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로버트 金을 돕자' 후원열기 확산
기밀 누설 혐의로 미국 연방교도소와 자택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로버트 김을 돕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석방된 로버트 김에 대한 별도의 지원대책이나 명예회복 조치 등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로버트 김은 미 해군성 정보국이 보유한 북한 관련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제공했다가 1996년 9월 미 연방수사국 FBI에 체포되어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7년 6개월만인 지난달 27일 석방됐지만, 연금혜택을 박탈당한 데다 파산 선고자로 금융거래마저 제한돼 생계대책이 막막한 상황이였다.
이러한 로버트 김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ARS(060-700-1996) 전화 서비스를 개통한 이후 현재까지 모두 3만명이 접속, 6천만원의 성금이 모아지고있어, 그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ARS서비스를 별도의 세금부과 없이 무상으로 지원해 준 KT측은 "수재민 돕기 성금모금과 같이 TV방송을 통해 ARS 번호가 공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6천만원의 성금이 모인 것은 대단한 후원열기"라고 전했다.
또 후원회가 출범한 작년 7월 이후 현재까지 국민이 한푼 두푼의 돈을 직접 보내와 모인 성금만도 1억1천여만원에 달한다.
심지어 로버트 김이 바로 쓸 수 있게 달러로 성금을 전달하거나 오랜 수감생활에 지친 몸을 달랠 수 있게 해달라며 보약 등을 보내는 국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김 후원회 이웅진 회장은 "현재까지 모인 성금 가운데 2천500만원을 로버트김 가족 생활비로 우선 지원했고 나머지 성금은 로버트 김의 거처마련과 생계비 지원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로버트김 후원회는 로버트 김의 한국방문을 지원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외교통상부에 제출했고, "석방 이후 보호관찰 생활에 들어간 로버트 김의 사회활동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며 " 정부 당국의 지원만 있으면 로버트 김의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잘 알고 있는 미국측이 한국 방문을 허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청원서 제출 이유를 밝힌바 있다.
아래는 이러한 후원활동이 뜨거워지면서 로버트 김이 감사의 뜻으로 후원해 앞으로 보내온 편지이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오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녀오겠다”고 출근길을 나섰다가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길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는 제가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고, 목이 마를 때마다 물을 건네면서 끝까지 걸어가게끔 격려해주신 여러분들이 계셨습니다. 지난 8년간 저와 저의 가족을 걱정해주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건강한 몸으로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감개 무량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이 사랑이야말로 저희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평생 간직할 보배가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늘 집의 불을 밝히고, 제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려온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 아내는 7년여를 매주 왕복 7시간이상 달려 면회 와서 제게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있는 긴 세월 동안 아내는 온통 흰머리가 되었고,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도 성장하여 결혼도 하고, 그동안 손주들을 넷이나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예순을 훌쩍 넘긴 노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조국과 동포에 대한 믿음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진실을 간직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늘 저는 반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재소자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지만, 말과 행동, 모든 생활 전반에 제약이 따르는 보호관찰 대상자로 3년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 노력해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 여러분들을 뵙겠습니다.
자유라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1996년 전만 해도 저도 여러분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뼈저리게 그리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러한 귀중한 것들을 박탈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내가 태어난 나라를 동경하며 때로는 그 발전상에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자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조국 정부의 정책과 집행, 그리고 일부 국민들의 지각없는 행동에 우려도 했습니다.
제가 구속될 당시 환율이 600 대 1 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한다, 아시아의 용이다, 이렇게 들떠있던 한국 분위기를 보며 장래가 매우 위태롭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대한 저의 존경과 사랑은 변함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몇 달 안가 저는 그것이 저 혼자의 짝사랑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결정적인 순간에 저의 순수한 동기와 저의 순수한 동기와 나의 존재를 외면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한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에 오셔서 우리같은 해외 동포들에게 조국을 잊지 말고 도우라고 하는 말씀을 진실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조국을 도와야 겠다는 마음이 항상 나에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들으면 저런 바보 같이 순진한 사람이 다 있는가 하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요셉의 이야기 입니다. 형제들에 의해 애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애집트의 국무총리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가나안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그는 나중에 죽으면 자기 뼈를 고향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향나라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도 인간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국을 잊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겠지요.
저는 제 자신을 흙이라고 생각하며 한국민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어 제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법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저는 반자유인의 상황에서 한국과 한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이 이기적인 기성세대를 본받고 있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외국의 비생산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도 걱정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 한반도에 진정한 민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재목들이며 우리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흙으로서, 그리고 그들이 정직하고 겸손하고 정의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부족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지식과 국제 감각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지금까지 이해하고 기도와 사랑으로 지지해준 가족과 오랫동안 정신적인 버팀이 되어주신 존경하는 종교계, 정치계, 학계 지도자님들과 로버트 김 후원회 여러분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로버트 김 채곤 드림
2004년 7월 27일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