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발굴 현장 흑백사진으로 54년만에 형 찾아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어머니 만나 행복하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셨습니다"
호국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현충일인 6일 6.25전쟁 전사자 유해에서 나온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이 54년동안 애태우던 형의 행방과 함께 그 마지막 격전의 현장을 확인시켜주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육군 27사단이 지난 2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2리 전사자 유해발굴현장에서 발견한 흑백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의 형(나영옥.당시 18세) 이라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된 나영일(59.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이날 오전 서둘러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반세기전 홀연히 떠나갔던 형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영일씨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유골 품안에서 나온 사진이 자신이 53년동안 지녀왔던 형님의 사진과 동일함을 한 눈에 확인하고 군부대로부터 사망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회에 젖었다.
이어 반세기 가량 행방조차 모르고 지냈던 형이 유골로 누워 있는 유해안치소 내 관위에 가지고온 영정사진을 올려 놓고 큰 절을 3번 올렸으며 동생 옥자씨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 전쟁터에 나간 오빠 때문에 아버지는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라며 흐느꼈다.
이번에 영일씨 등 8남매 가운데 살아남은 4남매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형이 5사단 36연대 본부소속 상병으로 지난 1951년 1월말~2월초께 이곳 중부전선 화악산 기슭에서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와 맞서다 생을 거둔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일씨가 백골로 대면한 형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0년 전쟁발발후 전남 벌교에서 법원 등기소 서기로 근무하다 부산 피난지에서 학도병으로 자원해 낯선 전선으로 떠나버린뒤 54년만이었다.
순천사범학교에 다니던 형은 당시 고등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였으나 민족의 불행인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병으로 나섰다 생전 인연도 없던 중부전선 화악산 기슭에 묻히게 됐다.
영일씨는 "당시 형은 법원 등기소 서기로 근무할 때 비닐에 넣은 사진이 땅속에 묻혀 눌리면서 코팅된 것처럼 됐다"며 "동일한 다른 한 장은 어머니와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들은 코팅이 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후 휴전협정과 함께 3년간의 포성이 멎었지만 손꼽아 기다리던 형은 돌아오지 않으면서 행방불명 상태가 됐다.
이에 따라 행방을 모르는 형을 그리워하던 영일씨는 현충일에 꽃을 한 다발 들고 동작동 국립묘지의 묘비를 찾거나 설 등 명절에는 밥을 한 술 떠 놓고 형의 기억을 더듬어야 했었다.
나씨는 오는 17일 27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실시되는 합동 영결식에 참석, 국립묘지에서 영면할 형을 배웅할 계획이다.
영일씨는 "착잡하다. 떨려서 말이 안나온다"면서 "이북 국군포로 이야기가 나오면 혹시나 형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찾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사진의 주인공은 당초 생각했던 1951년 4월 가평지구전투에서 숨진 것이 아니라 1월말이나 2월초 화악산을 타고 내려오는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와 관련된 전사가 아직 없기 때문에 좀 더 확인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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