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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⑥] 서른 한 살의 병영생활

Written by. 강윤석   입력 : 2016-09-15 오전 11: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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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장려’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가벼운 스윙과 함께 골프채가 공을 때리는 묵직한 진동이 손을 타고 느껴진다. 공은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홀을 향해 날아간다. 짜릿한 느낌이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느껴진다. 공이 내가 목표했던 곳에 안착한 것이다. 나는 이런 느낌이 좋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orea PGA Tour 골프선수다. 늦은 나이에 하던 일을 뒤로 하고 이곳, 군대에 왔다.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이다.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현실로 돌아온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관물대들이 눈에 들어온다. 졸음과 함께 침구류를 정돈하는 전우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내 나이 서른하나, 다른 전우들보단 조금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 있다. 뉴질랜드 영주권자이고, 외국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군대에 가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위 선후배들은 안가도 되는 군대를 굳이 가겠다고 하는 나의 마음을 이해 못하겠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골프선수로 활동하면서 내 가슴 한 켠에는 늘 내 조국의 이름을 내세우고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입대를 결정하게 됐다.

서른 살 막내 이등병 강윤석

 군대가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나보다 아홉 살이 적은 전우가 선임이 되는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자대배치를 받고 우리 대대에 처음 온 날이 기억난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생활관에 들어가 선임들에게 인사를 했다. 최고 선임병이 분대원들을 한 명씩 소개시켜 줬는데 내 바로 맞선임이 스물 하나, 계급은 일병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고 편하게 말하거나 반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많다고 선임을 무시하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군 생활에서의 경험을 나보다 먼저 했고, 군 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군 생활에 대해 알려줄 때면 나이는 어리지만 사회 선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에 와서 적응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네킹처럼 서 있어야 하는 경계근무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햇볕은 따갑고 더운 날씨에 총과 장구류를 착용하고 위병소 근무에 첫 투입되었다. 이렇게 덥고 짜증나는 날씨에 2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경계근무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적이 쳐들어오지는 않는지, 수상한 차량이나 사람이 우리 대대를 어슬렁거리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야간에 경계근무에 들어갈 때는 암구호는 필히 숙지하여야 했다. 수상한 사람이 위병소 가까이 오게 되면 엄폐 후 수하를 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계근무 시 졸거나 근무자와 사적인 대화를 하게 되면 규정에 따른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2시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는지 경계근무를 서면서 새롭게 느꼈다. 내가 하는 골프로 비교하면 겨우 9홀 정도 플레이 하는 시간인데 내가 느끼기에는 18홀을 다 플레이 한 것 보다 더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인데 말이다.

단체생활과 정해진 취침, 기상 시간

 보통 집에서는 나의 다음날 스케줄에 따라 내 방에서 나 혼자 자고 일어나 하루 스케줄에 따라 아침이 시작된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같은 생활관에서 10명 이상의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에 같이 자고 일어나야 한다. 가끔 내 옆의 전우가 코라도 고는 날이면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훈련소 때 내 옆에 자던 동기는 매일 밤 코를 골고 이를 갈았다. 피곤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코고는 소리와 이가는 소리는 훈련소를 수료하는 전날 밤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코고는 소리에 쉽게 잠에 들지 못해서 다음날 피곤한 날도 많았는데, 시간이 흘러 그 소리에 익숙해졌는지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휴가를 나가서 ‘내 방에서 편하게 혼자 자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될 줄이야. 군 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청소와 식판 닦기는 군 생활의 필수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곳의 특성상 생활관을 비롯한 건물이나 주위에는 항상 쓰레기와 먼지가 많다. 매일 아침 점호를 마치고 30분 동안 담당구역 청소를 하고 저녁 20시 30분부터 30분 동안 또 담당구역 청소를 한다. 그리고 점심때는 식사 후 식판을 닦고 취사장 청소를 한다. 군대에 와서 군인들이 이렇게 청소를 자주 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식판을 닦고 있는데 집안일을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매일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시며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시는 어머니. 군대에 와서 어머니가 매일 하시던 일을 내가 직접 해보니 어머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21개월 동안 하는 청소와 설거지를 어머니는 그동안 20년 넘게 해 오셨을 텐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거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군대에 가면 효자가 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설거지와 청소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6개월 남은 나의 군 생활의 각오

 나의 지난 1년 5개월 군 생활을 뒤돌아보면 늘 긍정적인 태도로 임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멈춘 시간 속에서 사는 기분이기도 했고, 군대에서 맡은 나의 임무와 훈련들이 내 인생에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 사무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군 생활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대대장님의 말씀이 내 마음의 부정적인 부분들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사람이 성장한다. 21개월의 군 생활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사회에 뒤처져 가고 있는 것 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군 생활이 걸림돌이 아니라 내가 목표하는 목적지에 더 가까이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군 생활이 고된 일이라고 기피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힘든 일들을 기피할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지금 하는 군 생활이 곧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성장시키는 일이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군 생활이 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군 생활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고.

37사단 110연대 상병 강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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