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⑳〕숲을 이루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풀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사회복무를 하며 자괴감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하루라도 빨리 복무가 끝나길 바랐다. 그러던 중에 한 학생과의 만남으로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괴롭기만 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 나는 다시는 겪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여전히 괴롭고 고민이 많은 시간들이지만, 그렇기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 있었다.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시간들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건 좀 심한데……, 4급이야.” 갑작스런 결과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게 된 것에 기뻐해야 할까? 몸이 좋지 않다는 것에 슬퍼해야 할까? 복잡한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친구들은 모두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혼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스물일곱, 입대를 하기엔 꽤 늦은 나이였다. 다른 동기들처럼 임용에 합격 후, 교직 생활을 하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하려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힘든 군대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사회복무로 이따금씩 자괴감과 무기력함도 느꼈다.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학부모들로부터,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로부터 받았던 기대와 신뢰를 떠올리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잃은 것은 많은데, 얻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비교하며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열등감만 커져갔다. 주변 사람들은 ‘부럽다.’, ‘배가 불렀네.’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남겨진 느낌에 괴로워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부산광역시교육청 소속의 대안교육지원센터란 곳에 배치되었다. 주로 하는 일은 장학사 업무 보조였지만, 학교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그 밖의 업무도 맡을 수 있었다. 주된 업무 중의 하나가 ‘특별교육’이었다. 특별교육은 학교의 선도위원회 또는 학교폭력 자치위원회 등의 심의에서 특별교육 처분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내게 중학생과 고등학생 이라는 대상은 낯설기만 했다.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기에 거부감마저 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육을 준비하고, 학생들을 인솔하여 교육을 진행하였다. 무엇 하나 다른 것이 없었고,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 또한 변함이 없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당연한 듯이, 물 흐르듯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학생에 대한 애정이나, 인솔하는 교사로서의 자부심은 없었다. 전반적인 업무 보조였기에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바라볼 뿐 이었다. 학생들과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징계’를 받으러 온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했다. ‘문제아’, ‘불량학생’ 이란 선입견이 그것을 더욱 부추겼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엄연히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업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었다. 정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새 하나 둘씩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투정도 부렸다. 언젠가 한 학생이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은 항상 곁에 있어 주어서 정말 좋아요.’
특별교육으로 학교폭력을 비롯하여, 흡연 및 음주, 과벌점, 지도 불응 등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을 만났다. 내게 ‘항상 곁에 있어주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을 했던 학생은 과벌점으로 특별교육을 받았던 학생이다. 흡연과 음주로도 벌점을 받았지만, 지각과 무단결석이 주된 원인이었다. 학생은 특별교육이 있던 첫날에도 지각을 했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조치 없이 수업에 들여보냈다. 단 한 마디만 했다. “한 번 더 지각하면 미이수니까 늦지 말고 와.” 학생은 멋쩍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때엔 그러지 않았다. 학생이 웃으며 말해서일까? 괜스레 다가가 ‘선생님도 잠이 많아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며 말을 건넸다. 몇 마디를 나누다 학생이 말했다. “내일은 제 시간에 올께요. 방긋 웃는 모습으로요.” 다음날, ‘선생님, 약속 지켰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학생을 반겨 주었다. 그리고 ‘역시 웃는 모습이 좋죠? 내일도 웃으면서 인사할게요.’ 라고 말하며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로 시작으로 그 학생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생활, 친구들과 의 관계, 졸업 후의 미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사이 다른 학생들도 하나 둘씩 모여들어 선생님과 학생이라기보다, 친구처럼 말을 섞게 되었다.
“선생님은 주량이 얼마에요?” 예전 같았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이다. 선입관을 가지고 학생들을 바라보았기에 업무 외의 대화에는 대꾸조차 안했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관계도 갖지 않았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기보다는 형 또는 오빠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장난도 치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학생들과 보낸 시간들은 조금씩 나를 바꿔갔다.
물론 학생들의 태도의 변화도 있었고, 그 변화들은 특별교육에서도 나타났다. 여전히 불만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다른 기수의 학생들과 달리 활기찬 모습으로 항상 웃고 있었다. 수업을 위해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이번 기수의 아이들은 뭔가 다르네요.’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작은 변화일 뿐이었다. 단 한 가지, 선생님과 학생이 말을 섞은 것뿐이었다. 다만 평범한 선생님과 학생의 대화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선생님이, 앞이 아니라 뒤에서 바라보던 선생님이 학생들 사이에 들어간 것이 다를 뿐이었다.
‘곁에 있어주는 것’,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학생의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아닐 때, 앞에 서지 않을 때 비로소 곁에 있게 된 것이었다.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앞에 서지 못하고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방향에서 다시 보며 생각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에, 학생들을 가장 나를 필요로 해주었다. 더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들 한다. 하나에 얽매여 좁게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다. 숲도, 나무도 아닌 더 아래에 있는 풀을 보라고 하고 싶다. 울창한 숲은 나무가 있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나무조차 땅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그 땅과 가장 가까이 에 존재하는 것이 풀이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퍼져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난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풀들이 있기 때문 에 숲은 더욱 쪽빛을 띈다.
거리를 걷다보면 여기저기 볼 수 있는 것이 풀이다. 화단이나 숲에는 풀들이 모여 있지만, 거리에는 길모퉁이나 돌 사이에 홀로 피어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정말 보기 싫다. 가지런히 정돈된 도로에 불쑥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두면 제멋대로 자라 거리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특별교육을 오는 학생은 왠지 그런 풀과 같다고 생각했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자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게 여겨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역시 풀이다. 지천에 널려있는 풀과 다를 바 없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조금, 아주 조금만 손을 빌려주면 여느 풀과 다름없이 무리지어 자라날 것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 / 가장 낮은 곳으로’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도 비로소 보이게 되었다. 사회복무를 하며 자괴감을 가지고, 무기력함에 괴로워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소집해제가 되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평생토록 절대로 겪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다시는 서지 못할 위치에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좋지 못한 것들도 많았지만, 그 또한 다시 겪지 못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보고 따라할 수도 있지만, 좋지 못한 것을 보고 그렇게 되지 않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학생은 당시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출석일수가 모자라 졸업하기 힘들었던 학생이지만, 그 이후로 꼬박꼬박 등교하여 무사히 졸업을 하였다. “선생님, 졸업하면 술 한 잔 사주세요.” “무사히 졸업해서 주민등록증 가지고 오면 사줄게.” 지나가다 한 말이 약속이 되었다.
교육을 이수하고 반년이 되어갈 즈음, 학생으로부터 정말로 연락이 왔다. ‘곧 군대를 갈 것 같다.’, ‘얼마 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 ‘큰아버지를 도와 거제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스쳐가는 일이라도 나에게는 하나의 인연이 되었다. 무사히 졸업하고, 잊지 않고 연락을 준 학생에게 고마움도 있었지만, 보람과 같은 뿌듯함이 컸다.
곧 있으면 복무를 시작한지 1년이 된다. ‘많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부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원치 않았고, 갑작스레 결정된 사회복무였지만 그렇기에 갖게 된 변화의 기회에 대하여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가장 좋았다.
눈에 띄지 않고,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을 ‘학교’ 또는 ‘교실’, 거창하게 말해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나무는 ‘선생님’, 그리고 풀은 ‘학생’이라고 본다. 나무가 썩어버리면 숲 역시 썩어버린다. 아름다운 숲에는 반드시 여러 가지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을 아름답게 하는 나무들은 주변에는 풀이 있다. 풀이 자라지 않는 곳에 나무 역시 자라지 않는다. 사회복무요원 역시 풀이다. 아무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의미를 가지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나무를 더 돋보이게, 숲을 더 푸르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울창한 숲 속에 우거진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존재한다. 남은 1년, 조금 더 자부심을 갖고 복무할 것이다. 조금 더 배워가며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내가 기대된다.(konas)
김상훈(부산광역시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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