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③] 후회는 없다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우수’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선택의 여지없이 이행해야 하는 병역 의무, 나는 군대라는 곳을 자원해서 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4년간 해외에서만 살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중국에서 보냈고, 홍콩에서 장기간 공부한 덕에 홍콩의 영주권을 취득하였다. 병역을 면제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고, 혼자 많은 생각과 고민도 했다. 그리고 현재 육군 17사단 토우중대에서 복무중인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21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군대를 가지 않고 돈을 벌거나 공부를 한다면? 남들보다 21개월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고, ‘과연 내 조국을 위해 21개월이란 시간도 아까워하는 게 창피한 일은 아닐까’ 싶었다.
ROTC 장교로 제대하신 아버지의 권유와 대다수의 한국 유학생들이 입대를 위해 휴학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을 굳혔다. 입대 신청부터 휴학계를 내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입대 한 달 전에야 부모님께 입대 사실을 알리자 두 분 모두 깜짝 놀라셨다.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고, 어머니는 뭣 하러 위험하게 입대 하냐고 걱정하셨지만, 내심 대견스럽게 여기셨으리라 믿는다.
2015년 11월 30일, 아침 일찍 육군훈련소로 향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줄지어 훈련소에 들어서고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오는구나 싶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작별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통화했다. 내가 군대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도 끝내는 “우리 아들 다 컸다.”며 대견해 하셨고, “몸만 다지지 말고 건강하게 제대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집합을 위해 연병장으로 돌아설 때, 아주 잠깐이지만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보았다. 속으로 에이 설마 우리 아빠가 생각하며 조교들의 통제를 받고 있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 훈련소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군대의 모습과 달라 놀랐다. 깨끗하고 넓은 생활관, 흔히들 ‘짬밥’이라며 맛없다고 들은 군대 밥이 나는 굉장히 맛있었다. 신체 칫수를 재고 전투화, 전투복 등 보급품을 받았는데, 질이 좋았다. 특히 전투화의 방수성은 내가 지금껏 신어봤던 그 어떤 신발들과 비교해도 단연 으뜸이었다.
입대 전 예상했던 것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렴, 군대인데 입대하면 힘들겠지.’ 생각하고 입대했더니 ‘역시 힘들구나!’란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평소에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다가 사회와도 단절되고 조교들의 통제를 받으려니 솔직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조교들이 천천히 가르쳐 주어 군대 예절을 배우고, 주의사항을 익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차차 적응을 해 나갔고, 훈련소 동기들과 많이 친해졌다. 동기들이 성격이 다르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그 힘든 훈련들을 같이 겪으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훈련소 훈련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면, 각개전투와 행군이었다. 특히 내가 입대하고 훈련을 받을 즈음엔 겨울날씨가 돼서 야외에서 구르고 뒹굴어야 하는 각개전투는 너무 힘들었다. 땅이 얼어 그 위에서 기어 다니려니 온 몸이 아팠고, 산속 날씨에 바람도 쌩쌩 부니 훈련 받으며 얼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종합 각개전투 평가를 볼 때, 장애물을 넘고 산길을 달려 골인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훈련소 수료를 앞두고 행군을 했다. 완전군장을 메고 20Km라는 긴 시간에 걸쳐 행군했는데, 행군 간에 휴식시간도 충분히 주고, 에너지를 보충해 줄 건빵 등도 먹었기에 완주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럼에도 행군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묵묵히 걸으며 그 긴 고생스러웠던 훈련소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훈련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이 힘든 일을 우리가 해냈구나! 애 먹었지만 결국은 해 냈었지.’ 하는 성취감을 느끼며 훈련소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수료식이 다가왔다. 허전했던 전투복 가슴팍에 이등병 약장을, 어깨에는 태극기를 달게 되었다. 군 생활 21개월 중 1개월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수료식 당일에는 군 생활이 다 끝난 것처럼 마냥 기쁘고 좋았다. 아버지와 누나가 수료식 날 면회를 와서 그동안 꿈속에서만 봤던 피자와 치킨을 배터지게 먹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막을 내리고, 앞으로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할 자대에서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17사단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에 있는 17사단에 도착해 사단보충대에서 지내다가 눈 깜짝할 새에 17사단 토우중대로 전입하게 됐다. 처음에 자대에 도착했을 때, 여기가 무슨 임무를 하는 부대인지, 내 선임들은 누구일지, 내가 적응을 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내 근심들을 말끔히 지원해준 토우중대의 모든 간부와 용사들이었다. 전입오자마자 다들 내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며,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보라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나도 선임들의 관심과 호의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일을 했고, 그 결과 부대에 빨리 적응하고 모든 중대원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자대에서 생활한지 다섯 달도 채 안 되지만 중대원들이 가족처럼 느껴지고 토우중대가 집처럼 느껴진다.
앞으로의 군 생활 중 어떤 훈련이 기다리고 있고,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내 주변에 나처럼 또는 다른 어떠한 형태로 병역이행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입대를 적극 권장해 주고 싶다. 현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살면서 내 나라를 지키려 2년도 안 되는 시간마저 투자하기 꺼려하는 것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konas)
17사단 토우중대 일병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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