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간 북녘 울린 '자유의 소리' 마지막 방송
Written by. 코나스
입력 : 2004-06-19 오전 9:16:17
우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민족 공동번영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남북 간 합의사항들을 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며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
지난 14일 밤, 국군 심리전담방송과 장광복(49) 위원은 북녘을 향해 마지막 코멘트를 날렸다.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지난 42년간 전방의 확성기를 통해 북측에 울려퍼진 ‘자유의 소리’ 방송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월드컵 생중계 때는 북측에서 함성 들려
15년간 ‘북한 청취자’를 대상으로 아나운서, PD, 구성작가의 역할을 해온 장 위원은 갑작스런 ‘실직’에 시원섭섭했다.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위한 일이니 기쁘게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네요.”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방송을 녹음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는데, 지금 얘기하면서도 또 이러네.”
기독교방송 성우였던 장 위원은 지난 1990년 국군 심리전단방송과 아나운서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민영방송이 생겨나며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그는 특수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곳을 택했다. 그는 “확성기를 통해 방송이 나가다보니, 목소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말해야 했다”면서 “처음 이 곳에 와 6개월동안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은 남한 사회의 각종 풍물을 소개하는 ‘산 따라 풍류 따라’. 최근까지 드라마 형식의 ‘우리 사는 세상’과 남한의 소식을 전하는 ‘오늘의 초점’을 진행했다. 또 음악 프로그램인 ‘청춘을 즐겁게’와 시사 프로그램인 ‘통일로 가는 길’, 천주교 프로그램의 제작도 맡았다.
모두 녹음 방송이었지만,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경기는 생방송으로 중계를 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개막전부터 생중계를 했어요. 남한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북쪽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 이효리, 렉시, 코요테 노래 북측에 방송
인터뷰를 하는 장 위원의 옆에는 ‘청춘을 즐겁게’ 큐시트(Cue Sheet)가 놓여 있었다. 20분짜리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노래는 4곡. 렉시, 이효리, 이수영, 코요테 등 요즘 인기가수들의 노래가 편성돼 있었다.
북쪽의 대남방송이 선동·비방·체제선전에 치우쳐 있는 반면, 남쪽의 대북방송은 주로 음악·스포츠·뉴스에 관한 소식으로 꾸며졌다. 1990년대 초 고위급회담 이후로는 ‘북괴’ ‘괴뢰군’이란 말이 ‘인민군’ ‘북한군’으로 바뀌었다. 장 위원은 “탈북 병사들한테 들으니, 남측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한국의 가요가 북한 병사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 탈북 병사는 ‘이 밤을 그대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겠다고 방송국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가 ‘대북 선전 방송’으로 인식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이 ‘왜 그런데서 일하느냐’고 하셨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장 위원은 1983년 기독교방송에 입사하기 직전까지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영아들을 돌보며 신부의 꿈을 키웠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다.
장 위원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미정”이라고 답했다. “남북 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측이 방송 중단을 건의해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레 중단될지는 몰랐어요.”
현재 ‘자유의 소리’에는 아나운서·성우 20여명을 포함, 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장 위원은 “방송 중단으로 평화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래도 ‘자유의 소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소식을 알리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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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북방송 진행자 장광복 위원 | |
지난 14일 밤, 국군 심리전담방송과 장광복(49) 위원은 북녘을 향해 마지막 코멘트를 날렸다.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지난 42년간 전방의 확성기를 통해 북측에 울려퍼진 ‘자유의 소리’ 방송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월드컵 생중계 때는 북측에서 함성 들려
15년간 ‘북한 청취자’를 대상으로 아나운서, PD, 구성작가의 역할을 해온 장 위원은 갑작스런 ‘실직’에 시원섭섭했다.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위한 일이니 기쁘게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네요.”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방송을 녹음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는데, 지금 얘기하면서도 또 이러네.”
기독교방송 성우였던 장 위원은 지난 1990년 국군 심리전단방송과 아나운서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민영방송이 생겨나며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그는 특수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곳을 택했다. 그는 “확성기를 통해 방송이 나가다보니, 목소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말해야 했다”면서 “처음 이 곳에 와 6개월동안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은 남한 사회의 각종 풍물을 소개하는 ‘산 따라 풍류 따라’. 최근까지 드라마 형식의 ‘우리 사는 세상’과 남한의 소식을 전하는 ‘오늘의 초점’을 진행했다. 또 음악 프로그램인 ‘청춘을 즐겁게’와 시사 프로그램인 ‘통일로 가는 길’, 천주교 프로그램의 제작도 맡았다.
모두 녹음 방송이었지만,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경기는 생방송으로 중계를 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개막전부터 생중계를 했어요. 남한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북쪽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 이효리, 렉시, 코요테 노래 북측에 방송
인터뷰를 하는 장 위원의 옆에는 ‘청춘을 즐겁게’ 큐시트(Cue Sheet)가 놓여 있었다. 20분짜리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노래는 4곡. 렉시, 이효리, 이수영, 코요테 등 요즘 인기가수들의 노래가 편성돼 있었다.
북쪽의 대남방송이 선동·비방·체제선전에 치우쳐 있는 반면, 남쪽의 대북방송은 주로 음악·스포츠·뉴스에 관한 소식으로 꾸며졌다. 1990년대 초 고위급회담 이후로는 ‘북괴’ ‘괴뢰군’이란 말이 ‘인민군’ ‘북한군’으로 바뀌었다. 장 위원은 “탈북 병사들한테 들으니, 남측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한국의 가요가 북한 병사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 탈북 병사는 ‘이 밤을 그대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겠다고 방송국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가 ‘대북 선전 방송’으로 인식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이 ‘왜 그런데서 일하느냐’고 하셨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장 위원은 1983년 기독교방송에 입사하기 직전까지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영아들을 돌보며 신부의 꿈을 키웠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다.
장 위원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미정”이라고 답했다. “남북 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측이 방송 중단을 건의해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레 중단될지는 몰랐어요.”
현재 ‘자유의 소리’에는 아나운서·성우 20여명을 포함, 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장 위원은 “방송 중단으로 평화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래도 ‘자유의 소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소식을 알리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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