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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줄게요. 대한민국!”

Written by. 김태영   입력 : 2014-09-17 오후 5: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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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세환)가 지난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 「제7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답사단 김태영(경상대학교) 대원의 소감문임. (편집자 주)

  “저는 지금 이 젊음을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의미 있게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의 한계에 도전하기였고, 그에 대한 것이 국토대장정이었습니다.”라고 참가 신청서 ‘지원동기’ 란에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처음 재향군인회 국토대장정을 신청할 때에는 국가 안보교육에 참가하기 보다는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2박3일의 일정 이지만 재향군인회 휴전선·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다녀 온 지금 이글의 제목처럼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1일차-6월25일>

 (6·25전쟁 64주년 행사 - 잠실실내체육관)
 서울에 비해서는 한없이 시골인 진주에서 상경한 나에게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로 신선한 경험이고 흔치않은 기회였다. TV에서 행사를 보여 줄 때에는 바로 채널을 돌렸던 나였지만 이번 6·25전쟁 64주년 행사에 참여한 올해는 누구보다 집중해서 행사에 참여했다. 진짜 사나이에서 보던 의장대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보고 푹 빠졌던 K-tigers의 공연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불러보는 애국가 1절부터 4절. 정말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수학여행 때 방문하고 두 번째로 다시 찾은 국립현충원. 분명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겠지만 참전 당시에는 내 친구들 또는 나보다 어린 동생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져왔다. 그리고 내 모든 마음을 담아서 진심어린 묵념을 했다. 현충원 안의 대리석에는 수많은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이름만 있고 유해가 없는 분도 있었고, 유해는 있지만 이름을 못 찾아 지하에 모셔져 있는 분들도 있었다.

 휴전이 된 지금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반쪽만 조국에 모셔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그냥 잠시 애도만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마음이 무겁고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라도 현충원은 다시 한 번 가서 수많은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한 마음 모두를 전달하고 싶다.

 (공군10전비)
 언니 밖에 없는 나로서 군대는 미지의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군대에 대한 막연한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드디어 군부대에 들어갔던 곳이 공군 10전비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비행장의 넓은 공터만 보고도 ‘우와!’를 연신 외쳤던 것 같다. 그냥 군대에 대한 신기함에 대한 감탄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공군의 철저한 준비와 장비에 대해서 감탄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장이 나서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전투기에 탑승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다리가 짧은 건지 아니면 전투기 의자가 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릴 때 있는 힘껏 다리를 찢어서 힘겹게 내렸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친구들은 쉽게 탑승했다가 내렸던 것 같다...

 (해군2함대)
해군 2함대를 떠올리면 아픔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해군 2함대에서 천안함이 사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진 채 원래의 모양대로 세워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피격되어 사라진 선체의 가운데만 봐도 사건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세월호 사건이 있어서 아픔이 두 배가 되었던 것 같다. 두 사건 모두 전말에 대해서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유족들에게 관심이 갔다.

 2함대에 도착했을 때 ‘엄마의 바다’라는 영상을 보여줬는데, 천안함 사건으로 먼저 자식을 떠나보냈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따뜻이 품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 나라를 위해 써달라며 성금으로 모인 큰돈을 기부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머니의 힘은 어디까지 일까?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넓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고 나부터 노력하리라 다짐했다.

 (애기봉 전망대)
 어렸을 때부터 ‘북한이 보이는 최전방은 어떨까?’ 궁금증과 ‘정말로 노루가 뛰어다닐까?’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애기봉 전망대에서 북한을 볼 수 있었다. 노루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평생 볼 수 없는 북한의 모습은 내가 환상을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그리고 북한에서 탈북하신 분이 북한의 대학교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간접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북한의 대학교는 우리와는 정말로 다른 제도로 운영되고 있었고 전쟁에 대해서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민족이 이렇게 서로에 대해서 경계하고 시간낭비·인력낭비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해병대 2사단)
처음에는 내가 내무반에서 잔다는 것이 신기하고 믿겨지지가 않았다. 부단장님이 출발 전 해병대 2사단은 시설이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넓고 깨끗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처음으로 밥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잠이 들기 전까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믿기지 않았고 신기하기만 했다. 군인들과 군필자에게는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2일차-6월26일>

 (해병대 제2사단)
 전시된 장갑차만 보다가 실제로 전투에 참가하는 장갑차를 보니까 그 위엄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장갑차를 조종하는 군인들은 더욱더 멋있었고 정말로 대단했다. 이때를 떠올리면 정말 사진을 많이 찍었었는데, 장갑차에서 내려온 군인들은 딱딱할 줄 알았지만 친구같이 해맑았고 친근했다.

 (6사단 수색대대)
총이나 무전기 등 전투 장비들을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2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하나는 미국까지 사용가능한 무전기이다. 넓다고 해봤자 국내에서만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국외까지도 무전기로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국내에서만 된다면 전시에는 한계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장한 군인이었다. 정말 더운 날씨에도 우리를 위해 완전 무장한 군인을 보면서 너무나 볼게 많았지만 빨리 우리가 떠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감사합니다!

 (노동당사, 도보 행군)
 드디어 행군! 노동당사에서 백마고지까지 4.1km. 1시간 남짓한 시간. 국토대장정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비록 짧았지만 길가의 식물들도 보고 조원들과 얘기도 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내년을 기약하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내년에는 많이 걷기 때문에 더 힘이 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값진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마고지 전적지)
 북한의 GOP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백마고지의 탁 트인 경치에 마음이 뻥 뚫렸고 그야말로 힐링이 되었다. 12차례의 전투로 고지점령과 탈환에서 24번의 번복에도 사수하기 위해 힘써 싸우셨던 국군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장정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항상 감사하자’이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태풍전망대)
 이번에야말로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진짜 최전방에 갔다. 북한의 농장도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내가 정말로 최전방에 왔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다. 전망대마다 군인이 설명해주었는데, 자주 반복해서 다 외우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설명해 주시는 것이 대단했고 말투와 억양은 한번쯤 따라 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1사단 신병교육대대)
 처음으로 여자 60여명 모두가 한방에 잤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생활관의 모습이었다. 다 같이 쓰는 방이라 처음에는 잠이 안 와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 때 든 생각이 ‘군인들은 더운데 훈련 받느라 힘이 들어서 바로 골아떨어지겠지’였다. 신병교육대라서 그런지 거의 군인 모두 까까머리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조금 불편한 부대이지만 하루 종일 긴장해 있다가 잠들 때는 얼마나 꿀맛 같은 곳일까 느낄 수 있었다.

 <3일차-6월27일>

 (도라 전망대)
 개성교를 지나서 도라 전망대를 갔다. 교과서나 뉴스에서만 보던 그 다리를 내가 지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아직도 S자를 그리며 지나던 다리를 잊을 수 없다. 북한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봤는데, 무게가 엄청나 축 처져 있는 인민기를 보고 북한의 허영심을 느낄 수 있었고 똑같은 지붕의 집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제 3땅굴)
 다이너마이트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전공. 손으로 닦으면 묻어나오는 위장 석탄. 길게 뚫린 땅굴을 보면서 이토록 북한은 남침을 준비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과연 이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3땅굴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안보현장에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온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다.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살펴보라’는 명언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과거를 무시한 채 미래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의 안보와 미래를 위해서 과거로의 여행과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Konas)

김태영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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