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⑮〕천원짜리 다섯 장
양로원에서 느끼는 따뜻한 순간들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나의 하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눈도장을 찍는 일로 시작이 된다. 내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 나보다 더 반갑게 나를 맞아주시는 분들. 아침밥을 먹었는지 꼭 물어보신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은 항상 반복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하루가 매일 특별한 이유는 가끔은 웃음을 가끔은 감동을 주는 여러 에피소드 때문일 것이다. 늘 적다고 소리치는 할아버지, 여자 친구에게 샘내는 할머니, 돌돌 말아진 신문지를 건네었던 할머니의 모습들은 모두 내게 ‘사랑’이라는 단어로 남겨질 것이다.
어렸을 때 대퇴부 탈골 때문에 큰 수술을 하여 4급을 받아, 집에서 가까운 양로시설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고 화가 많이 났다. 자연스럽게 현역군인과 비교를 당하고 무시를 받는 일이 종종 있기도 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복무기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런 부정적인 생각 때문인지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식사 챙겨드리기, 청소하기, 목욕시켜드리기, 텃밭일구기 등 모든 일은 그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처음의 내 생각과 달리 지금 나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하나하나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할머니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할머니를 따라가니 신문지로 싸여진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푹신푹신한 느낌이었다. “할머니 저 이런 거 받으면 안돼요.”라고 말씀드리니 할머니께서는 “며칠 전부터 주려고 놔뒀던 빵이니깐 맛있게 먹어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감사하다고 한 후 자리를 떠난 뒤 신문지 속의 빵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날짜.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며칠 전에 받았던 빵을 주말동안 드시지 않고 나에게 주려고 했던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 빵은 먹지 못했지만 나는 다시 찾아가서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 할머니가 준 빵이라 더 맛있어요.” 할머니의 환한 미소를 본 나는 너무나 뿌듯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나를 생각해주시는 마음 보다 더 큰 사랑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의 밥을 미리 떠 놓는다. 우리 층에는 중풍이 온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는데 항상 할아버지께서는 식판을 보지도 않고 소리치신다. “적다!” 말을 잘 못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너무나도 우렁차다. 할아버지의 소리침에 항상 밥을 더 드리지만 엄청나게 많이 남기신다.
며칠을 지켜본 후 안 되겠다 싶어서, 식판을 다시 들고 갔다가 더 담은 척을 하고 드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손을 흔드시며 아주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걸 보고 느꼈다. 할아버지는 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고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 후 나는 할아버지께 더욱 더 자주 말을 걸어 드린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알아들은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의 몸을 씻겨드리고, 발톱을 깎아드릴 때 내게 보내는 따뜻한 미소는 내게 충분한 대답이 된다.
나를 항상 손자 같이 생각해주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나를 조용한 곳으로 부르셨다. 할머니의 표정은 조금 심각했다. 할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누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도청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는 자꾸 핸드폰을 나에게 주며 확인을 해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혹시나 싶어 핸드폰을 확인해봤다. 이상이 없었다. 할머니께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왜 그러실까 궁금했었다. 그 날 밤 할머니의 확고하신 표정이 생각이 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일종의 우울증이라고 나와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걸 알고 난 후 나는 할머니께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시도록 더 자주 할머니 옆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드리며 옆에 있는 시간을 늘렸다. 그 후로는 할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물론 나의 처방이 정확한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확신한다. 내가 조금만 더 손자같이 할머니들께 다가가면 할머니들께서 더 즐거워하시고 행복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 있는 동안 나의 목표는 하나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귀엽고 듬직한 손자가 되어드리자!’
먹을 걸 좋아하시고 남자에게 관심이 많으신 한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께서는 남자 봉사자들이 오시면 꼭 선생님들께 “저 사람 장가는 갔는가?”라고 물어보신다. 선생님들이 웃으며 “왜요? 마음에 드세요?” 라고 물으시면,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응. 마음에 들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처음 왔을 때도 장가를 갔냐고 물어보셨다. 그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이 재밌고 할머니가 정말로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나에게 또 장가를 갔냐고 물어 보시길래 “장가는 안 갔지만 여자친구는 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 후로 할머니의 태도가 약간 바뀌었다. 내가 쳐다보면 눈을 피하고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옆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나한테 삐져서 그런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할머니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할머니가 로션을 바르고 계실 때 “할머니 나도 조금 주세요.”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때 할머니께서 로션을 숨기며 말씀하셨다. “네 색시한테 사달라고 해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너무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어 웃었지만 한편 으로는 기분이 먹먹해졌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외형이 늙어가지만 생각은 어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할머니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계셔서 조금 울적해졌다. 항상 아침이면 옆에 누워 계시는 우리 할머니가 조금씩 어려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할머니도 나이가 많이 드셨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할머니를 보면 우리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난다. 더욱 더 우리 할머니처럼 대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선복무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먼저 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훈련소를 들어가야 했다. 이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지낸 지 아홉 달이 지났을 무렵 병무청에서 훈련소를 가야한다고 연락이 왔다. 기분이 조금 싱숭생숭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할머니들께 말씀을 드렸다. 훈련소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지 처음 말씀드렸을 땐 별 반응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훈련소로 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고 머리를 민 채 마지막 인사를 하러 출근을 했다. 할머니들께서는 내게 어디 가냐고, 훈련 받으러 가냐고 연거푸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내일부터 한 달 동안 훈련 받으러가서 여기 못 나와요”라고 말씀드렸다.
나랑 친한 할머니 몇 분은 눈물을 보이시면서 “우리 이군, 그리 오랫동안 못 보면 섭섭해서 어떡하노?”라고하며 내 등의 어루만져 주셨다. 나도 몇 달 동안 봤던 분들을 한달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했다. 그렇게 슬픔에 젖어 있을 때 할머니 한분께서 거의 찢어져가는 봉투를 나에게 주려고 하셨다. “할머니 이게 뭐에요?”라고 여쭤보니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하지 말고 받아.”라고 말씀하셨다. 봉투를 열어보니 천원짜리 5장이 들어가 있었다.
그걸 보고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은 정말 설명할 수 없었다. 슬픔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후 마음을 가다듬고 할머니께 봉투를 건네 드리며 “할머니 저 다시 오니깐 그때 오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웃으시며 “그럼 꼭 건강히 잘 갔다와야 한대이. 오면 하드먹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라에서 기초수급을 받아가며 생활하시는 할머니께 오천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할머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 절실히 느껴졌었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들께서는 더 큰 마음으로 내게 보답을 해주신다.
처음에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소식을 들은 내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며 조롱하는 듯한 말을 자주 했다. 그러한 주위의 시선은 나를 계속 해서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난 현역 군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내가 이곳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느끼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사회복무요원에 보내는 시선에 대해 실망하기보다는 내 존재에 대해 더욱 당당해질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자고 말이다.
고민을 자신감으로 바꾸고 걱정을 행동으로 바꾼다면 더 멋있고 떳떳한 사회복무요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오늘도 나는 오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께 신나게 인사를 하며 눈도장을 찍는다. “우리 이군 없으면 어찌할꼬.”라고 말씀해 주시는 우리 할머니들은 나를 송중기만큼이나 멋있는 손자라고 생각해주시기 때문에 항상 뿌듯함이 가득하다. 남은 기간 동안 더욱 더 열심히 하는 사회복무요원이 되어, 지금보다 더 멋있는 손자가 되리라 결심한다.
이승엽(통도사 자비원 양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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