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 해외서 홀대받는 독립유공자 후손
“광복 70주년 계기로 국민적 배려와 각성을! 독립운동가 등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더 크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초석”
2015년, 광복70주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가 지나고서도 20년 세월이 지난 시점이자 어둠의 장막에 휩싸인 북한과 분단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해방둥이로 태어난 갓난아이가 이젠 고희(古稀)로 접어들 정도로 시간은 흘렀다. 70년 기간은 파란과 격동의 굴곡진 현대사로 극한 좌우이념대립과 배고픔, 전쟁의 공포에 이은 산업화, 현대화, 민주화로 이어진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그렇다면 고희와 함께 한 세대가 바라보는 우리 현대사, 그 삶의 연원으로 발원되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감회는 어떨까?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동 시대를 함께 해 온 독립군 후손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어떨까? 우리사회는 얼마나 이들 독립군 후손들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을까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광복 70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70년 전, 우리 민족 모두는 하나 된 마음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함께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광복을 기다리던 그 때의 간절함으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우리의 소원인통일을 이루기 위한 길에 나서야 하겠습니다”고 모두에서 밝혔다.
‘통일대박’ 주창 대통령다운 발언으로 본다. 광복이전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역경, 잔혹한 만행과 죽음의 계곡을 넘나들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광복을 염원하던 선열들의 불꽃같은 삶에 빗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이 ‘우리의 소원-통일’을 위해 그 날의 투혼을 불사르자는 강렬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랬다. 70년 前 우리민족의 소원은 ‘대한독립만세!’ 독립이었다. 그 독립이 자주독립이며 완전하고도 영원한 자주독립이었다면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의 국민의 소원은 민족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안겨주고 ‘대박’을 가져다 줄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양단된 국토를 하나로 묶고, 남남·남북으로 갈라지고, 뭉개지고 짖이겨진 민족을 하나 된 민족, 하나의 국민으로 엮어나가야만 하는 당위성이다.
뉘라서 여기에 토(討)를 달 것인가? 70년 전, 하얀 베적삼 한복 옷에 태극기 들고 거리거리를 누비며 일제로부터의 해방, 독립과 광복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출했을 선인들의 모습과 함께 또 하나의 해방, 미래 통일한국시대를 우선 떠올리매 지난날 독립운동에 일신을 바친 후손들의 고단한 삶에 송구하고 안타까움이 짙게 스며 듬은 의당 당연한 이치인가 싶다.
1월3일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해외거주 일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을 조명한 ‘신년 기획시리즈’가 방영됐다. 연해주 거주 최재형 선생의 손자와 홍범도 장군 외손녀의 팍팍한 생활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최재형 선생. 러시아 연해주의 갑부로 안중근 장군의 독립운동을 적극지지하며 전 재산을 독립 운동에 썼던 독립운동가 였지만 독립자금을 댄 사실이 일본군에 포착돼 총살된 뒤 자녀 11명 가운데 5명도 총살되거나 수용소 생활을 했으며, 현재 그의 손자만이 남아 우리 정부의 지원금마저 끊긴 채 침대도 없는 단칸방에서 궁핍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홍범도 장군 외손녀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항일 무장 투쟁의 상징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김얄라, 72)는 이날 인터뷰에서,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홍범도 장군이 생계를 위해 학교 경비를 서기도 했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 자신을 안고 낮잠을 자다 사망( 1943.10.25)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 필자가 유년시절부터 교과서에서 이름을 빠트리지 않고 봐왔던 용맹스런 장수의 표상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김좌진 장군과 더불어 만주지역에서 신출귀몰하며 일본군을 벌벌 떨게 만든 호랑이 장수로 회자되는 독립군사령관 아니던가. 1868년 평안북도 자성에서 태어나 지방과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을 벌였고 1920년 6월과 9월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하지만 1937년 조선족 고려인들이 쓰라린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한을 품고 그랬듯이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했다가 사망.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다.
치욕스런 아픔과 뼈를 깎는 듯한 고통, 피로 점철된 일제 강점기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그 숱한 독립선지자들의 영욕(榮辱)의 삶을 어찌 다 거론하고 거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아직도 간도를 위시한 연해주 등지에만도 많은 그들의 후손과 독립운동 근거지며 흔적들이 미진한 연구와 함께 버려지고 방치되고 있다하니 세계10위권 경제 강국 운운하는 그 자체가 자괴감(自愧感)에 젖게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제는 달라져야 할 줄 안다. 우리는 기필코 찾아내야 한다. 기록되어져야 할 것이고, 찾아와야 한다. 뼛조각 하나라도, 너덜해진 종이 한 장에 옷고름 하나라도 소홀히 버려지게 해선 안 될 것이며, 말 타고 달린 광야의 한 지점, 그분들이 숨 쉬고 활동했던 흔적이라면 표지판이라도 세워 후대를 위한 교훈으로 새길 수 있도록 국가적 노력 또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8월 구한말 역사의 흔적을 찾아 중국 길림성 일대 용정시에 이은 도문시를 돌아보면서 두만강 변 필자가 서있는 지점으로부터 불과 40여리 지점에 홍범도 장군과 대한독립군 등이 일군(日軍)을 섬멸했던 봉오동 전투 지역이 멀지 않음을 확인하고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용솟음치는 소용돌이가 일어남을 숨길 수 없었다. 대(大) 한민족의 피어린 역사이자 웅자(雄姿)요, 발자취가 서리서리 맺힌 곳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렇듯 국내는 말할 나위 없고 만주에서 연해주, 하와이 등 해외에서 투쟁한 이름 있는 독립운동가에서 성명 석자 남기지 못한 무명의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전 재산과 목숨까지 바쳤던 독립운동가들. 그러나 지금 보상받아야 할 그 후손들은 고단한 삶을 대물림하고 있다.
광복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 계기 분단 70년을 극복하자’는 기치로 국민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통화통일 기반 구축’의 뒷받침 정책이다.
환영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이나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도 바르게 세워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철저한 뒷받침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국가를 위해 일신을 바친 분들에 대해서는 여하한 경우라도 국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범국민적 동참과 함께 예산으로 적극 뒷받침해주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 재산과 생명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사회적 도움이나 배려의 손길에서 배제된 채 고단하고 지난(至難)한 삶을 살아온 사실을 익히 들어 왔다. 70주년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과 각성도 새롭게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싶다. 더 이상 홀대받는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국가를 위해 위국헌신(爲國獻身)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내일의 더 크고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지름길이 되기도 한 까닭이다. (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수필가. 객원기자.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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