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제78주년 추모식 거행
서상목 도산기념사업회장, "대공주의 정신,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추구돼야 할 공존과 통합의 정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78주년을 맞아,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도산공원 내 선생 묘소에서 추모식이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은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서상목)와 흥사단(이사장 이윤배) 주관으로 열렸으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추모사 및 추념사, 도산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낭독,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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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목 도산기념사업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한평생을 조국에 헌신하신 선생의 영전 앞에 드릴 것은 정성스레 준비해온 추모의 마음 뿐"이라며 선생을 기렸다.
특히, 서상목 회장은 도산 선생의 ‘대공주의’(大公主義) 정신을 되새기면서 “선생의 대공주의 정신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추구돼야 할 공존과 통합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추념사를 통해, “국민이 하나 되어, 70년 지속돼 온 남북의 이념갈등을 해결해 한미동맹 강화하고 안보위기를 극복하여 경제발전과 통일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강조하신 ‘진실된 마음으로 행동에 힘쓰는’ 무실역행이며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추념사 대독을 통해, 이윤배 흥사단 이사장도 추념사를 통해 도산 선생의 유훈을 되새겼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학생,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한 도산 선생의 공적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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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호 선생 공적 ◈
안창호 선생(1878. 11. 9.~1938. 3. 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며,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자주 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역설하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동(同)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공립신보>를 발행하였다.
1907년 귀국 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였고,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1919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던 중,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에 취임하여 연통제를 실시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하였다.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1924년에는 남경에서 ‘동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1930년에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이끌어내었으며, 1931년 1월에는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하여 대회장으로 선출되고 <흥사단보>를 발행하는 등 국민의 자질 혁신과 청년 인재 양성 등 흥사단의 이념 구현에 주력하였다.
조국의 자주독립에 헌신하던 선생은, 1937년 6월 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병을 얻어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38년 3월 순국하였고, 이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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