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9·11조사위 보고서> “9·11테러때 한국도 노렸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9·11테러를 감행하기 전 한국이나 일본,싱가포르에 위치한 미국 목표물을 공격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16,17일의 청문회를 앞두고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종 보고서는 7월 말 나올 예정이다.
◇한국도 대상이었다=9·11 조사위는 9·11테러를 기획한 할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와 동시에 한국과 일본,싱가포르 내의 미국 시설물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알카에다는 테러의 심리적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평양 양쪽에서 두 가지 테러를 계획했다.
조사위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알카에다는 동남아와 태평양을 횡단하는 10대의 민항기 납치를 기도했다. 알카에다는 이들 비행기로 세계무역센터,국방부,백악관,의사당 등 미국에 대한 테러를 추진했다. 태평양 인근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의 고층 건물,핵 시설 등도 테러 대상이었다.
나머지 비행기들은 한국과 일본,싱가포르 내의 미국 시설물을 공격하거나 공중에서 충돌,폭파하는 시나리오를 기획했다. 알카에다의 한 조직원은 2001년 1월 초 방콕과 홍콩간 여객기에 탑승하는 등 사전답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빈 라덴의 반대로 무산됐다. 빈 라덴은 "10대의 비행기를 납치해 지구 반대쪽에서 같은 시간에 테러를 시도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백악관도 목표였다=조사위는 9·11테러를 놓고 알카에다 지도부 내에 많은 내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백악관에 대한 테러 논란이었다. 빈 라덴은 백악관을 반드시 공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측근 모하메드 아타는 "백악관에 대한 경비가 너무 철저하고 상대적으로 건물이 작아 공격하기 힘들다"고 만류했다.
테러 시점에 대해서도 갈등이 존재했다. 빈 라덴은 처음에 2001년 5월 테러할 것을 주장했다가 같은해 6,7월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때에 맞춰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참모들은 조직원들에 대한 훈련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반대했다. 테러 시점을 결정한 아타는 미 의회가 개원되어 있는 9월11일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또 알카에다가 테러를 선전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밝혔다. 모하메드는 10번째 여객기를 직접 납치해 남자 승객을 모두 살해하고 미국 공항에 착륙,언론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한 뒤 여자와 어린이를 풀어주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빈 라덴은 이 계획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조사위는 알카에다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획득해 미국을 공격하는 방안도 연구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알카에다가 테러 준비에 50만달러(6억원)를 썼지만 9·11테러로 인한 피해액은 950억달러(114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부시 신뢰성에 또 상처=조사위는 알카에다와 이라크가 미국에 대한 공격에 협조했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이라크전 개전 명분으로 내세웠던 부시 행정부에 상처를 줄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알카에다와 이라크전을 연결시키려 했던 부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존 피스톨 미 연방수사국(FBI) 수석부국장은 청문회에서 "알카에다가 다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테러 위협을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테러 위험을 증가시킨 것은 바로 부시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들"이라고 맹비난했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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