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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교훈

Written by. 강경희   입력 : 2004-06-05 오전 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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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프랑스에서 북쪽 노르망디는 파리와 가장 가까운 해안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6월 6일) 60주년을 맞는 그곳도 강산이 6번 변한 세월 동안 전쟁의 자취는 가셨다. 여름철이면 피서객이 몰려드는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 되어 있다.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이번 주말, 노르망디에는 100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온다. 단지 역사책에 등장하는 이름값 하나 때문일까? 노르망디 일대를 둘러보면서 ‘관광 대국’ 프랑스가 지난 역사를 보존하고 보여주는 솜씨가 남다르다고 느꼈다.



노르망디에 들어서면 도로 표지판 중에 지명이 아닌, ‘오버로드-공격’ ‘D-데이 쇼크’ ‘목표지점-항구’ 등이라고 쓰인 색다른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연합군이 독일군과 전투를 벌인 경로를 따라 8개 답사 코스를 정해놓은 것이다. 이정표만 따라다니면 60년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쉽게 더듬어 볼 수 있다.



노르망디 도처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2차대전의 유물을 몽땅 모아 박물관에 모셔둔 게 아니다. 노르망디 전체가 거대한 ‘전장 박물관’이다.



연합군이 상륙한 해안에는 D데이에 동원됐던 인공 방파제며, 부표의 낡은 흔적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60년 세월 동안 파도에 쓸려 해초가 덕지덕지 앉은 콘크리트 잔해는 과거에 얹힌 세월의 더께를 보여주면서 색다른 감동을 자아냈다. 독일군 벙커에서는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 술래잡기 하면서 놀고 있었다.



지난 역사를 보여주는 방식도 담담했다. ‘그날의 비극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우격다짐하거나, 승자의 역사에 도취되거나, 피해받은 역사를 과장하지도 않았다. 60년 전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충실하게 보여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노르망디 일대에는 미국 병사나 영국 병사의 공동묘지만 있는 게 아니다. 적군이었던 독일군 공동묘지도 있다.



전쟁기념관에서 틀어주는 기록영화도 아예 내레이션을 생략해버렸다. 연합군의 승리와 프랑스 해방을 감격어린 목소리로 전하는 게 아니었다. D데이가 다가오는 시시각각, 한쪽에는 독일군, 또 다른 쪽에는 연합군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주면서 당시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이 기념관에서는 D데이 당시 병사들의 편지와 일기를 모은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물론 독일군 병사의 것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미국인과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각기 다른 감회에 잠길 것이다. 하지만 내 편, 네 편을 넘어 그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아까운 젊음들을 본다. 그들을 잃은 가족의 슬픔도 함께 느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을 맞던 10년 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글을 썼다. “노르망디가 주는 교훈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올바르게 나라를 이끌어야 병사들이 피흘리는 비극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이유도 증오와 분노와 편협된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서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서 실패의 교훈을 얻고 극복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노르망디 60주년 기념행사가 세계적 관심 속에 치러지는 그날, 한국은 현충일을 맞는다. 곧 한국전쟁 54주년도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그날을 잊지 않고 있는가?   (chosun.com)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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