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㉑〕20초의 기적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생각과 태도의 변화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점령하고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회색빛 세상을 걷는 모습을 매일 같이 작은 두 눈으로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바쁜 걸음으로 걷고 화려한 자동차를 타고 경적을 울리는 날을 기다리며 나의 지식을 숫자로 표현한 성적표와 능력의 개수를 알려주는 자격증에 매달리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냉기로 채워진 가슴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머리는 지성과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파악하려고만 하였다. 냉기와 독기 오기로만 가득한 나에게는 세상이 더 이상 따듯하지 않았고 열심히 치고 올라가지 않으면 한기가 가득한 세상에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매일 스스로를 다그치며 자기중심적으로만 살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오만 하는 시간은 단 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22세의 겨울, 사회복무가 예정되어 있어 정신없던 대학생활에 쉼표를 찍으며 훈련소 입소를 기다리며 나의 미래를 꿈꾸는 날들이었다. 성적은 점차 오르고 있었고 마음에 사람을 담지 않으니 인간관계로 고민할 것도 없었고 타인에게 시기, 질투,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술 한 잔에 농담을 던지며 헤픈 웃음을 짓는 날이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자지러지듯 웃게 되고 얼굴만 보아도 행복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술은 이미 우리 모두를 집어삼킨 뒤였고 하나 둘 눈에 초점이 흐릿해지던 찰나에 친구 놈 하나가 공익근무를 하게 된 나를 비꼬기 시작했다. 나의 표정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정적이 찾아 왔고 얼굴이 상기되어 버린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검은 하늘아래 축 늘어진 나의 어깨는 나의 기분을 대신 말해주었고 투덜투덜 집으로 향했다.
그 먼 거리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때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패배감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취업준비에 밤을 새며 노력했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매질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무가 사회복무요원 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받았기 때문에 충격은 상당했다. 친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시간은 단 5초에 불과한데 나는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에 회의감을 느끼며 패배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을 마무리하고 훈련소를 다녀온 뒤 차량등록 사업소에서 복무를 하게 되었다. 지독한 겨울, 마음이 시리고 불안해서 복무하는 2년은 스스로에게 집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하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매일 아침 전화기 너머로 민원인들의 짜증과 불만을 듣고 있노라면 나의 상태는 더 이상 좋아질 수 없었고 어느새 나도 전화기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한숨을 쉬게 되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이를 악물고 욕도 해보고 짜증도 내어보고 체념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전화기는 차갑기만 하였고 그들의 불만조차 나에게는 불만이 되었다. 무거운 전화기를 들고 있는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통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업소를 가득 매우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기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들었고 최대한 빠르게 전화를 끊겠다는 마음을 먹고 입을 때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화부터 내는 민원인들과는 다르게 낮은 목소리와 어눌한 발음으로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말했다. 말을 더듬기도 하고 느려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시는지 몇 번이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어보고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사업소로 직접 방문하신 민원인들의 취득세 신용카드 납부 민원도 밀린 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들의 짜증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전화를 얼른 끊어야 될 것 같았지만 나를 믿고 전화로 천천히 이야기 해주시는 민원인에게 죄송해서라도 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날은 엉망으로 끝이 났다. 전화민원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였고 카드납부 민원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에 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모든게 엉망이었다. 위로 삼아 노래를 들으려 이어폰을 귀에 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자만했던 지난날, 패배감을 느꼈던 날, 노력했던 날도 나는 단 한번이라도 잘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고 그때의 방식, 태도, 나의 생각은 최상이었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최선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가 엉망으로 마무리되었고 나의 지난날도 엉망이 되었다. 노래는 아직 전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매일을 엉망으로 만들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스스로의 시간을 부정하게 된 그날 이후부터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을 느꼈고 어떤 어려운 그 무엇도 해낼 것 같던 마음은 어느새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린 뒤였다.
그러던 중 참새가 지저귀고 푸른 나뭇잎이 빛을 내는 날이었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을 시작하고 어제와 같은 시간에 컴퓨터를 키고 주변정리를 하고 지극히 평범한 업무를 하며 오전을 보냈고 그와 다르지 않는 오후를 보낼 거라는 생각에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그때 사업소 문을 열고 평범한 할아버지 한분이 들어오시며 공익 근무요원이 어디 있냐고 찾았고. 나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민원인께서 나의 전화 응대가 맘에 들지 않아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뒷문으로 도망갈까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할아버님은 어느새 책상 앞에 서서 손에 괭이고 오신 사탕을 나의 손에 쥐어 주셨고 천천히 입을 때기 시작하셨다. “고..고맙다는...마..말을 하고...싶었어..요” 정확하지 않고 느린 말속에 고맙다고 말씀 해주시는 할아버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 보았고 사탕을 쥔 나의 손이 어찌나도 작아보였는지 부끄러워 할아버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할아버님께서는 전화를 끝까지 들어주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나의 손을 쥐고 흔드셨다. 그 마음이 어떠하셨는지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님의 눈빛과 따듯하게 잡아준 손,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를 말씀해주시는 말들이 나의 마음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웃으시는 얼굴로 다시 아드님의 차에 오르시고는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항상 건강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웃던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다. 그동안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하고 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었고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잘하는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 나에게는 그 어떤 언변가의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창피해하는 나는 화장실 두 번째 칸에 앉아 딱 10초만 울자고 앉아 10분을 펑펑 울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1주일은 얼굴이 부어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좋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고 얼어붙었던 마음과 독기로 가득 찼던 생각에 따듯한 온기로 가득 찼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 다시 웃음을 찾게 되었다. 약한 모습보이지 말라고 스스로를 매질하기만 했던 시간에 용서라는 연고를 바르고 악착같이 독기만 가득 차 구멍 뚫린 마음에 여유라는 반창고를 붙였다. 자신을 용서하고 잘하고 있다는 여유를 가지니 힘겹기만 하던 하루하루가 새롭게 다가오게 되었고. 짜증나던 전화벨소리는 이제야 아름다운 노래였다 는걸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나는 거울을 보며 “종희야, 오늘 하루도 잘해낼 거야! 언제나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니까!”라고 몇 번을 외치고 잠들기 전에도 거울을 보며 “이 세상에 너만큼 아름다운사람이 있을까? 오늘 하루 정말 수고했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사무실 컴퓨터 배경화면에도 똑같이 문구를 넣어 매번 보며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아직은 부끄러워서 말하면서도 혼자 피식거리고 컴퓨터 배경화면을 누가 볼까 숨기기 바쁘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15초는 나를 변화시키는 바람이 되었고 그 바람은 나의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변화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세상이 색색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지금의 나는 전화로도 웃음을 전할 수 있고 나의 말 한마디로 진주시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복무하고 있다. 왜냐하면 할아버님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의 삶이 바뀐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할아버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복무한다.
할아버님의 전화를 받기까지 20초의 시간이 이후 나에게 어떠한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에게는 기적의 바람이 되었다. 사회복무요원이라 놀리던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의 시선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레이스는 100m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기에 그들이 내가 출발점이 뒤에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오래 달릴 수 있는 힘을 나는 사회복무를 통해서 얻고 있기 때문이다.(konas)
오종희(진주시청 차량등록사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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