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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⑤] 나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다

Written by. 양준호   입력 : 2016-09-15 오전 1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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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장려’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경쾌한 알람소리 대신 구슬픈 이슬람 사원의 찬양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하였다. 이슬람 종교의 색이 강한 인도네시아에서 인생의 전반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와 힌두교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종교 문화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던 나에게, 부모님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기회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얻은 경험들이 어느새 두려웠던 나의 군 생활에 희망이 되어 있었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의 DMZ 지뢰 도발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이미 머리끝까지 화나 있었다.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그날, 떨리는 마음으로 입소를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입대한 국군장병들을 치하하는 기사가 뉴스에 보도될 만큼 세상은 뒤숭숭했었다. 그럼에도 입소 5일차 내 일기장에는 훈련소의 꽃인 표창을 받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98번 훈련병으로서 양준호는 다시 태어났다. 모든 게 낯설었다. 다행스럽게 영주권자들은 같은 생활관에 배치해 주어 불편했던 생활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특별한 훈련이 없던 날에는 동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20대 초반인 남자가 좋아하는 태국의 관광지와 먹거리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영주권자로서 입대 결정을 한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다리던 야외 훈련이 시작되었다. 영주권자들도 대한민국의 늠름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첫 훈련인 사격예비훈련에서 군인의 기본자세인 큰 목소리와 절제된 행동으로 지시사항을 이행하였다. 운이 좋게도 소대장님은 휴대용 마이크를 넘겨주시면서 훈련통제권을 인계하였다. 무려 215명이 되는 훈련병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혹시나 실수할까봐 두려웠지만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패기 있는 목소리와 함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소대장님은 다음날에 있을 사격 훈련도 부탁하셨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표시로 어깨를 툭 쳐주셨는데 그때만큼 내 자신이 뿌듯했던 적이 없었다.

 다음 훈련은 각개전투였다. 며칠에 걸쳐서 하는 큰 훈련인 만큼 체력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이틀째 되는 날, 산언덕을 헤집고 진흙탕과의 사투 끝에 돌아왔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마는 불구덩이처럼 뜨거웠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일단 내색하지 않고 빠르게 취침을 하였다. 다음날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를 했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분대장이 낌새를 눈치챘는지 이번 훈련을 열외 시켰다. 마지막까지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억울하여 겁도 없이 직접 중대장님을 찾아갔다.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겠다.” 라는 의지를 표현했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허락해 주셨다.

 물론 군장을 메고 가는 과정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하늘에 붕 떠있는 느낌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분대장들과 동기들의 걱정을 한 몸에 떠안았지만 절대 포기하기는 싫었다. 야속하게도 날씨는 유독 덥고 습하였다. 마지막 코스인지라 언덕의 가파른 경사도 눈앞을 깜깜하게 만들었다. 뒤처진 모습을 보고 한 걸음에 달려와 준 동기들 덕분에 힘이 났다. 말로만 듣던 동기애를 직접 느껴보니 위력은 대단했다.

 사회에 있었으면 바로 포기해버렸을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함께해 준 전우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전우들에게 아껴놨던 가나파이로 마음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훈련의 끝을 알리는 제식 훈련을 하던 도중 분대장이 98번을 호명하였다. 앞으로 나가면서 무엇을 잘못하여 불려나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때마침 다른 분대를 통솔하는 분대장이 지나가면서 “98번 상 받더라!”라는 말을 외쳤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순간 입소 5일차에 쓴 일기장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사회에서는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누군가의 뒷모습만 뒤쫓아 가기에 바빴고,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었다. 그동안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준 분대장들과 전우와 같이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수료식 날짜가 성큼 다가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21명의 훈련병들과 부모님들 앞에서 메달을 수여받고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도 열정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였다. 모든 행사가 끝이 나고, 6시간 동안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양념치킨을 먹다가 문자 한 통이 왔다. 자대는 의정부에 있는 2군수지원사령부. 이제부터가 진정한 군 생활의 시작이라는 걸 직감하였다.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였다.

 10월 9일. 앞으로 21개월 동안 지내게 될 자대에 도착하였다. 훈련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철저한 계급체제로 부대의 막내로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진짜 사회생활이 시작된 걸 온몸으로 느꼈다. 실수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적당한 센스와 공감능력을 형성하여 간부님들과 선임들에게 이쁨을 받는 것이 우선이었다.

 11월 5일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명칭은 ‘대대전술훈련’. 이등병 때 처음 들어본 ‘라운드 하우스’ ‘화스트 페이스’ ‘증가초소 운영’이라는 용어에 정신이 없었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부대이동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고 다 같이 힘을 합쳐야만 24인용 천막을 설치할 수 있었다. 팩이 무엇이고, 지주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었다.

 다시는 정신없이 끌려 다니기 싫어 따로 24인용 천막을 연구하였다. 2월에 있을 혹한기 훈련 때는 꼭 잘하고 싶었다. 3개월이 지난 뒤, 드디어 말로만 듣던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부대이동 조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저번 훈련보다 얼마만큼 성장하였는지 시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부대이동 명령이 떨어지고 함박눈이 오는 날, 트럭을 타고 유유지에 도착하였다. 인원은 고작 8명. 하지만 설치해야 되는 천막은 6동. 시간은 촉박하고 날씨는 추웠다. 얼어붙은 땅 때문에 팩은 박히지 않았고, 체력은 점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리더로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내색하면 부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상황이었다.

 각개전투 3일차가 생각이 났다. 뒤처져 있는 나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준 전우들처럼 부대원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수십 번 외치고 힘들어하는 전우를 격려하면서 힘겹게 부대이동을 끝마쳤다. 예상하지 못한 극한의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지만, 감사하게도 혹한기 훈련 포상이라는 큰 선물을 받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2016년을 맞이하면서 분대 생활관은 동기 생활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변경이 되어 병사는 물론 간부님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이 따로 호출하여 ‘조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아직 전입 100일차도 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두려운 마음보다는 전역 후 후배들에게 당당히 군대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군인은 오로지 명령에 복종해야 하므로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하였다.

 조장을 수행하는 동안 많은 전입 신병들을 맞이하였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모든 게 두렵고 낯선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부모님의 품이 간절하다는 걸 알고 신병들에게 항상 통화를 유도하였다. 또한 형식적인 질문을 먼저 물어보기보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친근감을 형성시켰다. 그래야 후임들이 선임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권자로서의 군 생활은 어떻습니까?” 한 후임이 질문을 던졌다. 사실 군대 자체가 각양각색의 특징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해 줄 말은 없었다. 그저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첫째, 군인의 생명은 명령이므로 지시사항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 둘째,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고 하라는 것만 할 것. 마지막으로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면 긍정적으로 할 것. 찡그리는 표정보다는 항상 웃는 얼굴로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지하게 조언해 주었다. 이렇게 후임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보내다가 조장 역할이 끝나게 되었다.

 나에겐 또 다른 도전 과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당직사관의 업무를 도와주는 ‘당직 부사관’이라는 역할이다.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신성한 시간인 점호시간을 진행하는 모습이 위엄 있어 보였다. 매일 점호시간마다 다짐했다. 당직 부사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토록 바라던 당직 부사관이 되었다.

 저녁점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자신이 뿌듯했고 더 이상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작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배들에게 다양한 경험들을 조언해줄 수 있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마지막으로 자원 병역이행자 체험수기를 통해 277일 동안 쓴 일기장을 다 읽어볼 수 있었다. 군대에서 나는 처음으로 목표를 위해 치밀한 과정을 준비하였고, 열정적으로 추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기회가 많았다. 군대는 시간낭비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결코 아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법, 리더와 조직생활의 경험들은 돈 주고는 배우지 못하는 깨달음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주권자들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다. 살아온 배경만 다를 뿐이지 못 할게 전혀 없다. 물론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다만, 실력으로 승부하기만 한다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많은 영주권자들이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21개월간의 짧은 기간 동안 군대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체험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konas)

2군지사 2의무보급정비대 일병 양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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