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3·1절
“독립의 염원을 세상에 부르짖은, 용기 있는 민중들을 기념하는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해야”
3·1절 전날 당직근무가 돌아와 3·1절 당일아침 청사에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데, 조기를 달아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국기법 등 관련법령을 찾아서 3·1절은 국경일이므로 조기를 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기념일에 태극기를 달아본 적이 없었던가, 3·1절은 조기를 달아야 한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슬픈 역사로 기억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 계기였다.
3·1절은 10여 년간의 일제의 무단통치로 억압받던 우리 민중들이 맨손으로 일제에 대항하여 만세를 부른 날이다. 고종황제의 독살이 의심되는 서거, 美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결정적으로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이루어진 조선유학생들의 ‘2·8 독립 선언’으로 국내 지도층들과 학생들은 그간의 분노와 독립의 희망을 한데 모아 3월 1일에 분출하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학생과 종교인이 중심이었지만 일제의 잔인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농촌 전역으로 퍼져나가 노동자,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민중들의 참여로 독립만세운동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독립의 염원을 맨몸으로 부르짖는 민중을 일제는 무자비하게 총검으로 살해하였고 감옥으로 끌고 가 끔찍한 고문으로 사망케 하였고 제암리 학살사건처럼 성인남자들을 모조리 가둬놓고 불을 질러 학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통계에 따르면 시위에 직접 참가한 인원이 200여만 명, 총 횟수는 1,542회나 되며, 전국 213개 군 중에서 203개 군이 시위에 참가했고, 시위에서 사망한 사람만 7,509명, 부상자가 15,850명, 체포된 사람이 45,306명이나 된다.
그 당시 인구가 2000만여 명이었다고 하니 목숨을 걸고 나선 만세를 부른 이들이 全 인구의 10%라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거족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아 더욱 비장하고 위대한 3·1운동은, 작고 힘없고 일제에 순종만 하는 줄 알았던 조선이 아니라고 떨치고 일어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힘이었다.
3·1절은 슬프고 비통한 날이 아니다. 독립의 염원을 세상에 부르짖은 용기 있는 민중들을 기념하는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하자. (Konas)
박경옥 (서울북부보훈지청 복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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