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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한국군 창군 주도 한 강영훈 전 국무총리 별세

분단 후 첫 남북총리회담 이끈 '외유내강' 형 지도자

Written by. 황은철   입력 : 2016-05-10 오후 4: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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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 광복 이후 우리 군 창설의 산파역을 한 창군동우회 일원이자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총리회담을 성사시키며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향년 94세로 10일 별세했다.

 평북 창성 출신의 강 전 총리는 1922년생으로 6·25 전쟁 때는 국방부 관리국장과 육군 제3군단 부군단장을 지냈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회의 본부장, 군단장 등을 거쳐 1960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5·16 군사정변을 맞아 동참을 거부했다가 '반혁명 장성 1호'로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 한국 외국어대 대학원장과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정부 때는 영국, 아일랜드, 로마교황청 대사 등을 지내며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을 거쳐 같은 해 제13대 국회에서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 의원으로 등원해 국회 올림픽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강 전 총리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발탁돼 1990년까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내각을 통할했으며 재임 기간인 1990년 9월 분단 45년 만에 최초로 남북 총리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남북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홍성철 통일원 장관과 함께 우리 총리로는 처음으로 북한 평양을 직접 찾아 주석궁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정·관계를 떠난 강 전 총리는 지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7년 동안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대북 지원 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1993년에는 엑스포지원중앙협의회 회장과 대한에이즈협회 초대회장, 1994년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 1996년∼2009년까지는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총재 등을 맡으며 고령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대한민국 국군 창설 산파역할을 해온 창군동우회 활동을 지원해온 재향군인회에 의하면 강 전 총리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창군동우회 모임이 있으면 적극 참석하곤 했으나 최근 들어 건강 상 이유로 모임에 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창군동우회는 지금까지 해외 거주 1명을 포함해 7명이 생존해 계시나 강 전 총리 별세로 백선엽 장군 등 6명이 생존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효수 씨와의 사이에 남매 변호사인 장남 성용씨, 장녀 효영씨, 차녀 혜연씨 등 1남 2녀를 뒀다.(konas)

코나스 황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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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dn4177(didn)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6-05-11 오후 5:02:15
    찬성0반대0
  • 살인미소(pjw3982)   

    영면하시길.....

    2016-05-11 오전 9:48:45
    찬성1반대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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