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안보정세 분석 / 동향과 전망(2016. 7.26 )
❏ 6·25전쟁의 휴전, 韓國社會에 준 영향, 교훈
① 최초 休戰會談이 시작된 1951년 7월에 조기 정전 예상
• 中共軍 참전, 國際戰 성격 변화, 쌍방이 한계 실감
• UN군 측과 中共은 정전을 희망했으나 蘇聯은 양측의 소모전 기대
※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후 급속하게 停戰協定 추진
• 2년 간 休戰會談의 난제는 포로송환과 휴전선 위치 결정
※ 포로송환에 대한 당시 양측의 입장은 제네바협약 준수 등으로 평행선
※ 휴전선은 38선 회귀와 현재 점령 중인 선으로 논쟁
② 분단/6·25전쟁의 유산과 영향
• 민족의 대이동, 지식/지주계층 南韓 정착, 北韓 지식 공백 발생
• 봉건사회/계급구조 해체, 교육/실력이 신분보다 중요, 경쟁을 통한 발전
• 군 출신이 국가관리 담당, 전쟁 경험, 선진 행정/기술력 보유, 열등감/사명감
• 北韓 등 공산권 위협/日本 극복 의지, 정부 주도 개발, 자유/인권 일부 제한 가능
③ 분단, 정전 이후 南·北韓은 체제/리더십 차이로 극심한 편차 발생
• 계획, 통제, 폐쇄, 배급사회의 모순 누적, 왕조시대 폐습 지속
• 자유, 경쟁, 영리추구, 공개사회의 성장 환경, 동기 부여, 발전 계기
☞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나 韓國은 자유민주체제의 선택으로 인해 통일역량을 구비
❏ 터키 쿠데타의 원인, 경과와 전망
① 쿠데타는 “군대가 국가권력에 일격”을 가한다는 의미
• 성공한 쿠데타는 국가수뇌부만 교체, 정당성 면에서 혁명보다 저평가
• 체제 수호해야할 군대가 집권세력을 타도함으로 인해 도덕성 불리
※ 국제정세, 국내 갈등문제로 전환기에 정치 변동을 위해 발생
② 터키에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
• 政治/宗敎 분리, 국가지도자가 무슬림에 치중하면 군이 반대
• 군부는 국가의 수호신 자처, 상당수 터키人 군부의 정치개입 옹호, 법으로 보장
※ 터키는 돌궐족 후예, 오스만제국 융성 시 지중해/중동 지배, 1차대전 후 몰락
※ 게말 파샤는 1923년 정치/종교 분리한 터키공화국 수립, 세속주의 정착
☞ 시리아 내전/IS 테러대응 미흡, 장기집권, 사치/친인척 부정부패
③ 터키의 쿠데타는 명분미약/동조세력 규합이 부족하고 사전 노출로 실패
• 주동자인 군 장성 20여명 등 군인 6,000명 체포, 법관/경찰 1만2천명 파면/체포
• 공무원 1만여 명/교원 1만5천명 파면, 교수 1천5백 명 사표 등 6만여 명 처벌
※ 터키 정보 당국 쿠데타 모의 사전 파악/보고, 부대/장비 이동 중지
※ 정치적 반대세력 거세 위한 집권층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의견 제기
※ 국가 비상사태 선포, 국민 기본권 제한, 칙령 제정, 반대세력 탄압/제거
④ 피의 숙청, 정치세력 간 대립 심화되는 터키의 앞날은?
• 에르도안 대통령체제 강화, 통치체제 변경 추진, 미국·EU와 갈등, 국제적 고립
• 정정 불안 경제위기 초래, IS 격퇴, 유럽 난민 해결 등 주도적인 역할 추구
※ 국내외 문제로 충돌했던 국가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곤란
❏ 安保 활동방향
❍ 韓國은 6·25전쟁에 의해 막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했음을 자랑
❍ 국내의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자극에 따라 중진국에도 쿠데타가 발생하여 국가위신 추락됨을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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