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보는 눈
올해 초 미국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미래 한·미동맹과 관련된 주제를 토의하던 중 한 미국 측 참석자가 우리 국내 언론에 보도된 대미 인식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면서 한국인들의 안보관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다.
전반적으로 미국 측 참석자들의 어투나 표정에 나타난 반응은 일종의 당혹을 넘어 배신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어느 국가에서나 여러 가지 쟁점에 따른 반미 분위기는 존재하며,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정착돼 가는 한국 사회 내에서 과거 억눌린 목소리들이 보다 강하게 표출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필자 역시 입맛이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반미적인 것이 민족적이거나 애국적인 것과 동일시되고,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한·미동맹의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음을 필자 역시 알고 있다. 탈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자신감이 다른 국가들에는 오만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외교 정책이 특정 국가에 편향된 점 역시 반발감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반미 분위기의 일단에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미국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기존과는 전혀 다른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원주의 사회 내에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는 우리 사회가 성숙해 가고 있다는 지표라는 점에서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러 담론들이 치밀한 토론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에게 확산될 경우 정제되지 않은 편견과 증오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가치는 절대적인 선(善)이며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식의 맹종을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무비판적 친미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것이 미국과의 오랜 정치·경제·군사적 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발전해 온 우리의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맹목적 반미라면 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가치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과거의 시점에서 자신들이 마음속으로 그린 미국의 이미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더 이상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상수(常數)가 아니며 자신들의 세계적 이익과 대차대조표에 따라 대(對)한반도 전략, 그리고 동맹 정책 자체에 대한 변화를 검토하고 있다.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미국의 자본과 외교력, 그리고 대(對)한반도 공약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있어 여전히 주요한 자산이 되고 있음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우리로서는 보다 냉철한 입장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타적 증오와 편견만으로는 미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우리 내부의 상호 불신과 대립을 조장할 뿐이다. 극단을 배제한 합리적 의견 수렴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미국을 과거가 아닌 ‘오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