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 제막식 거행
1947년부터 2년간 해사 교관, 6·25 전쟁 발발 소식 접한 후 재입대...서울탈환작전 중 전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William Hamilton Shaw)의 흉상이 해군사관학교(경남 창원시 소재)에 건립됐다.
해군은 29일 해사 통해관 학술정보원에서 이기식 해군사관학교장(중장) 주관으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리사 프란체티(Lisa M. Franchetti) 주한 미해군사령관을 비롯해 한미 해군 장병 130여명이 참석했다.
해사는 쇼 대위 흉상을 사관생도가 가장 많이 찾는 학술정보원 1층에 설치해 그의 희생정신을 해사 생도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제막식을 준비한 조창용 해사 인사처장(중령)은 “생도들을 비롯한 해군 장병들이 쇼 대위의 흉상을 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게 감사하고 조국해양수호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쇼 대위는 1947년부터 2년간 우리나라 해사 교관으로 생도를 가르쳤다. 이후 그는 한국 해사 교관을 그만둔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으나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 해군에 재입대, 6·25 전쟁에 참전했다.
쇼 대위는 1950년 6월에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중에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이를 도우려 흔쾌히 가지 않고 전쟁후 평화시에 선교사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는 같은해 9월22일 서울탈환작전 중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 중이던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2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6월5일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서위렴(William E. Shaw) 박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서위렴 박사도 6.25전쟁 중에 미8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봉사했으며, 이후 한국군 군목제도 창설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 대위는 1956년 우리 정부로부터 금성 충무무공훈장,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추서받았다. 2010년 6월에는 서울 은평구에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되기도 했다.
한편,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는 서위렴 박사와 쇼 대위, 두 부자의 묘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쇼 대위의 묘비에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구가 새겨져 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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