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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이고 그는 민주인사인가"

Written by. 김인구   입력 : 2003-10-02 오전 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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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반정부활동 함께했던 오길남씨 인터뷰

▲ 93년 2월 11일 북한에 밀입국후 재 망명한 인사 오길남씨를 본사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이다./ 조선일보 포토뱅크
“조금은 홀가분 하다.”

재독학자 송두율(59)씨와 지난 1970~80년대 독일에서 반정부 활동을 함께 하다가 85년 입북했던 오길남(61)씨는 1일, 기자외의 전화통화에서 송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임을 시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국정원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했다.

송씨에 대한 오씨의 감정은 남달랐다. 두 사람은 독일 유학시절 반한운동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냈으며, 송씨가 오씨의 북한행을 적극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오씨가 입북한지 1년여 만인 86년 북한을 탈출한 뒤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할 당시 송씨는 “내가 오형이라면 재입북하겠다”, “어디가든 잘 살아라.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의 사이였다.

국정원의 송씨에 대한 조사때 대질 신문을 위해 두 사람은 십수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오씨는 “사실 만나러 들어갈 때엔 한바탕 욕을 해 주고 싶었지만 막상 만나니 그렇게 못하겠더라’면서 “송씨는 자신이 한 말을 바꾸곤 했으며 많이 피곤해 보이고 돌아선 것같았다”고 했다. 송씨는 더 이상에 북한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오씨는 말했다.

오씨는 송씨의 입북 과정, 김일성과의 면담 등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74년인가 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생겨났는데, 그 이전 그러니까 73년에 송이 북한에 들어가 모종의 지령을 받고 나온 게 틀림없다”면서 “김일성, 김정일, 허담(91년에 사망한 노동당 대남비서)이 송두율을 무척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오씨는 또 “송씨가 91년 5월 방북했을 때 묘향산 초대소에서 김일성을 만났을 때 언감자국수를 함께 먹었다고 하더라.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활동을 할 때 땅 속에 묻어둔 언 감자를 꺼내 국수를 해 먹었는데 ‘맛이 있다’고 해서 그가 즐겨 먹는 음식이다. 이 음식을 송과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이 친구 영성체를 받았구나’하고 생각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선정은 ‘사제 서품’ 받은 것이지”라고 했다.

송씨가 왜 한국에 들어온 것같으냐는 질문에 오씨는 “내 생각으론 대남통일전선사업을 구축하기 위한 합법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내에서 현 정부와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가 자신에게 ‘민주인사’라며 한국에 들어오라고 여러 차례 권유하자, 이제 한국내에서 자신의 신분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고 체포된다고 해도 별 문에 없이 풀려날 것이라고 판단해 입국했을 것이라고 오씨는 추정했다.

오씨는 통화를 끝내면서 국내 일부 언론들이 나에겐 ‘간첩’이란 수식어를 송두율에겐 ‘교수’ ‘민주인사’란 호칭을 붙이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1970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오씨는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유학 중 송씨 등과 함께 친북 반한 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 가입해 반정부활동을 하다가 북한 대남공작책 백치완에게 포섭돼 85년 12월 13일 부인, 두 딸과 함께 입북했다.

오씨는 입북 후 북한이 남한 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 산하의 칠보산연락소에서 근무하다 노동당 간부로부터 ‘독일의 한국 유학생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고 86년 11월 21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입국 하던 중 공항당국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이후 독일에서 6년 가까이 망명생활을 하다가 92년 4월 주독 한국대사관을 통해 자수했으며, 한국에 들어와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는 독일 망명 후 북한에 두고 온 아내와 두 딸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 갔다는 이야기를 국제인권위원회로부터 듣고, 이들의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 오길남씨는 누구

오길남씨는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독일로 유학, 재독친북한 반한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 가입, 부회장까지 맡는 등 반정부활동을 벌이다 1985년 부인 신숙자씨(61)와 두 딸을 데리고 입북했다. 북한에서 대남공작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 산하 단체에서 활동하던 오씨는 1986년 11월 독일 유학생을 유인, 입북시키라는 지령을 받고 다시 유럽으로 나온 뒤 독일 정부에 망명했다.

이후 북한에 남겨둔 처와 자식의 송환을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1992년 4월 주독 한국대사관을 통해 자수했다. 그는 자수 직후 국내에 들어와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1995년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조선일보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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