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①] 내 나이 31, 내 인생의 작전타임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최우수’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내 나이 31, 이제 이등병 딱지를 떼고 작대기 하나를 더해 2사단 노도부대에서 근무하는 일병 박주원이다. “야! 박 이병, 어디 선임 앞에서 감히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하나?” 나이도 한참 어리고 몇 번째 동생뻘인데, 선임이라고 군기를 잡는다. 정말 화가 난다. 이럴 때 나는 또 하나의 정체성 충돌로 혼돈에 빠지게 된다.
사실 난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스키드모어 칼리지(Skidmore College)의 대학교 교수이다. 스키드모어 칼리지는 미국 뉴스위크(Newsweek)가 뉴 아이비대학으로 선정한 사립대이자, 미 전국 4,000여 개 넘는 대학 중 50위 안에 속하는 명문대이다. 나는 만 스물 여덟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옥스포드, 스탠포드 등 여러 명문대에서 강연한 경력도 있다. 그렇다. 미국 대학교 교수인 나는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대한민국 육군으로 입대해 현역으로 복무 중이다. 그래서 많이들 묻는다.
“도대체 왜? 늦깎이 나이에 군대를?”나는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오랜 생활을 해왔다. 여덟 살 때 우리 가족은 선교를 위해 아프리카 케냐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친척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하는 것이 싫었지만, 더 두려웠던 것은 아프리카의 기아와 열악한 환경이었다. 어린 나에게 케냐는 무서운 곳이었다. 나는 울먹거리며 외쳤다. “아빠는 바보야!”11년 동안 아프리카 태양 아래서 학교를 다녔다. 외롭고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밤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눈물은 매일 밤마다 흘러내렸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낮이 되면 공부하고 적응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들이 지나자 어느덧 케냐는 나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빗물을 받아서 설거지를 하고, 그 물을 모아 화장실 물을 내리며 사는 일에 익숙해지고, 운동화 바닥이 다 닳았을 때는 자동차 타이어 조각 고무를 꿰매 신었다. 비오는 날 타이어 조각을 꿰맨 운동화를 신고 걸어가면 내 발자국은 자동차 바퀴 자국으로 찍혔다. 나의 하얀 피부를 보고 놀렸던 아이들은 내 친구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케냐를 떠났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케냐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아주 소중한 추억의 자리를 차지하고 남아있다.미국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생활비까지 받으며 나는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모두 10년 안에 취득했고,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한국 사람인 내가 치열한 교수 경쟁률을 뚫고 사립대에서 정년을 보장받는 과정인 테뉴어(Tenure) 트랙 교수로 초빙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서른 되기 전에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성공했다고 말한다. 젊은 나이에 명예를 얻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서게 됐으니 사람들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한참 성장하고 유명해지고 승승장구해야 할 시기에 군대에 입대를 했다. 많은 사람들에겐 그게 너무 아깝고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국외로 이주해 오랜 해외생활을 해왔고,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에 더더욱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입대를 했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심 때문인가? 한국 군대를 입대해서 얻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틀리진 않다. 명예, 권력, 돈, 시간, 기회 등, 나는 사람들이 노력해도 얻기 힘든 것들을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내려놓았다. 이제는 내 자신을 훈련병과 이등병으로 낮춰야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선임들과 간부들에게 반말을 듣고 그들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 대학교 교수로서 군대 계급 사회의 졸병으로 적응하는 것이 처음엔 정말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고, 통제된 삶을 살게 되었다.하지만 내가 입대하기 전부터 다짐했던 것이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과정 속에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군대에 있는 시간을 버리는 시간으로 생각을 하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에 보물 같은 시간 또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우리 부대 화장실에는 도미니크 로로(Dominique Loreau)의 글이 곳곳에 붙어있다. “우리가 진정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의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을 그저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질이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모든 건 차곡차곡 쌓이는 법이다.”인생의 작은 것에 충실하면 더 큰 것에도 충실할 수 있는 법이다. ‘다음에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기보다 오늘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다음에도 잘 할 수 있다.
21개월이라는 시간은 우리 인생에 잠깐 멈춘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예를 들자면, 우리 부대에서는 취침시간 22시부터 24시까지 공부 연등을 허락하고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나는 밤마다 공부 연등을 하고 새로 나오는 논문들을 읽기도 하며, 논문을 쓰고 편집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쓴 논문이 일병 4호봉 때 영국 학문 저널에 게재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같은 생활관 동기 한 명은 밤마다 일본어 공부를 하고, 또 한 명은 영어공부를 한다. 해외 파병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동기도 있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피곤해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쪼개서 본인의 인생을 개척하고 열심히 준비해 나가는 전우들에게는 이 시간이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또 군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앞을 내다보게 하고, 진보적으로 나아가게 한다. 고정된 옛 군대 전통이나 문화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고 도전하게 한다. 올해 초에 도입된 수신용 핸드폰의 예를 들어보자. 각 생활관마다 병사들을 위해 수신용 핸드폰이 보급되었다. 일과 시간 후에 부모님들과 지인들은 복무 중인 병사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보급된 수신용 핸드폰이 군대에 허용되고 생활관 안에서 쓸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을 거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계급별 동기 제도이다.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동기별로 생활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 부대도 계급별 동기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몇 달 간격으로 동기가 되었다면 이제는 계급별로 동기가 되는 것이다. 같은 일병이었다가 한 명이 먼저 상병으로 진급하면 선임이 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계급의 중요성을 앞세우고 존중해 주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이것으로 인해 동기들이 더 많아지고 더욱더 전우애와 단결을 강화시켜준다.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인간관계가 있다.
군대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밖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피하면 끝이지만, 군대 생활에서는 같은 동기, 선임, 후임, 간부가 매일 부딪히며 생활해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같이 생활해야 하며, 같은 군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한다. 군대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인간관계 훈련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교훈이지 않을까 싶다.
군 입대를 앞둔 후임들과 복무 중인 전우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군 복무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축구나 농구 게임에 있는 ‘하프타임’ 또는 ‘작전타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20대까지 즉, 군 입대 전까지 ‘전반전’을 열심히 살아왔으면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작전을 세우자.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보충하고 지식을 쌓자. 한발자국 물러서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되돌아보자.
내가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명언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은 목표를 너무 높게 세워서 그걸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세워서 그걸 덥석 이루어버리는 것이다.” 꿈을 크게 꾸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잘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써야 할까? 우리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훨씬 길고 할일도 더 많을 것이다.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작전을 세우고, 목표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시간이다.
군대에 있는 시간은 인생의 ‘작전지속지원’의 시간이다. 군대에서 경험하는 모든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 부대에서 운동하던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국군홍천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지금까지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 왔었고 병원에 한 번도 입원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부상은 나에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재활하는 시간에도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교수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해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자대에서 그리고 군병원에서 여러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군 생활을 통하여 습득한 경험들은 전역 후 미국 대학의 교수로 돌아갈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어질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아킬레스건만을 재활하는 것이 아니고 군 생활 내내 다양한 훈련들을 통하여 내 삶의 근육을 키우고 단련시키는 경험을 하고 있다. 군대에서는 통제된 생활을 하게 되지만 반대로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내 나이 31, 앞으로 남은 늦깎이 군 생활 동안 겪게 될 어떤 어려움이나 갈등, 문제도 두렵지 않다. 첫째는 내 나라, 내 조국을 지키는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애국심 때문이고, 둘째는 군 생활을 통하여 경험하고 쌓여갈 내 삶의 근육들은 더욱더 튼튼하게 단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단련된 내 삶의 근육들은 앞으로 펼쳐지는 내 인생 후반전을 살아갈 때 두고두고 사용될 내 삶의 밑천이요 자본이 될 것이다.(konas)
2사단 17연대 일병 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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