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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영웅 美軍 스미스 특공대장 별세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4-07-06 오전 9: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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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죽미령서 탱크 4대 격파…67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

 

6·25전쟁 발발 직후인 7월 5일, 참전 미군 중 최초로 북한 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던 찰스 스미스 미 특공대장(당시 중령·88세)이 5월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는 1950년 7월 5일 경기 오산시 죽미령에서 벌어졌다. 당시 스미스 중령이 이끈 부대는 소련제 T-34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4사단 소속 2개 연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인 끝에 탱크 4대를 폭파하고 인민군 42명을 사살했다. 최초의 승리였다.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30여년간 스미스씨와 교분을 가져온 지갑종(池甲鍾) 유엔 한국참전국협회장은 5일 오산시 주관으로 열린 ‘스미스 특공대 오산전투 제54주년 기념식 및 추도식’을 마친 뒤 스미스씨의 별세 사실을 밝혔다.


지 회장은 “행사 소식을 알리기 위해 미국의 스미스씨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부인이 ‘남편이 5월 23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렸다”고 전했다.

 

지 회장은 “지난 3월 국제전화로 통화했을 때도 ‘건강이 좋다’고 했는데 사망 소식을 들어 충격을 받았다”며 “오늘 전화를 통해 내년도 55주년 행사에 꼭 방한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스미스씨는 미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미 24사단 21연대 1대대장으로 일본에 주둔하고 있다가 한반도에 투입됐다.

 

한반도 긴급투입 명령을 받은 그의 부대원 406명은 7월 1일 부산 수영비행장에 첫발을 디뎠다. 이튿날 대전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는 포병부대원 134명이 합류, 540명 규모의 특수임무대로 탈바꿈했다.



스미스 특수임무대는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4사단 소속 2개 연대와 6시간여 동안의 치열한 교전 끝에 탱크 4대를 격파하고 4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스미스 부대도 170여명의 전사자 및 행방불명자가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던 스미스 중령은 북진(北進) 대열에 참가, 11월 1일 신의주 남쪽 30㎞ 지점까지 올라갔으나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하다가 11월 10일 전출 명령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스미스 중령은 뒤에 준장으로 진급한 뒤 67년 예편했고 75년 7월 방한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한편 이날 54주년 기념식 및 추도식에는 6·25전쟁 당시 1사단장으로 참전한 백선엽(白善燁) 예비역 대장(전 육군참모총장)과 박신원 오산시장, 권용원 육군 제5067부대장(소장), 케인 유엔사 부참모장, 매케인 주한미군 군수참모부장, 각급 기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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