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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⑭〕그 길에 그 얼굴들

가까이 다가선 지역사회의 모습

Written by. 손병훈   입력 : 2016-09-07 오전 9: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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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눈이 내려 길이 조금씩 희게 바래지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새까만 조끼며 코트로 몸을 싸매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나오자, 어느새 쌓인 눈 때문인지 집 앞의 포장된 개울 길은 조금은 자박거리며 내 발을 살며시 끌어 당겼다. 아마도 내가 겨울 내내 꿈꾸듯 침잠해있던 것도 그러한, 눈이 조금 내렸다든가 옷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가 그저 잠이 부족했다든가 하는 그런 사소한 까닭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잡념으로 뒤숭숭한 체 멍하니 발을 놀리다보면 어느새 수서역에 내려, 6단지 아파트를 지나서 구립문화센터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를 비우고 조금 마른 숨을 내쉰 뒤 독서실에 들어간다. 그것이 내 근 몇 년간의 일상이었고 분명 그날도 그랬어야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회복무소집일자는 2월 5일 9시입니다.”

 당시 나는 휴학 중이었다. 꿈 때문인지 변덕 때문인지 목표하는 학과만 세 번을 바꿀 정도로 오락가락 하던 때도 있었지만 한 번 과를 정해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자, 초심자다운 즐거움과 함께 신의칙이니 선풍기니(민법 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죄형법정주의니 하는 온갖 배움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열의도 한 때요, 풍파와 같은 배움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마침내 어머니의 가사와 벌이와 우리의 빚…. 애써 눈 돌리던 내 삶의 무게들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리고 배움을 살려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마침내 깨달았다. 어영부영, 갈팡질팡 살아온 내 인생도 마침내 그저 시대의 물결에 올라탄 것이리라고. 그저 그 뿐일 것이라며 덤덤히 순응하고, 침잠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자 한 통은 비로소 나를 수면에서 끄집어내, 푹 잠겨있던 몸을 계절에 걸맞은 세찬 바람으로 깨우는 것이었다.

 내가 근무지로 출근해야하는 날은 마침 설 연휴 이후였기에 미리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떡국을 챙겨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핸드폰으로 길을 찾아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타던 버스에 탔다. ‘우연일까?’ 내가 내리던 정류장에 내렸다. ‘환승역이라 그럴 것이다.’ 내가 다니던 길로 들어섰다. ‘역으로 들어가지 않는 걸?’ 그리고 길 사이에 복지관이 있었다.

 바로 그 곳이었다. 가까운 곳이라 잘 되었다는 친지들의 말보다도 먼저 내게 다가온 것은, 아마도 내가 다니던 길을 무력함과 우울함, 짜증만을 지니고 다녔기에 느꼈을 미약한 당혹감이었다. 혹시 어르신들이 나를 알아보시는 것은 아닐까. 아닐 것이다. 나도 어르신들을 알아보지 못 하기에.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 옆으로 문득 문득 보이는 하얀 얼굴들, 우울해 보이는 얼굴들. 가끔 길을 건널 때라든지, 물건을 들 때라든지 나의 도움을 청하실 때 무심히 예, 하고 도와드리면 내 눈에 그대로 돌아온 무심한 감사와 공허한 얼굴들. 그러니 어르신들 역시 그러하시리라.

 잔가지를 무수히 뻗은 나무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 가는 길과 고즈넉한 의자들. 그 의자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길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딘가 불안한 걸음으로, 우울한 얼굴로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청년. 가끔 내가 발의 문제로 비틀거리거나 기우뚱 발을 삘 때면 그저 나의 생장과 건강에 의구심을 품으셨을 뿐인 (최대한 긍정적인 서술이다.) 그러한 관계. 그렇게 꿈속인 냥 알았던 길과 그 길 위의 사람들을 전혀 다른 입장으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깨어나 둘러보기 일을 시작하기 전 업무를 대강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난 꽤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툰 손놀림 때문에 일을 망치진 않을까, 내향적인 성격때문에 혹여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을 제대로 못하진 않을까 등등. 하지만 보통 이런 고민들이 늘 그렇듯 일이 시작되자 모두 기우로 돌아갔다.

 첫 시작은 주방에서였다. 모든 업무를 겪어보면 앞으로 편할 거라 생각하신 영양사 선생님은 첫날부터 내게 모든 주방 일을 맡기는 특혜를 베푸셨고, 지금 와서 보면 그 생각은 꽤나 정확했다. 어찌되었건 그 첫 날은 서술하기 힘든 하루였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설거지라곤 라면 냄비며 접시 정도 해본 것이 고작이었는데 어르신 수백 분 식판의 잔반을 비우고 닦고 씻었으며, 어르신께 전할 아침식사를 포장하고 아파트 몇 개동의 십수 개 호에 날라 배달하고 또 나온 잔반을 분리했다.

 오후엔 반찬을 마찬가지로 어르신들께 날랐으며 남는 시간엔 어르신들 프로그램을 위해 책걸상을 옮겼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을 땐 문서 정리와 편철을 도왔는데 이 부분은 대학생 행정연수로 꽤 오래 해본 부분이라 그나마 나았던 듯싶다…. 지금은 꽤나 담담히 적고 또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 날 하루는, 아니 며칠간은 정말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들에 쌓여있었던 것 같다.

 피곤과 함께 집에 와 잠든 후 일어나 출근하는 걸 반복하며 정말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시간이 훌러덩 사라졌던 것 같다. 어르신, 복지관이며, 나 자신이며 따위를 딱히 생각을 할 만한 여유조차 없었던 듯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이 아련하고 가늠하기 힘들었던 꿈속을 떠나, 사람들이 실재하는 사회로 돌아온 것이었다.

 근 한 달쯤 지나 일이 익숙해지자 나 자신과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천막 치는 법이며 무거운 상자를 나르고 쌓는 법이며 트럭 줄을 묶는 법 등 평상시 해볼 일이 없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일들도 배웠으며, 주위 사람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알던 것들을 나만 모르는 것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배움이 있는가 하면 만남도 있었다. 반찬이며 식사를 배달할 때면 이제 자주 뵌 어르신께 안부를 전하는 일도 있었고, 오가며 얼굴을 익힌 어르신들이 내게 수고한다며 말을 건네시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이었다. 아침 식사를 배달해 드리러 갔는데 요양보호사분이 내 얼굴을 보시곤 안절부절못하며 말씀하시길, 어르신 집의 옷걸이가 무너져 옷들이 쏟아졌다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며 들어섰더니 대단한 수라장이 보였다. 천장까지 연결하는 3단 옷걸이가 통째로 주저앉아 쇠로 된 골격들이 사방에 주저앉아 있었고, 바닥엔 바지며 코트며} 옷들 수십여 벌이 우르르 흩뿌려져 침대와 방의 바닥이 보이질 않았다.

 순간 아찔하여 ‘저런 안타깝네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다. 망설이는 와중 무언가 조금 다른 것을 본 느낌이 들었다. 찬찬히 방을 다시 살피다가 침대의 이불속을 보니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르신이 누워계셨다. 치매가 오셨다는 요양사분의 말을 들으며 어르신을, 이불 속에 숨어있던 얼굴을 바라보니 초점을 잃을 듯 말 듯 흐릿한 시선이 보였다. 그 시선은 잠시 나를, 요양사분을 이리저리 따라 헤매더니 어느 샌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상실과, 그 배경에 널브러져 있는, 언젠가 어르신이 정정하셨을 적 그 몸을 감싸고 멋스럽게 보듬었을 하얀 코트들, 색이 바래버린 검은 코트들, 알록달록한 옷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무척 갑작스럽게도 내 마음 어딘가를 아프게 한 것 같았다. 내 자신이 감성적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봉사에 큰 관심을 둔 적도 없었기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어느 이름 모를 감정이 그 순간 내게서 피어났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남은 집에 마저 배달을 마친 뒤 돌아와 의자를 받치고 올라가 옷걸이를 다시 세우고 또 연결하고, 천장에 고정시킨 뒤 옷들을 함께 모아 하나 둘 올리고 가끔 엉뚱하게 꽂은 바지 집게나 거꾸로 뒤집힌 옷 따위에 요양사분과 피식 웃고 그러다 어르신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옷을 올리고…. 그러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정리는 끝나있었다.

 말끔해진 시트 위에 편안히 누우신 어르신의 시선이 나만의 느낌뿐일지라도 더 편안해 보였다. 한 번 그런 마음을 느끼자 줄곧 무관심하게 보내던 나의 일상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식판을 가져다 주는 어르신의 손길이 전보다 더 위태로워 보여 다가서게 되었고, 반찬을 받으시는 어르신의 얼굴이 조금 더 밝아 보여 나도 마주 웃을 수 있었다.

 흘려들었던 어르신의 중얼거림이 감사의 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전하고 행하는 것들이 비록 커다란 보탬이 될 순 없더라도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소박한 편안함과 이로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달았다. 아마도 이것이 지금껏, 그저 두루뭉술하게 흐르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던 삶에선 영원히 알 수 없었을 진정한 보람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많은 것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무거운 짐을 나를 때면 속으로 온갖 불평을 하곤 했고, 바자회가 다가와 후원 물품을 받아오고 수십 개의 상자를 옮기고 천막을 가져오는 등 견딜 수 없을 만큼 고된 때도 있었고, 구석에 박혀 설거지를 할 때면 묘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어르신을 만나거나 도시락이며 반찬을 배달해드릴 때, 바자회 당일, 내가 짊어왔던 새 옷이며 새 모자 따위를 내가 지금껏 어렴풋이만 알았던 그 얼굴들에 입혀드릴 때면 보람과 함께 무언가 뿌듯함과 정겨움 같은 것들이 생겨나 나를 늘 북돋아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잠에 취한 듯 보내온 시간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시간 역시 내겐 분명 커다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그마한 깨달음이 있은 후의 시간이 더욱 깊이 있는 듯 느껴졌다. 내가 평상시 겪었을 일주일이 현재의 하루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저 살아 갔다면 내가 아마도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을 세상이 달음박질하여 내 눈앞에 와선 자신을 알려주었고, 나도 조금씩 걸어 다가갈 수 있었다.

 아파트로 들어가 승강기에 오른다. 연락받은 집으로 가 낙상한 어르신을 요양사분들과 함께 침대로 올려드린다. 어르신이 웃으며 고맙다 말하신다. 반찬을, 도시락 통을 가득 짊어지고 아파트를 오른다. 찬을 받은 어르신이 내 명찰을 보시곤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고맙소.” 내가 다가서자 그들도 가까워졌다. 나무 아래 벤치에서, 눈들이 가라앉은 길에서, 아스팔트에서 그저 스쳐 지나갈 때와는 다르게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인사한다.

 삶속에서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들이 그저 꺼리고 멀어지고 싶었던 병역을 통해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봉사하며 스스로 다가서는 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이젠 알고 있다. 잠깐 숨을 돌리며 아파트 15층의 창밖을 바라본다. 내가 몇 년간 침잠했던 희뿌옇던 거리가 이젠 색색깔의 옷을 입은 어르신들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강아지들, 벽돌 사이를 뚫고 자라난 풀들로 알록 달록해 보인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다. 잔가지를 무수히 뻗은 나무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길과 그 곳의 고즈넉한 의자들. 그 길에 그 얼굴들. 천천히 걸으며 자박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잎들을, 고르게 깔린 길들을, 그리고 그들을 바라본다. 입 꼬리가 스윽 올라가고 눈이 휜다. 웃는다. 따라 웃는다.(konas)

 손병훈(수서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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