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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으로 얻는 것은 '안보공백과 불균형' 뿐이다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05-29 오전 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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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 공원을 찾아본 사람은 '한국전쟁 기념비'를 만난다. 이 기념비에 적힌 헌사(獻辭)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숙연해질 것이다. "자유는 값있는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 전사 미군 54,246명. … 실종 미군 8,177명 … 포로 미군 7,140명 … (1950∼53년)/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 만나본 일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응한 이 나라의 아들과 딸들에게 영광이 있기를"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구절들이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예상을 깨고 4일만에 참전을 결정했고, 1개월 후 대전에서 북한인민군과 첫 교전을 가졌다. 당시 파병 미군병력은 50∼60만 명. 전쟁 3년간 희생된 미군전사자·실종자·포로만도 근 7만명을 헤아린다. 어느 나라가 이처럼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며 그야말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만난 일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설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을 패망 직전의 빈사상태에서 구출해준 것도 미국이었고,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심어주고 시장경제원리를 가르쳐준 것도 미국이었다. 종전 후로도 남북 대치상황에서 반세기 이상 우리의 최전방을 지키며 안보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것도 역시 미국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미국에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부채에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신의(信義)이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희생자의 1/20수준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을 두고 8개월째 끌고 있다. 그나마 파병 결정 철회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닌데도 친북반미세력의 목소리에 밀려 지나치게 늑장 대응해 왔다. 우리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 이라크사태가 소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라크 국민들이 후세인 치하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경험한 것이 사실'이며 '자유를 확보하자면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럼즈펠드의 말은 음미할 만 하다. 

우리는 그동안 겉으로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에 한미공조를 '나 몰라라'하고 외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은 국제사회로부터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 일방적 통고는 바로 그런 처신에 대한 대가이고 경고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미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 전부터이다. 북한을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미국에게 '햇볕정책'에 동참해주길 촉구하면서부터 동맹관계는 속에서부터 곪아들기 시작했다. 북한을 '민족공조'의 대상으로 받아들여 대북 포용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미국은 구조적으로 우리 마음에서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의 지속'에서 국익을 찾아야 하는데도 우리 주위에는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의 '등맹(等盟)'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등맹(等盟)으로서의 '대등함'을 주장하려면 권한 이전에 책임이 따른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대등해지기 위한 책임을 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등한 책임'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대등한 국력(國力)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명제인 것이다. 그것이 등맹(等盟)의 전제조건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명분만의 '등맹(等盟)'주장은 '허구의 논리'일 뿐임을 일찍 깨닫는 것이 '깨어있는 사고(思考)'이다.

동맹관계는 '적(敵)이 같고 안보관(安保觀)이 같을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나마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휴전 반대'에 부딪힌 미국이 한국을 달래기 위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제의를 수락하여 획득한 이(李)대통령의 노련한 외교의 수확물일 뿐, 미국의 간청에 의해 이루어진 산물이 아니다. 더욱이 탈(脫)냉전시대를 맞아 한국의 전략상의 지역적 중요성은 당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미동맹이 파국으로 갈 경우 동아시아의 안보 주축은 미일(美日)동맹으로 넘어갈 것이고, 우리는 그 주변국으로서 안보균형이 깨진 남북대치의 안보공백상태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처럼 불행한 사태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을 갖고서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진 패권국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존 방법'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미국과 맹방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며, 미국에 유익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다시없는 '기회'인 것이다. 

그런 명분론을 잠시 미루어두고, 냉철하고 계산적이며 현실적인 관점에서 실리를 따져보더라도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가 국제사회에서 살아 남는 길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 유일의 초(超)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속시켜 나갈 것이고, 세계가 미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되어 갈 것임에 비추어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관계 유지가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를 최대한으로 키울 수 있는 투자이고, 국익인 것이다.

이런 미국을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측도 적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고 헤게모니의 본질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의 많은 나라들 역시 그런 오만을 마다 않고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실리 추구'라는 현실주의 노선 아래 국익을 쫒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와중에서 '무엇이 국익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유독 우리만이 낭만적 민족주의에 젖어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우물 안 개구리 식 논리를 강변하는 것은 '낡은 사고'일 뿐이다. 약소국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은 간교할 정도의 현명한 외교술이다.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분명한 축복이며, 우리 스스로 그 축복을 스스로 깨는 우(愚)를 범하는 일은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kona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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