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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본 한민족 이야기

Written by. 최기출   입력 : 2015-02-21 오전 8: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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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해군에서 현역시절 유학, 해외출장 그리고 사관생도 순항훈련 참모와 지휘관으로서 그리고 전역 후 스리랑카 대사로 재직하면서 오세아니아주, 동남아 및 서남아주, 발칸반도를 포함한 유럽과 중동, 북미주 등의 30여 국가들을 방문할 수 있는 남다른 행운을 가졌었다. 오늘은 필자가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몇 가지를 전하고자 한다.

  한민족의 이동 흔적

  필자가 해외방문을 통하여 경험한 바에 의하면 세계화는 인류가 탄생하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세계화의 전파속도가 느렸을 뿐이지 인류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가 곳곳에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 예로서 1994년 필자가 순항훈련부대 사령관으로 방문하였을 때 주필리핀 한국대사가 들려준 이야기다. 필리핀의 한 섬에 한국인과 같은 모습이고 우리와 같은 족보책을 가지고 있으며, 김(Kim)씨 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1996년)』을 저술한 윤명철 동국대 역사학 교수가 당시 순항훈련부대에 편승하였었는데 그분의 뗏목항해 경험에 의하면 우리 남해안에서부터 일본 서측연안을 따라 필리핀까지 해류가 흐른다고 하여, 한민족의 필리핀으로 이동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필자가 스리랑카 대사시절 외교적 수사로 사석에서 자주 사용했던 이야기였는데 고대 가락국의 수로왕의 왕비인 허씨가 돌배(Stone vessel)를 타고 한반도로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허씨는 인도의 아유타 왕국의 공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 KBS방송국에서 수로왕 묘에 있는 그 돌의 성분을 확인한 결과 인도의 동남부의 아유타 지역에 있는 돌과는 일치하지 않고 스리랑카 북부지방의 돌과 특성이 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스리랑카 고대왕국은 바다에 왕의 공주를 바치는 전통이 있었는데 당시의 왕이 자기가 사랑하는 딸을 그냥 바다에 던져 죽게 할 수 없어 배의 부력을 보장해줄 수 있도록 배 밑에 무거운 돌을 장치하여 안전항해가 가능하도록 해주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일리가 있으며, 말레이 및 베트남에서부터 중국연안을 따라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해류가 흐르는 해양특성을 고려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언어 중에는 밧(밥), 강가, 엄마, 아빠, 일릭와(이리와)는 우리의 말과 같은 것이 많아 공항에서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를 때 우리나라 어린이로 착각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세계화의 예로서, 방글라데시를 1994년에 방문했을 당시에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약 2백만 명의 한국인 후손들이 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아직도 우리의 지게를 사용하고 있고 우리의 말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손재주가 뛰어나서 방글라데시 치타콩(Chittagong) 항에 진출한 우리 해외진출 기업의 현지공장에 여직공으로 3만여 명이나 취업해 있다. 그들이 설명하는 정착 유래는 방글라데시가 옛날 실크로드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 상인들이 그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대에서부터 그 교류의 속도는 차이가 있더라도 최근의 폭발적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경제적·문화적 세계화의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지만 역사 속에서 세계화는 지속되어 왔음을 우리 민족의 이동사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재미난 문화와 자연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면서 배우게 된 상식들이 기후나 토양 그리고 문화가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 상식이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여행안내를 받기 위하여 주재국의 한국대사관 홈페이지나 여행안내서 등을 이용하여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생활양식 등에 대하여 공부하게 된다.

 필자가 방문했던 열대지방의 농업위주의 후진국가이거나 남태평양지역의 섬나라일수록 시간개념이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는 한국인들이 약속시간보다 30분 내지는 1시간 정도 늦게 나오는 것을 빗대어 미국인들은 Korean time이라고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스리랑카, 휘지, 미국령 사모아 등과 같은 국가들의 공식 비공식 행사에서 흔히 겪게 되는 경험이다. 스리랑카에서는 통상 만찬 초청장에 오후 8시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간에 맞추어 가면 손님들이 아무도 오지 않고 주인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초청장의 8시는 그 시간 이후 언제든지 와서 준비한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이지 우리와 같은 칵테일을 시작하거나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다. 식사는 빨라야 9시 늦으면 10시경에 시작하고 자정이 넘도록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필자는 2008년부터 3년간 스리랑카 대사로 재직 시에 이를 두고 Srilankan time이라 말하기도 했다.

 1986년 필자가 휘지와 미국령 서사모아를 방문했을 때다. 그곳 역시 열대지방이다 보니 예방시간을 맞추어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그 섬나라 총독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질 않았다. 여비서 역시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곧 도착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결국은 예방을 취소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휘지에는 식인박물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을 때는 사람 머리의 정수리에 숨구멍이라고 부른 곳을 내리치면 바로 죽는다고 그 안내원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필자는 호기심이 발동되어 어느 부위가 가장 맛이 있느냐고 50대 정도 된 그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자신이 어릴 때 사람고기를 먹어본 경험으로는 손바닥 살이 가장 맛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또 다른 예로서 함정을 운항하는 해군장교라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식으로 함정이 투묘를 해야 할 경우 수심이 얕은 연안 가까이 접근하여 투묘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다. 겨울철 흑해의 연안에 투묘를 시도하고자 연안에 접근하면 할수록 더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는 사실이다. 그 해역은 흑해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코카사스산맥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함정이 접근하면 할수록 육지 근처가 더욱 세찬 바람이 발생하여 함상외부 갑판에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항해정보는 대사관 홈페이지에도 없는 내용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바다에서의 안전항해에 무관심하였는가를 많이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인천과 평택, 목포 수로를 다니다보면 아직도 항해안전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다. 유럽의 영국이나 독일 항구의 긴 수로를 통항해보면 수로 중앙에 항로표지(航路標識)인 부표가 설치되어있어 주야간은 물론 저시정 하에서도 함의 위치를 측정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항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가 자동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려면 교통신호가 도로에 잘 설치되어야 충돌의 위험이 적다. 이와 마찬가지로 긴 수로를 가지고 있는 인천이나 평택 및 목포항의 경우 야간에 이용하는 등대가 있을 뿐 이러한 부표가 수로 중앙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선박출입에 어려움을 항상 느끼게 된다. 따라서 해군은 함장이 협수로를 통항할 때에는 함교에 항상 위치한다. 우리의 인천이나 목포의 항만청장은 유럽과 같이 항만 내의 항로표지에 투자를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정부의 주요부처 직원들에게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해외출장을 가는 것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해외를 방문하다보면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스리랑카대사 시절 우리 기업들이 주재국에 진출하려면 투자청과 투자 상담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스리랑카 정부의 투자청에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어를 잘 사용하는 친한 공무원을 확보해두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서울대 한국어학원에 무료로 1년간 연수를 받도록 하였다. 그 공무원이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는 300년이 되어야 한국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한국인들은 정말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의 처리속도가 너무나 신속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 모두가 너무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는데 한국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시아를 방문하며 느끼는 것은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아시아에서는 제일 미인이 많은 것 같다. 유럽을 방문하고 나면 우리보다 더 잘살고 여유가 있어 보이며 과거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역동적이지 못하며 활기가 없어 보인다.

 북미를 다녀보고 나면 유럽의 북부나 남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의 풍요를 아직도 느끼게 된다. 중동국가를 방문하고 나면 아직도 계층적 차이와 남녀의 차별화가 생활 속에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차츰 개방화됨에 따라 그 변화는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도를 통해 느끼게 된다.

 필자의 4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해외 방문경험을 아주 짧게 소개했지만 어느 나라든 방문하고 나면 장점과 단점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장교이며 공직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우리의 장점은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단점은 계속 고쳐나가는 국민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은 5천만의 적은 인구를 가진 천연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이지만 우수한 인재와 높은 교육열을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많은 국가로서 세계의 13대 경제대국이다 8대 수출대국이다. 이처럼 한국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해외방문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 애국자가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기출 (예비역 해군 중장)

* 출처 : 월간 자유 2월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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