문매체 NK지식인연대는 12일 대북소식통의 말을 빌어 “(이선실이 심화조 사건 당시)미제의 간첩으로 남한에 있는 지하혁명조직들을 모두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북한)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한 임무를 받고 침투된 자로 규정됐다”고 밝혔다.

 이선실은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 전위정당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건너간 뒤 1980년 재일교포 ‘신순녀’로 신분을 위장해 한국에 침투한 이후, 민중당 대표를 맡고 있던 간첩 김낙중,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 400여명을 포섭해 북한을 지지하는 대중정당과 지하당 구축을 시도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92년 이 사건을 조사해 이선실과 협력한 김낙중, 손병선 등 124명을 검거했지만, 정작 이선실은 1990년 10월 강화도 해안에 대기 중이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밝혔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선실은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2중영웅, 국기훈장 1급, 조국통일상 수상자로 알려졌다.

 NK지식인연대는 이선실의 죽음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으로 북한이 2000년 11월 국가보위부 간부들 및 각 시, 군 당 부장급들에게 돌린 ‘민족반역자 채문덕 놈의 죄행’이라는 해설 자료에 있다고 설명했다.

 각 도보위부 자료실에 아직도 비치돼 있는 이 자료의 3페이지 중간 아래쪽에 서윤석에 대한 고문행위, 문성술에 대한 모략 행위를 언급한 다음 “수 없이 적후를 드나들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낸 혁명동지까지 고문으로 사망케 하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주인공이 바로 이선실이란 것이다.

 매체는 또 김정일이 ‘심화조 사건’을 총화짓는 자리에서 김정일이 직접 이선실을 애국열사릉에 잘 안장해 주라고 지시했으며, 애국열사릉에 있는 이선실의 사망날짜는 김정일이 지시한 날짜로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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