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기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Written by. 김관철
입력 : 2003-10-02 오전 8:28:49
이라크 파병찬성- 파병, 국익부터 생각해야-신지훈
이라크 파병반대-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전철 밟는 길- 강정구
[수요프리즘]신지호/派兵, 국익부터 생각해야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니 대개의 경우 불일치한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라도 일반 대중은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은 관계로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속성을 지닌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의 이격도(離隔度)를 축소시켜 줄 뿐이다.
▼ 지도자는 매맞을 각오로 결단을 ▼
그다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가족의 생계와 앞날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식들이 “아버지, 그렇게 살지 말고 때려치워”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는 사표를 낼 수 없다. “내 비록 오늘은 이렇게 살지만, 내 자식 세대에는 반드시 한을 풀리라.” 이를 악물고 박봉으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공통된 정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번 대선은 감정의 승리였다. “아버지, 때려치워” 하던 자식이 가장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가정을 책임져 보니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지난 7개월간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며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이처럼 국정이 감정에 휘둘릴 때, 혼란과 위기는 필연적이다. 이것이 바로 중우(衆愚)정치의 폐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을 무렵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 외교관이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기에 저녁을 같이 했다.
“독일통일의 주역 겐셔의 회고에 의하면 말이네, 그가 통일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워싱턴의 반응이었다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국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당시 워싱턴에서는 정상회담 이후의 한국사회의 열기를, 본질은 망각한 채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euphoria)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18년간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서독의 통일외교를 진두지휘한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동분서주했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율적 공간을 끊임없이 넓혀 나갔고, 소련을 포용하면서도 할 말은 했다. 그의 이런 외교능력이 최대의 시련에 처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였다.
소련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미국은 당연히 NATO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겐셔는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통일독일이 NATO에 잔류하되 구동독 지역에는 NATO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절묘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를 기초로 1990년 9월 이른바 ‘2+4’협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통일에 결정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천하의 겐셔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워싱턴의 반응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이러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기에 서독은 영국과 프랑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어제의 서독이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을 앞장서서 반대한 나라가 독일이다. 겐셔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의 그러한 정책을 내놓고 지지했다. 분단 상황이었다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처럼 민족자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고도의 전략과 지혜, 그리고 인내력이 요구된다.
▼ ‘냉정한 외교’ 獨 겐셔 본받을만 ▼
지금 우리 사회는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또다시 핵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민감정을 생각하면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익을 생각하면 보내야 한다. 이처럼 국민감정이 국가이익과 상충될 때,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에게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국가이익이 명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개선되는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야말로 포퓰리즘의 극복이며, 역사에 대한 지도자의 책무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명분과 정당성을 폄하하는 반 도덕주의는 이제 그만
강정구 / 동국대 교수
이라크전 전투병 파병을 찬성하는 쪽은 명분이야 없지만 국익을 위해서 파병해야 한다면서 논의를 명분 대 실리의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명분을 업신여기고 실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런 주장에 노골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나 돈 벌기 위한 은행 강도 짓을 어느 사회든지 용납하지 않듯이 비록 실리가 보장된다하더라도(물론 실리도 전혀 없지만) 이라크파병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실리추구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도덕규범을 해치지 않아야만 정당성을 갖는데, 파병은 실리를 위해 무고한 이라크사람들을 살상하는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사람이 할 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실리중심의 사고는 해방 후 친일파와 민족반역자가 친미주의로 변신해 우리 사회의 각 부분에 대한 권력을 장악해 온 반역사성과 반도덕성에 연유된 것이다.
여기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에 의해 한국사회가 농락 당해 왔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무시해서라도 실리를 찾으면 된다는 처세주의와 반도덕주의에 물들어 왔다.
또한 미국에 빌붙어야만 권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주류는 미국의 요구란 마치 지상명령과 같아서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자발적 노예주의에 몰 들려 왔다. 이러다 보니 ‘명분이 밥 먹여 주느냐’ 식의 실리중심의 反도덕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같은 제3세계인 베트남이 민족해방-통일전쟁을 치를 때 한국은 그들을 도와 주지는 못할지언정 침략자 미국의 용병이 되어 그들의 민족해방과 통일을 가로막는 반역사적이고 반도덕적인 죄악에 동참했다. 더 나아가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고도 우리의 50대 이상의 주류는 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커녕 온갖 상황논리를 대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어물쩍 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반도덕성과 자발적 노예주의 굴레를 벗어 던졌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죄 및 과거청산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나서고 있다. 또 광화문 촛불시위와 파병반대의 주역으로 나서서 당당히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왔던 기성세대의 실리중심 반도덕주의에 종말을 고할 때가 되었다.
이라크전쟁은 일말의 명분이나 정당성도 없는 불법침략전쟁임은 이미 판명되었다. 테러와의 연관성도 대량살상무기 보유도 확인되지 않아 미국이 거짓으로 억지명분을 만들어 침략한 사기전쟁임이 밝혀 진 셈이다.
그러나 설사 미국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정당화 될 수 없다. 왜냐면 2차대전 이후 국가테러를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저지른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만들고, 보유하고, 수출하고, 사용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또 인권탄압과 후세인 독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60만 이상의 공산당원을 학살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루토정권, 아옌대대통령을 살해하고 칠레 민주인사를 수 만명 학살한 피노체트정권, 광주학살을 딛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등 가장 반 인권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을 창출하거나 후원한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었다는 점은 이 역시 거짓 명분임을 말해준다. 실리를 위해서도 파병은 절대 안 된다.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신문은 안보와 경제의 실리를 위해서 파병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아래와 같은 본질적인 접근은 실리 역시 하나도 없음을 명확히 말해준다.
안보실리론은 한국이 파병해 미국의 비위를 맞춰야 미국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우리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이 말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따져보면 남한이 미국에 잘 못 보이면 미국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우리의 안보를 짓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역으로 우리가 북한에 잘 못 보이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곧, 한반도의 안보훼손과 전쟁의 주범은 미국이라는 얘기를 전제하기 때문에 파병을 해 미국에게 잘 보여 우리의 안보를 확보하자는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파병을 한다고 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이 이미 1차파병 때 증명되었다.
부시는 1차파병 요청 전화에서 노대통령에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쟁의존 해결을 강력히 피력해 기어이 ‘추가적 조치’라는 전쟁위협 방안을 관철시켰다.
이어 7월에는 94년 전쟁위기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페리가 7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에서 “부시 행정부와 남한 그리고 중국의 고위관리들과 최근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시간이 다 돼가고 있고 달이 갈수록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제 이렇게 나선 것”이라고 밝히면서 올해 안에 전쟁발발을 경고했다.
또 미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연구원은 "부시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을 숙고한다"(Far Eastern E. Review 7월17일)라는 글에서 북한정권교체는 부시정부의 정책목표이며 “미국의 군사계획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국지적 공격에서부터 다수의 공격목표에 대한 광범위한 타격계획으로 확대되고 있다...이에 따라 7-10월에는 한반도 내부의 주변에서 위험한 시기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한국의 1차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는 아랑곳없이 미국이 전쟁을 도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위기는 중국이 허겁지겁 6자회담을 주선하면서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결론은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파병을 거절해 미국이 계속 이라크전쟁 수렁에 빠지게 하는 것이지 파병해 안정화로 가면 미국이 한반도전쟁을 도발해 안보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적 실리 또한 허구임은 경험적으로 드러난다.
1차파병을 했을 때 곧바로 하이닉스 반도체에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파병을 요청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환율절상을 무려 10%나 요구하고 있으며,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지난 대통령선거 때 미국정부는 미국의 대북한 전쟁위협까지 찬성하는 전형적인 사대주의자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렸지만 경제계는 재벌개혁을 공약한 노무현을 지지했다. 이같이 석유자본을 비롯한 미국자본은 자기들 이익이 되면 이념이나 미국정부에 저촉 받지 않는다. 오히려 파병을 거절해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되면 이들의 한국 투자는 지속될 것이다.
만약 파병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한국군 5-6천명에 대한 연간 약 5천억의 주둔비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폴란드형 다국적군으로 한국지휘 아래 배속된 다른 나라 군대의 주둔비와 이들이 저지른 대 이라크에 대한 피해까지 전담하게 되어 그 경제적 부담은 조 단위로까지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이 죽게돼 그 피 값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자산이다. 이는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덤터기만 쓰게 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안보와 경제의 실리 양 측면에서도 파병의 이해득실을 본질적으로 따지면 파병이 아니라 파병 거부야말로 실리를 가져올 것임이 명백해 진다.
베트남전쟁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이제 베트남전쟁 한국군파병을 되새겨봄으로써 이번 이라크파병에 대한 역사적 교훈과 지침을 모색해 보자.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측에서 보면 민족통일과 외세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해방 및 통일전쟁이었고, 반제국주의전쟁이었으며, 기존의 사회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혁명전쟁이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미국의 그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민족해방-통일-혁명이라는 자기들의 정치적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많은 베트남인의 불굴의 투쟁과 희생 앞에 미국과 프랑스는 무릎을 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전쟁 역시 제3세계의 주권을 유린하여 석유이권을 확보하고 미국중심 제국의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신식민주의-패권전쟁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도미노이론이라는 일방적 공산주의 봉쇄전략을 내세워 유엔이나 다국적군을 동원하여 전쟁명분을 확보하려 했으나 이에 실패했다. 겨우 태국, 필리핀, 대만, 호주 등 미국의 하위동맹자 국가 5개국과 한국이 다국적군을 구성했으나 이들 5개국의 군대를 합쳐도 상주 한국군 5만 명의 1/3 수준에 그쳐 실질적으로 전쟁은 미국과 한국이 전담한 셈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의 하수인으로서 그 더러운 전쟁에 동참함으로써 침략전쟁의 공범으로 전락했고, 지구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역시 미국은 유엔동원에 실패했고, 이어 게릴라전쟁에 직면하자 지구촌에서 가장 손쉬운 상대인양 한국에게 다국적군의 주축이 되는 공범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같은 제3세계인 한국이 남의 민족해방전쟁에 지원은커녕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민족해방을 훼방하는 죄악을 두 번씩이나 저지를 수는 없다.
무려 연 32만 명의 파병을 한 결과 5천명 이상의 전사자, 1만 명의 부상자, 2만 명의 고엽제환자가 양산되어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은 극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어려운 틈을 타서 우리가 타산적으로 나가면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라는 박정희의 온정주의 때문에 한국은 용병이면서도 용병의 값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국군 사단장 월급은 354달러로서 필리핀-타이군 소위 의 월급인 442, 389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희생을 자발적으로 치르는 엽기행각까지 보였다.
이라크파병은 용병의 형식도 아니다.
다국적군으로서 파견되는 한국군의 주둔비는 고스란히 한국 몫이다. 여기에다 한국군 지휘하의 다른 나라 군대 주둔비도 한국의 몫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되면 이 또한 엽기적 행각일 것이다.
이라크전쟁 역시 게릴라전쟁이어서 파병은 또 다시 한국군에 의한 이라크민간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공범이 됨으로써 두 번 다시 저지르는 불행을 절대 가져와서는 안 된다.
이라크파병 반대운동을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권 확보의 계기로 박정희는 베트남파병때 한미동맹의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미국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닉슨 독트린에 의해 1970년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미국비위를 맞춰야만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주한미군의 안보공약도 강화된다는 논리는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한반도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그렇게 믿었던 한미동맹의 주역인 미국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지금은 미국의 비위를 맞춰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깨뜨리는 일이 있더라도 한반도 전쟁 절대불가를 미국에 분명히 밝혀 우리의 안보를 우리 스스로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주한미군 역시 한반도의 안보요인이 아니라 전쟁요인이다. 전쟁요인은 당연히 제거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군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군으로 우리의 생명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마당에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파병 운운하는 것은 맹목적 숭미주의에 빠진 우리 주류의 자발적 노예주의성에 비롯된 것으로 논리적 정당성도 현실적 적실성도 없다. 그저 맹목적이고 허구적인 믿음에 불과하다.
이제 이라크파병 반대운동을 계기로 파병을 저지시킬 뿐 아니라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본질을 성역 없이 밝힘으로써 한반도 전쟁주범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에 대해 주권국가로서의 자주권을 확보하는 운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승화 및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베트남주민의 불굴의 용기와 투쟁, 그리고 세계적인 반전여론으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주조하던 미국이 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완전패배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던 위대한 교훈을 베트남전쟁은 남겼다. 탈냉전인 90년대 이후 한반도는 전적으로 미국의 주도에 의해 무려 여섯 번의 전쟁위기를 겪는 시련 속에 놓여 있다. 이 민족의 시련을 극복하는 역사의 지침을 베트남전쟁에서 찾으면서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의 전철을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다시는 밟지 않도록 우리의 의지를 결집시켜야 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반대-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전철 밟는 길- 강정구
[수요프리즘]신지호/派兵, 국익부터 생각해야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니 대개의 경우 불일치한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라도 일반 대중은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은 관계로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속성을 지닌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의 이격도(離隔度)를 축소시켜 줄 뿐이다.
▼ 지도자는 매맞을 각오로 결단을 ▼
그다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가족의 생계와 앞날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식들이 “아버지, 그렇게 살지 말고 때려치워”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는 사표를 낼 수 없다. “내 비록 오늘은 이렇게 살지만, 내 자식 세대에는 반드시 한을 풀리라.” 이를 악물고 박봉으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공통된 정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번 대선은 감정의 승리였다. “아버지, 때려치워” 하던 자식이 가장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가정을 책임져 보니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지난 7개월간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며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이처럼 국정이 감정에 휘둘릴 때, 혼란과 위기는 필연적이다. 이것이 바로 중우(衆愚)정치의 폐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을 무렵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 외교관이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기에 저녁을 같이 했다.
“독일통일의 주역 겐셔의 회고에 의하면 말이네, 그가 통일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워싱턴의 반응이었다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국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당시 워싱턴에서는 정상회담 이후의 한국사회의 열기를, 본질은 망각한 채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euphoria)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18년간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서독의 통일외교를 진두지휘한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동분서주했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율적 공간을 끊임없이 넓혀 나갔고, 소련을 포용하면서도 할 말은 했다. 그의 이런 외교능력이 최대의 시련에 처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였다.
소련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미국은 당연히 NATO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겐셔는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통일독일이 NATO에 잔류하되 구동독 지역에는 NATO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절묘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를 기초로 1990년 9월 이른바 ‘2+4’협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통일에 결정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천하의 겐셔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워싱턴의 반응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이러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기에 서독은 영국과 프랑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어제의 서독이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을 앞장서서 반대한 나라가 독일이다. 겐셔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의 그러한 정책을 내놓고 지지했다. 분단 상황이었다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처럼 민족자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고도의 전략과 지혜, 그리고 인내력이 요구된다.
▼ ‘냉정한 외교’ 獨 겐셔 본받을만 ▼
지금 우리 사회는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또다시 핵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민감정을 생각하면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익을 생각하면 보내야 한다. 이처럼 국민감정이 국가이익과 상충될 때,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에게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국가이익이 명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개선되는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야말로 포퓰리즘의 극복이며, 역사에 대한 지도자의 책무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명분과 정당성을 폄하하는 반 도덕주의는 이제 그만
강정구 / 동국대 교수
이라크전 전투병 파병을 찬성하는 쪽은 명분이야 없지만 국익을 위해서 파병해야 한다면서 논의를 명분 대 실리의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명분을 업신여기고 실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런 주장에 노골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나 돈 벌기 위한 은행 강도 짓을 어느 사회든지 용납하지 않듯이 비록 실리가 보장된다하더라도(물론 실리도 전혀 없지만) 이라크파병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실리추구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도덕규범을 해치지 않아야만 정당성을 갖는데, 파병은 실리를 위해 무고한 이라크사람들을 살상하는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사람이 할 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실리중심의 사고는 해방 후 친일파와 민족반역자가 친미주의로 변신해 우리 사회의 각 부분에 대한 권력을 장악해 온 반역사성과 반도덕성에 연유된 것이다.
여기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에 의해 한국사회가 농락 당해 왔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무시해서라도 실리를 찾으면 된다는 처세주의와 반도덕주의에 물들어 왔다.
또한 미국에 빌붙어야만 권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주류는 미국의 요구란 마치 지상명령과 같아서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자발적 노예주의에 몰 들려 왔다. 이러다 보니 ‘명분이 밥 먹여 주느냐’ 식의 실리중심의 反도덕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같은 제3세계인 베트남이 민족해방-통일전쟁을 치를 때 한국은 그들을 도와 주지는 못할지언정 침략자 미국의 용병이 되어 그들의 민족해방과 통일을 가로막는 반역사적이고 반도덕적인 죄악에 동참했다. 더 나아가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고도 우리의 50대 이상의 주류는 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커녕 온갖 상황논리를 대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어물쩍 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반도덕성과 자발적 노예주의 굴레를 벗어 던졌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죄 및 과거청산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나서고 있다. 또 광화문 촛불시위와 파병반대의 주역으로 나서서 당당히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왔던 기성세대의 실리중심 반도덕주의에 종말을 고할 때가 되었다.
이라크전쟁은 일말의 명분이나 정당성도 없는 불법침략전쟁임은 이미 판명되었다. 테러와의 연관성도 대량살상무기 보유도 확인되지 않아 미국이 거짓으로 억지명분을 만들어 침략한 사기전쟁임이 밝혀 진 셈이다.
그러나 설사 미국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정당화 될 수 없다. 왜냐면 2차대전 이후 국가테러를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저지른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만들고, 보유하고, 수출하고, 사용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또 인권탄압과 후세인 독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60만 이상의 공산당원을 학살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루토정권, 아옌대대통령을 살해하고 칠레 민주인사를 수 만명 학살한 피노체트정권, 광주학살을 딛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등 가장 반 인권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을 창출하거나 후원한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었다는 점은 이 역시 거짓 명분임을 말해준다. 실리를 위해서도 파병은 절대 안 된다.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신문은 안보와 경제의 실리를 위해서 파병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아래와 같은 본질적인 접근은 실리 역시 하나도 없음을 명확히 말해준다.
안보실리론은 한국이 파병해 미국의 비위를 맞춰야 미국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우리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이 말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따져보면 남한이 미국에 잘 못 보이면 미국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우리의 안보를 짓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역으로 우리가 북한에 잘 못 보이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곧, 한반도의 안보훼손과 전쟁의 주범은 미국이라는 얘기를 전제하기 때문에 파병을 해 미국에게 잘 보여 우리의 안보를 확보하자는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파병을 한다고 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이 이미 1차파병 때 증명되었다.
부시는 1차파병 요청 전화에서 노대통령에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쟁의존 해결을 강력히 피력해 기어이 ‘추가적 조치’라는 전쟁위협 방안을 관철시켰다.
이어 7월에는 94년 전쟁위기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페리가 7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에서 “부시 행정부와 남한 그리고 중국의 고위관리들과 최근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시간이 다 돼가고 있고 달이 갈수록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제 이렇게 나선 것”이라고 밝히면서 올해 안에 전쟁발발을 경고했다.
또 미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연구원은 "부시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을 숙고한다"(Far Eastern E. Review 7월17일)라는 글에서 북한정권교체는 부시정부의 정책목표이며 “미국의 군사계획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국지적 공격에서부터 다수의 공격목표에 대한 광범위한 타격계획으로 확대되고 있다...이에 따라 7-10월에는 한반도 내부의 주변에서 위험한 시기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한국의 1차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는 아랑곳없이 미국이 전쟁을 도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위기는 중국이 허겁지겁 6자회담을 주선하면서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결론은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파병을 거절해 미국이 계속 이라크전쟁 수렁에 빠지게 하는 것이지 파병해 안정화로 가면 미국이 한반도전쟁을 도발해 안보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적 실리 또한 허구임은 경험적으로 드러난다.
1차파병을 했을 때 곧바로 하이닉스 반도체에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파병을 요청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환율절상을 무려 10%나 요구하고 있으며,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지난 대통령선거 때 미국정부는 미국의 대북한 전쟁위협까지 찬성하는 전형적인 사대주의자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렸지만 경제계는 재벌개혁을 공약한 노무현을 지지했다. 이같이 석유자본을 비롯한 미국자본은 자기들 이익이 되면 이념이나 미국정부에 저촉 받지 않는다. 오히려 파병을 거절해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되면 이들의 한국 투자는 지속될 것이다.
만약 파병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한국군 5-6천명에 대한 연간 약 5천억의 주둔비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폴란드형 다국적군으로 한국지휘 아래 배속된 다른 나라 군대의 주둔비와 이들이 저지른 대 이라크에 대한 피해까지 전담하게 되어 그 경제적 부담은 조 단위로까지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이 죽게돼 그 피 값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자산이다. 이는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덤터기만 쓰게 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안보와 경제의 실리 양 측면에서도 파병의 이해득실을 본질적으로 따지면 파병이 아니라 파병 거부야말로 실리를 가져올 것임이 명백해 진다.
베트남전쟁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이제 베트남전쟁 한국군파병을 되새겨봄으로써 이번 이라크파병에 대한 역사적 교훈과 지침을 모색해 보자.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측에서 보면 민족통일과 외세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해방 및 통일전쟁이었고, 반제국주의전쟁이었으며, 기존의 사회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혁명전쟁이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미국의 그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민족해방-통일-혁명이라는 자기들의 정치적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많은 베트남인의 불굴의 투쟁과 희생 앞에 미국과 프랑스는 무릎을 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전쟁 역시 제3세계의 주권을 유린하여 석유이권을 확보하고 미국중심 제국의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신식민주의-패권전쟁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도미노이론이라는 일방적 공산주의 봉쇄전략을 내세워 유엔이나 다국적군을 동원하여 전쟁명분을 확보하려 했으나 이에 실패했다. 겨우 태국, 필리핀, 대만, 호주 등 미국의 하위동맹자 국가 5개국과 한국이 다국적군을 구성했으나 이들 5개국의 군대를 합쳐도 상주 한국군 5만 명의 1/3 수준에 그쳐 실질적으로 전쟁은 미국과 한국이 전담한 셈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의 하수인으로서 그 더러운 전쟁에 동참함으로써 침략전쟁의 공범으로 전락했고, 지구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역시 미국은 유엔동원에 실패했고, 이어 게릴라전쟁에 직면하자 지구촌에서 가장 손쉬운 상대인양 한국에게 다국적군의 주축이 되는 공범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같은 제3세계인 한국이 남의 민족해방전쟁에 지원은커녕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민족해방을 훼방하는 죄악을 두 번씩이나 저지를 수는 없다.
무려 연 32만 명의 파병을 한 결과 5천명 이상의 전사자, 1만 명의 부상자, 2만 명의 고엽제환자가 양산되어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은 극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어려운 틈을 타서 우리가 타산적으로 나가면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라는 박정희의 온정주의 때문에 한국은 용병이면서도 용병의 값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국군 사단장 월급은 354달러로서 필리핀-타이군 소위 의 월급인 442, 389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희생을 자발적으로 치르는 엽기행각까지 보였다.
이라크파병은 용병의 형식도 아니다.
다국적군으로서 파견되는 한국군의 주둔비는 고스란히 한국 몫이다. 여기에다 한국군 지휘하의 다른 나라 군대 주둔비도 한국의 몫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되면 이 또한 엽기적 행각일 것이다.
이라크전쟁 역시 게릴라전쟁이어서 파병은 또 다시 한국군에 의한 이라크민간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공범이 됨으로써 두 번 다시 저지르는 불행을 절대 가져와서는 안 된다.
이라크파병 반대운동을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권 확보의 계기로 박정희는 베트남파병때 한미동맹의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미국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닉슨 독트린에 의해 1970년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미국비위를 맞춰야만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주한미군의 안보공약도 강화된다는 논리는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한반도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그렇게 믿었던 한미동맹의 주역인 미국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지금은 미국의 비위를 맞춰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깨뜨리는 일이 있더라도 한반도 전쟁 절대불가를 미국에 분명히 밝혀 우리의 안보를 우리 스스로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주한미군 역시 한반도의 안보요인이 아니라 전쟁요인이다. 전쟁요인은 당연히 제거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군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군으로 우리의 생명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마당에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파병 운운하는 것은 맹목적 숭미주의에 빠진 우리 주류의 자발적 노예주의성에 비롯된 것으로 논리적 정당성도 현실적 적실성도 없다. 그저 맹목적이고 허구적인 믿음에 불과하다.
이제 이라크파병 반대운동을 계기로 파병을 저지시킬 뿐 아니라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본질을 성역 없이 밝힘으로써 한반도 전쟁주범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에 대해 주권국가로서의 자주권을 확보하는 운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승화 및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베트남주민의 불굴의 용기와 투쟁, 그리고 세계적인 반전여론으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주조하던 미국이 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완전패배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던 위대한 교훈을 베트남전쟁은 남겼다. 탈냉전인 90년대 이후 한반도는 전적으로 미국의 주도에 의해 무려 여섯 번의 전쟁위기를 겪는 시련 속에 놓여 있다. 이 민족의 시련을 극복하는 역사의 지침을 베트남전쟁에서 찾으면서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의 전철을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다시는 밟지 않도록 우리의 의지를 결집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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