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④] 진정한 대한의 건아가 되어가는 의미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장려’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우리 가족은 1984년도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민을 갔고, 그 후 6년 뒤인 1990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 태어났다. 2000년엔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카타르로 옮겨 나의 나머지 10대를 그곳에서 보냈다. 초‧중‧고 모든 과정을 영국학교와 미국학교를 다녔고 대학 또한 캐나다 UBC에서 졸업을 했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 한국인 친구들은 나와 같은 현지2세들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의 문화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다시 말해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이러한 부족한 환경에서 부모님은 나와 형들에게 최소한의 한국 문화, 역사, 예절 그리고 언어를 집에서 교육하셨다.
군 복무의 중요성도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 들었다. 나는 한국에 사는 20대 초반 남자들의 공통된 고민인 군 입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나라를 위해 2년이란 세월을 헌신한다는 것이 불공평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 아버지는 한 예를 들려주셨다. 바로 유대인들의 애국심이었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진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 입대를 한다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나라 없이 세계 곳곳에서 살면서 억압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끔찍한 대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은 국가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1948년 국가(이스라엘) 선포 이후 지금까지 많은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또한 이스라엘과 같이 오랜 세월동안 주변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억압과 침략을 받아왔고, 1910년에는 일본에게 침략당하여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고통을 받았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고 아직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다른 점은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국가 없는 고통을 몰라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군 복무를 기피한다는 거다. 국가가 있어 혜택을 누려왔으면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그 국가를 온전히 물려줘야 한다는 거다. 그런 아버지께 군 복무를 하는 시간에 국제무대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군 복무보다 조국에 더 이익이 된다는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군 복무가 힘들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기피하면 어떻게 인생에서 겪을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서 성공을 못하는 사람은 세계무대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는 하였지만 군대는 가기 싫었다. 그리고 2년 이란 시간이 지났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2년 이란 세월동안 난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나와 달리 두 형들은 모두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한국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였다. 큰 형은 공군 통역 장교로, 둘째 형은 육군 통역병으로 조국을 지켰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기업을 거처 큰형은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를, 둘째형은 스페인과 미국에서 MBA과정을 밟고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형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한 번 상기되었고, 성공의 첫 관문은 군 복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를 통해 사회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고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이 미래의 나에게 가장 큰 장점이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난 2014년에 한국에 귀국해 그해 12월 육군 현역으로 군 입대를 하였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불효자로 살아 왔던 삶을 깨닫는 날이 바로 입대일이다. 내가 군 입대를 결정하고 입대 날짜를 받던 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한국에 살아보지도 않았던 내가 군 입대를 한다고 하니 많이 걱정 되셨는지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 어머니가 이런저런 음식을 해주시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셨을 때 나는 다 귀찮아 친구들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그리고 난 육군훈련소에 입교했다. 입교 후 2주쯤 지났을 무렵 훈련소 중대장님이 나의 기록부를 보시고 카타르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그러시고는 갑자기 내 어머니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입영식이 끝나고 훈련병 가족이 모두 떠난 후에도 그 추운 날씨에 오랜 기간 어머니가 훈련소 주변을 맴도셨다는 거였다.
우연치 않게 중대장님이 지나는 길에 보고 “왜 아직도 여기 계시냐”고 물어보셨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살아보지 않은 내가 걱정이 되어 훈련소를 못 떠나고 계신다고 하셨단다. 부모님에 대한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한마디조차 안 하고 입대한 것이 마음을 찢을 듯이 아팠다. 훈련소는 잊고 있던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효도를 다짐할 수 있는 곳이다.
육군훈련소에서의 생활은 예상대로 너무 힘들었지만, 인생에 필요한 지혜를 배웠다. 특히 종교행사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감명 깊게 남았던 설교 말씀 중에 하나는 군 생활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인생의 ‘일시정지’인 상태이라는 말씀이었다. 군 입대 전까지 우리의 상태는 지속적인 재생상태로 나의 실수나 단점을 쉽게 돌려볼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군 입대와 동시에 일시정지인 상태가 되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보완할 점을 찾는 성장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난 나의 삶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에 후회를 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정말 재생상태였다. 학창시절에는 공부가 성공이라 믿어 열심히 공부해 세계일류 대학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의 삶의 나침반은 갈 길을 잃었다. 하지만 논산 교회 종교행사를 통해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을 알아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모방하려고 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이 큰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내 인생의 구체적인 삶의 계획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세부적인 계획표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기초적인 설계는 끝났다. 설계 중에 제일 큰 부분은 살면서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과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다. 군에서는 정말 다양한 책들을 장병들에게 제공해 준다. 그 덕에 나는 한 달에 적어도 두 권씩 읽어왔다.
훈련을 통해 얻는 교훈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류를 정리를 하는 일은 귀찮지만, 이 일이 비록 작은 일에 불과해 보여도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함으로써 오늘 하루 동안 닥칠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훈련소에서는 아침마다 촉박한 시간 안에 환복과 침구류 정리를 해야 했다. 시간이 가면서 정리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벼룩만한 발전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과 노력만 있으면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긍정적인 태도는 힘든 훈련이나 고난 속에서 나에게 힘과 밝은 모습을 주었다.
훈련소 수료식 이후, 마치 나의 군 생활이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직과 자대배치를 받는 순간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논산에서 보직을 취사병으로 받고 최전방 사단인 6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 왠지 처음부터 군 생활이 꼬이는 것 같았다. 오만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일기장을 꺼내들어 군 입대를 한 계기부터 차근차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하기 힘든 경험을 많이 해보자는 거였다. 나는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칼질과 요리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전방사단에 배치되는 것은 후방보다 분단국가인 한국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느 정도 내 생각을 정리하니 맘이 편해지면서 다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생활관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을 때 모든 중대원들이 찾아와 인사를 해주고 반겨줬다. 잠시 선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행정보급관님과 면담을 하는 동시에 내가 GOP에서 취사병으로 군 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면 취사병 대신 나에게 맞는 보직을 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GOP에서 근무를 한다는 말에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GOP에서 군 생활을 한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이고 분단국가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전방근무를 하겠다고 행정보급관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2주 후 나는 레토나를 타고 전방으로 향했다.
전방에 도착했을 때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철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또한 근처에 북한군이 남한으로 은밀하게 진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제2땅굴을 보는 순간 분단국가로서의 슬픔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군 입대는 정말 필수라는 걸 깨닫고 내 주특기인 요리를 열심히 배워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찼다.
요리 초보인 나에게 정말 실력 있는 맞선임을 만났다. 정말 모든 전우들이 나의 맞선임의 요리 실력에 극찬을 보낼 정도로 요리 실력은 일품이었다. 그런 선임 밑에서 요리를 배우는 건 행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잘못 배워서 맛없는 음식을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부담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내가 얻은 교훈인 시간과 노력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자신이 있었다. 일단 기초적인 것부터 열심히 해 나갔다. 취사병의 기본인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했고, 조리 시작 15분 전에 취사장에 나와 조리법을 읽고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 놨다. 일을 스스로 찾고 공부하여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모르는 부분은 선임들한테 조언을 구했다.
물론 일을 배우면서 실수를 했지만, 실수를 줄이기 위해 요리나 다른 중요한 팁을 노트에 꼼꼼히 적어 매일 저녁에 공부를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모습에 선임은 자신의 요리 비법을 알려줬고, 그 비법을 적용할 수 있게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줬다. 그 덕분에 나의 요리 실력은 전우들이 인정하는 실력이 되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은 결국 나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이어져 내가 해외파병을 원했을 때 간부님들께서 정말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결과는 비록 안 좋았지만 나의 열정이 입증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군에 입대하고 난 나의 하찮은 한국어 실력을 실감했다. 간부님들이나 장병들이 말할 때 못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상황을 넘기며 한심함을 느꼈다. 나의 부족한 한국어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군에서 제공해주는 진중문고와 국방신문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 공부 방법은 읽기 쉬운 한국 책들부터 시작했다. 큰소리로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의 뜻을 사전이나 주변 병사들에게 물어보면서 필기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나의 한국어 실력은 많은 발전을 했다. 정말 군 생활 중 상당한 양의 독서로 인해 한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나의 관심사인 세계흐름을 공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토머스 프리드먼의 「The World Is Flat」란 책은 21세기의 세계 흐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면서 내가 작성하고 있는 인생 계획표의 틀을 잘 잡아주었다.
또한 다니엘 핑크의 「A Whole New Mind」라는 책에서는 하이 터치와 하이 콘셉트가 점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창조적‧독창적‧예술적인 콘텐츠와 나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보완을 하기로 결심했다. 군 생활이 아니었으면 이러한 자기계발은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군 복무가 정말 의미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여서 미국이나 다른 서양 국가와는 달리 인간관계가 끈끈한 민족이다. 그러한 민족의 끈끈함을 군대에서 많이 배워나갔다. 전국에서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남자들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지내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외국에서 평생 살아왔던 나에게 한국의 문화는 어색했다. 예를 들면 선임들이 신병들에게 세면도구나 음식을 사주는 내리사랑이라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혼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을 왜 선임 돈으로 사는지 이해가 안 됐다. 또 다른 예로는 병사들끼리 샤워 약속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샤워는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남자들끼리 샤워 약속을 하는 것은 이상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이런 것들이 다 한국인의 정 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먹을 것이나 생필품을 사주는 것은 후임들의 부대 적응을 돕고, 친분을 쌓는 이유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샤워를 같이 하는 것은 샤워를 하면서 일과시간에 못 했던 고민거리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선임들이 후임들을 정말 잘 챙겨주는 정이 많은 문화는 정말 어느 곳을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군 생활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단시간 안에 GDP 11위로 성장한 경제대국이다. 한국인의 정신과 노력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었고, 이런 나라를 지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영광이다. 그리고 군대를 통해 한국의 아픈 역사와 한국문화 그리고 효의 중요성도 알게 되어 진정한 대한의 건아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기계발을 하여 나의 미래계획서를 기획할 수 있게 되어 일석이조였다. 이제 나는 군 복무를 통해 얻은 한국인의 정신과 끈기,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리더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konas)
6사단 7연대 병장 류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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