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가 더 이상 '정치논리의 담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파병결정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 뭐라 말할 수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공직자들,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민족공조'와 '반미(反美)'를 외치는 정치세력들-, 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군(軍) 입대(入隊) 젊은이들을 '비(非)양심'으로 단죄한 일부 법조인들, 북한은 군사력을 계속 강화하는 추세인데도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서는 '바짓가랑이 붙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질 않느냐'는 수사(修辭)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드는 정책결정자들-.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이토록 어지럽기만 하다.
주한미군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태평양 건너 반세기를 이어온 돈독한 한미동맹의 상징이었고, 북한의 대남(對南)도발 억지의 일등 공신이었으며, 양국관계를 이어주는 '신뢰의 탯줄'이었다. 바로 이들 상당수가 이 나라를 떠난다.
정부당국은 이에 대해 '미국의 해외주둔병력 재편계획(GPR)'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왜 남한 방어를 위해 우리 아들들이 고생을 해야 하고, 왜 한국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미국 국민의 질의에 진지하고도 성실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북핵문제는 어떤가. 우파적 사고(思考)라면 지난 1년 여 기간동안 북핵문제에 있어서 당연히 "한미공조를 통해 미국과 손발을 맞춰 해결해 나가겠다"라고 해법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하고서' 그런 메시지를 한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
"북한 핵(核)은 통일 후 한민족의 자산이 된다" "북한은 한 핏줄이지, 주적(主敵)이 아니다" 이런 궤변들이 도처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도 놀라지 않는 세상이 됐다. 그런 논리라면 똑같은 이치로 북한이 보유하고있는 엄청난 양(量)의 생화학무기와 특수부대까지도 '한민족의 자산'이란 등식(等式)도 성립된다. 어이없는 일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정계와 시민단체에 친북·좌경·반미·반군(反軍)성향의 세력이 부쩍 그 세(勢)를 더해가고 있다. 이들은 원내와 원외(NGO)에서 공존체제를 구축하고 '여론(輿論)몰이'와 '이어 받기'식의 배튼·터치(batton touch) 대응으로 좌파이념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좌파이념이 '진보와 개혁'이란 미명으로 이 사회에 파고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고 자유민주헌정체제를 유린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YS정권 초기에 이어 DJ정권 이후 급속히 팽창해오다 4·15총선을 계기로 좌파진영이 의회 내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들 진보진영이 안보외교정책까지도 '자주'를 앞세운 진보이념으로 포장될 경우 한미동맹관계에 균열을 자초할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반세기 넘게 혈맹으로 존속해온 한미동맹체제가 '해체(解體)프로세스' 수순(手順)을 밟게 될 것임은 어느 누구라도 예단할 수 있는 사안(事案)이다.
친북적 진보주의자들은 오히려 'DJ정부의 햇볕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공조' '민족제일주의'를 내세워 친북사상을 부추기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6·25 전후 처형된 좌익분자들의 명예회복까지도 겨냥하고 있는 어제오늘이다.
일부 진보세력은 자신들의 복고(復古)적 국수(國粹)적 망동을 '개혁적'이라고 믿고 이 나라의 주축인 보수세력을 '냉전적 사고' '사대주의' '반(反)통일분자' '친미(親美)반동분자' '늙은 수구(守舊)골통' 등으로 매도하면서 세력확장에 나서고 있다.
21세기 신(新)국제질서 하에서의 공유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협력적 안보'(연합방위)체제이다. 우리의 지정학적 운명과 분단국가로서의 현실은 자력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있는 안보환경이 아니다.
보수주의가 지향해야 할 분명한 목표와 가치는 민족보다는 '국가', 통일보다는 '평화', 민족공조가 아닌 '한미공조'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해법(解法)이다.
한시도 대남(對南) 적화야욕의 망상을 저버린 적이 없는 북한당국의 슬로건인 '민족공조' '한반도 평화' 등의 용어에 매달려 일부 몰지각한 시민단체의 '주한미군 철수' '한미공조 반대'에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안보정책은 대다수 국민에 대한 철저한 우롱이다.
'부루스·커밍스의 한국전쟁 북침(北侵)설' '노암·촘스키의 한국군 베트남전(戰) 양민학살론' 등을 금과옥조로 믿고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진보'일 수는 없다. 친북(親北)성향의 전교조(全敎組) 소속 교직자와 '만경대정신 운운'하는 몰지각한 용공인물들이 인기몰이를 하고있는 교육계가 정상일 수는 없다.
진보진영에게는 북한당국이 '화해협력의 대상'일 뿐,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과거 서독의 사민당과 같은 진보세력이 아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야 '진보'일 수는 없다. 그런 논리는 허구(虛構)이고, 허위의식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나라의 정통적 안보관을 신봉하는 전쟁억제론자일뿐, '호전적 전쟁개입론자' '국수주의자' '친미 사대주의자'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이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지켜내고 발전시켜온 기성세대들을 무조건 폄하함으로써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망국적 작태야 말로 바람직한 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세력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몸바쳐 지켜온 신도로서의 긍지를 갖고 왜곡·굴절·편향된 '진보세력의 망동'에 대해 일대반격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침묵할 일이 아니다. (kona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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