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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특별기고> 우리 어머니는 스파이였다!

Written by. 김 은 희 (화가, 문인)   입력 : 2004-06-27 오전 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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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마음에 꼭꼭 감추어두었던 나만의 사연을 들출 때가 있다. 그것을 고백이라고 하던가. 내용이야 어떻든 남모르게 가슴절인 희,노,애,락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내 살붙이, 피붙이에게도 그 애절함 때문에 그 속내를 드러내기가 쉽지않다.



날짜도 기억에 선명한 그날의 일들은 내 속에 암각화처럼 새겨져있다. 2001년 7월 25일 모닝콜처럼 새벽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어머니셨다. 오늘 밤 11시 30분에 방송되는 KBS 수요기획 프로그램을 보라는 단순한 전화였다. 그저 전쟁이야기라며 다른 설명이 없으셨다. 

여군 출신이신 어머니의 우리 세 자매에 대한 교육은 내 나이 40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초지일관 군대식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머니의 말씀에 토를 단다거나 다른 의견을 말씀드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그것은 명령 불복종 죄에 해당되어 영창감이었다.



어머니의 지시가 떨어지면 우리는 계통을 밟아 첫째인 나는 둘째에게 둘째는 막내에게 통보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그 시간까지 깨어있기 위해서는 소품 그림 작업에 들어갔다. 억지작업을 하다보니 신명이 나지않아 나도 모르게 투정이 나왔다.



“여군 출신인 엄마나 보시지” 안 본 것을 보았다고 했다가는 심문처럼 행해지는 질문에 우리는 당할 수가 없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TV채널을 고정시켜놓고 그 화면앞에서 그림작업을 하던 중 화면에 “암호명 래빗 우리는 스파이였다” 라는 글이 보였다. 바로 어머니의 시청지시가 떨어진 그 프로그램 제목이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6.25 전쟁 당시 아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끌기위해 특수훈련을 받고 적진에 침투해서 활약했던 여군 첩보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전개되는 장면마다 어찌나 절박한지 저절로 나오는 내 신음소리를 억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흰색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신발도 변변치않아 때로는 우거진 산등성이를 넘고 때로는 눈덮힌 골짜기를 헤치며 버선발로 낮과 밤 구별없이 적진을 향하여 걷고 또 걷고 있었다.

오직 혼자 수백리 길을 걸어가다 무덤을 베개 삼아 잠을 자고 산속 열매로 양식을 삼고 숨조차 자유롭게 쉴 수 없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정보를 캐내어 오는 소위 간첩이었다.  분노와 절규의 격전장에서 지뢰밭길을 피해 능선을 넘고 넘는 여군의 한걸음 한걸음은 가슴저미는 우리의 눈물이요, 恨이었다.



한 민족이 두 갈래 길에 서서 죽여야 내가 사는 피흘림의 고통 속에 바쳐진 그 희생의 값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민족의 이름으로 승리의 이정표를 세우고, 겁 없이 적진을 넘나들던 그 어린 여자아이, 그 여군 첩보원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고 또 봐도 분명 내 친정어머니셨다.

기자의 질문에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몰라 목소리부터 높이시며 흥분하시는 어머니,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라느냐며... 간간이 여유있는 미소로 항변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셨다. 아마도 분노를 삼키기 위한 역반응이었으리라. 방송이 끝나도 나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지금까지 본 역정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 어머니였다니! 어느 결에 내 온 몸은 땀으로 짜놓은 행주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순결한 고백이었다.  당신 어머니(외조모) 살아 생전에도 말할 수 없었던 국가적 비밀이었다며 그 비밀의 열쇠를 간직한 세월이 50여년, 神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호흡할 수 있었을까?   

당시 어머니는 17세, 요즘 말하는 사춘기의 절정기가 아닌가!



밥을 굶는 것 정도는 고통에 해당되지도 않았다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줄은 하나님께 매달려 있었기에 고비고비마다 안전할 수 있었다고 감격에 겨워하신다. 첩보대 8240부대에서 이름날렸던 여군 첩보원이 내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내 나이 47세에 비로소 알게되었다면 그 비밀을 지켜온 내 입술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것은 차라리 뼈를 깎는 고통이었으리라, 돌이켜보면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 그 시대에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의 삶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제 와서 달랑 참전용사증 한장만 손에 받아들었을 뿐 아무런 현실적 보상은 없다. 그럼에도 함께했던 전우들의 죽음에 대한 남아있는 자로서 그들 몫에 대한 책임감 속에 늘 긴장감 속에 쉼을 누리지못하는 생을 살아오셨다.

왜! 우리 세 자매를 그토록 긴장감 속에서 키우셨는지, 어머니의 그 고백 속에 답이 있었다. 스스로의 택함이었다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정녕 겁없는 선택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는 내 성화에 못이겨 아주 천천히 입을 여셨다. 철원 금악산에서 월정리로 향하던 중에 적군에게 포위되어 끌려 다니면서 고문을 받기도 했다. 손을 뒤로 묶고 나무에 매달아 총을 목에 대고 자백을 요구할 때 1급 비밀 첩보원인 어머니가 실토할 리가 없었다.

“나는 모른다, 전쟁에 잃은 내 가족을 찾아 헤매이던 중이었다며 끝까지 소리치고 또 소리쳤단다. 어머니의 복장이 민간인 복장이었고 군인이란 근거를 찾지못했기 때문에 민영인 파출소로 끌려가던 중 폭격 비행기가 그 장소에 떴었고, 그 순간을 이용해서 탈출할 수 있었다며 숨이 차오르게 말씀을 이으셨다. 임무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금천 태장나루 임진강에서 떠내려갔는데 바위에 걸린 것을 아군에 의해 발견됐다며 흐르는 눈물을 삼키신다.



내가 너무나 아픈 심상 속에 고백까지 끌어내는 잔인한 딸이 된 것같아 순간 정신이 아뜩했다. 그 당시 중부전선만 승전하며 평강 복계까지 정복했다 한다. 100팀 중에서 5팀만 살아남아 지금 살아계신 백운학 아저씨께서 전우회 회장님을 맡고 계시다며 어머니의 목메인 외침은 전쟁 중에도 정직과 성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길”이라 하시며 그 정직은 적군에 대한 정보를 캐기위하여 어디까지 갔다 왔다는 것을 아주 정확히 보고하고 가지못했던 곳은 못 갔다고 솔직히 보고하는 정직과, 목숨걸만한 고된 길이라도 갈 곳은 꼭 가는 성실이, 그 정신력이 소속된 팀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고 힘주며 말씀하신다.

내 인생과정에 그 큰 흐름의 몫이 주워졌다면 과연 그 무서운 선택을 주저없이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민의 과정도 없이 숨어버렸을 것이 분명했으리라는 것이 내 솔직한 답이련다. 언제나 우리 세자매의 귓전에 못이 박힌 어머니의 채찍질 “그 정신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니? 이 인생들아” 하시며 속으로만 ‘어머니 잘 나셨어요’ 하며 항변했었다.



요즘 어머님 집 전화가 늘 통화중이다. 전우들 간에 소식 전하기에 바쁘시단다. 정말 자랑스런 내 어머니! 겨레에 바쳐진 보상없는 헌신과 희생은 시대를 밝히는 불꽃으로 오늘도 새롭게 타오르고 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중에 남은 고백은 하얀 종이 위에 천천히 내려놓겠다며 54주년 6.25를 맞이하는 6월 아침에 남다른 고백을 안고 살아온 70세 노인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면서....(konas)


 

김은희 (화가,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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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종    수정

    어머니께 경의를 표합니다.어머니가 계심으로 현재의 우리가 있습니다.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먼저 떠나가신 전우분들의 명복도 아울러..님들의 염원을 데살려서 다시금 일어서는 조국이 되도록 활동을 할것 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8-17 오전 2:33:21
    찬성0반대0
  • 채경근    수정

    자유대한의 국가존립기반을 지키기 위하여,,,목숨바쳐 싸우신 어님께 감사드립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6-30 오후 1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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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국인    수정

    살신성인의 진정한 애국자이신 할머님께 삼가 머리숙여 경의를 드립니다...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램을 드립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6-30 오전 10:17:31
    찬성0반대0
  • 김 병관    수정

    과거를 외면하고 현재를 논할수없다. 인류최상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한 처절한 희생을 절대 폄하해서는 안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6-27 오전 3:14:42
    찬성0반대0
  • 이근춘    수정

    피눈물 흘릴 귀한 자료이며 절규이다. 국가는 이러한 자료를 발굴해서 홍보하고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한다.무슨 개혁이다 민주화다하는 자랑도 좋지만... 최소한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나라였음 좋겠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06-26 오후 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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