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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⑱〕멋쟁이 찍사

Written by. 한민호   입력 : 2016-09-08 오전 9: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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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이제 사회복무 소집해제일이 다가오니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자 입가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온다. 처음 보훈복지의료공단보훈원에 배정받을 때 궁금함과 설레는 마음에 어떠한 곳인지 찾아 보았다. 보훈원은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의 삶의 터전과 다양한 문화생활에 도움을 주는 곳이었다. 보훈원은 정말 따뜻한 기관이었다. 하지만 그때에 나에게는 불편한 장소였다.

 가장 큰 이유는 어르신들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였다. 처음의 나는 어르신들에 대해 어리숙한 생각들로 가득했었다. 보훈원에서 의미가 없는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았다. 이런 나에게 다른 사람의 문제는 나의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일에 관심이 생겼다. 관심을 갖고 주변을 보니 바뀐 모습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관심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나에 대한 대우와 내 삶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긴 나는 오늘 하루 사진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찍어왔던 많은 사진들을 처음부터 정리하다가 한 할머니의 첫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지만 다른 곳에서도 더 잘 지내실 거라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2014년 추운 겨울에 같은 일을 반복하며 무료한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편지 온 것을 정리 한 뒤 배부하는 도중에 故 강순임 할머니를 만났다. 가벼운 아침 인사와 함께 지나가려는 나를 차디찬 손으로 붙잡고 말을 이어가셨다. “학생 나 부탁이 있는데... 나 신체 좀 기부하고 싶어. 도와줄 수 있어?” 걸걸하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무서웠다.

 선뜻 나서서하기 부담스럽고 무서운 일이기에 사무실에 가서 말씀하시라고 일을 미루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끝내 저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아주대학교 병원에 사체기증 센터에 전화해보았고 몇 가지 서류를 우편으로 받아보니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다. 나는 할머니께 설명해 드리고 보호자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시도했지만 아무 소리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부모님의 시신을 연구에 사용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 달간의 전화와 할머니와의 면담을 통해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 신청서를 작성했다.

 할머니는 다음해 봄에 꽃을 보시지 못하셨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동시에 죄송한 마음과 부족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죄책감이 있는 것처럼 생전에 같이 웃고 즐길 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잘해드리지 못했던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르신께 무언가를 먼저 도와드리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했다.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 중에서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어서 사진을 생각하게 되었지만 사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처음 사진 공부를 시작한 날은 막막했다. 마땅히 DSLR 카메라에 대해 배울 곳도 없고 인터넷에 검색해봤자 까막눈이였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사회복무요원 관리를 해주시는 명경철 대리님께서 면담시간에 고민이 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지금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때 이후로 명경철 대리님께 도움을 받아 사진 찍는 자세, 방법, 사진기의 기능, 초점 맞추는 방법 등 다양하게 배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배우고 사진을 혼자 찍고 있을 무렵에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사진을 찍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사진이 더욱 더 못나오는 것이었다. 인물은 흐리게 나오고 기울어지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고민과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사진공부를 했던 것은 헛된 일이였나? 내가 지금 더 해서 나아질까?’라는 말을 내 자신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었다.

 그러던 도중에 찍은 못난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사진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행복한 소녀와 같은 그 순간이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마음에 와 닿았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내가 사진을 멋있게 찍는 것이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을 했던 걸까? 단지 나는 예쁜 추억 사진한 장 찍어드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건데’라는 생각이었다.

 사진을 인화해 사진을 갖고 할머니께 달려가는 내 모습은 마치 사탕받으러 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할머니께 바로 사진을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하회탈을 쓰신 것처럼 “어구메 이쁘네”라는 말씀을 하시고 박수 한번 치시면서 고맙다고 우유 한 잔 먹고 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싫던 우유가 그 순간 어떻게 그렇게 시원하고 고소했던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잡고 사진 공부를 다시 하니 이제는 여름이 시작하고 있었다.

 행복한 추억을 남겨드리기 위해 시작했던 사진 공부가 마무리 된 단계에 본격적인 첫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가을 효도관광 행사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게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 다니는데 여기저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생 사진 한 장만 찍어줘” 기대에 부푼 나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기 시작했다. 찍으면서 같이 웃고 즐기는 그 순간 나이 차이를 잊고 같이 웃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인화를 주문해서 한분씩 갖다 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웃음과 추억을 선물해 드리는 순간 나는 육상선수처럼 쉬지 않고 달려 갔다. 이렇게 1년이 지나가니 나에게는 별명이 생겼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우리 민호 찍사님 오셨나?” 라고 아침에 손을 번쩍 드시더니 먼저 인사해 주신다. 장난도 함께 치시면서 아침마다 기분 좋은 인사와 함께 시작하는 마음이 즐겁다. 이제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가 아닌 한 가족으로 같이 생활하는 기분이 든다.

 벌써 사진 정리가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사진을 통해 그 추억을 간직하고 생각하는 것이 참 뿌듯하다. 나에게는 작은 일이였지만 받으신 분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것이 사회복무요원으로 임하면서 가장 큰 보람된 일이였다. 오늘 오후에도 사진기를 들고 나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나는 멋쟁이다. 과연 어르신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한번 멋쟁이 찍사가 된다.

 이렇게 보니 영원할 것 같은 사진첩에 남은 장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사진첩에는 사회복무요원이 아닌 멋쟁이 보훈원 가족으로 어르신과 함께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 마지막에는 가족사진으로 장식하고 그동안의 정들을 추억의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다. 한 가족으로서 보낸 2년의 시간 행복했습니다.(konas)

한민호(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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