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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⑧] 이방인에서 대한 용사로

Written by. 김민수   입력 : 2016-09-16 오전 10: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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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입선’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이방인, 이 단어만큼 나를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간 후에 방학 때 한국을 오긴 했지만, 내 인생의 거의 반은 한국에서 보내지 않았다. 남아공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는 직장 관계로 홍콩에 가신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 워싱턴 DC로 가서 대학 1학년을 보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홍콩, 미국 그리고 한국, 어느 한 곳에서도 난 오래 머물지 못했고, 나는 어디를 가든지 이방인이고 외국인 취급을 받았다. 남아공에서는 멀리서 온 동양인, 홍콩에서는 놀러온 관광객, 미국에서는 공부하러온 한국유학생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말 어눌한 교포.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면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Korea라고 대답은 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이라는 단어가 낯선, 이방인 같았다.

 그런 나에게 징병검사통지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왜 한국 군대를 가야 하지?, 난 영주권자이고 한국에서 안 살지도 모르는데 군대를 왜 가?, 군대 가서 맞거나 다치면 어떡해?’ 하는 의문과 두려움, 그리고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변명을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나의 더 큰 미래를 위하여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방의 의무는 하는 게 맞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갔다 오는 게 큰 도움이 되고, 100세 인생에서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군인으로 지낸다는 것은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나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비록 내가 외국에 오래 살았지만, 나는 결국 한국인이고,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고, 나중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나의 꿈을 위해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5년 8월에 영주권자 자원입대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큰 마음을 먹고 가겠다고 했지만 가족과 헤어져서 입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훈련소에 입영하는 당일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소 생활은 적응하기에 정말 힘들었다. 20년 동안 살면서 나만의 개인 공간과 자유,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공간에 15명이 누워서 같이 잠을 자고, 샤워실,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지만, 내 개인 공간과 자유가 침해되는 것 같아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다행히 다른 나라의 영주권을 가진 자원입대자들과 같이 지내게 되어 조금은 위로는 되었다. 훈련소에서 여러 가지 적응 프로그램으로 배려를 해주었지만, 훈련 중 어려운 한국 단어를 못 알아듣고 조교들과 소대장님 지시사항을 잘못 이해했을 때는 나 자신이 창피하고, 왜 왔을까 후회도 되고, 군대 오기전의 생활들이 그립기 시작했다.

 매일 밥만 먹으니까, 햄버거, 치킨, 샌드위치 같은 음식이 그리웠고, 남아공 케이프타운 바닷가에서 서핑 하던 시간이 그리웠고, 미국에서의 자유로운 대학 생활이 그리웠다. 훈련소에서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인 것 같았다. 자꾸 시계를 보게 되어 나중에는 일부러 손목시계를 차지 않았을 정도였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절대 적응이 안 될 것 같던 훈련소 생활이 2주 쯤 되니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인터넷 편지로 물고기 코이 이야기를 보내주셨다. 코이라는 물고기는 어항에 있을 때는 7cm만 자라지만, 아무 테두리가 없는 강물에서는 10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도 한 곳에 한정되지 말고,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경험을 해야 더 성숙하고 큰 그릇이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다.

 나는 어항이 아닌 강물에서 자라는 물고기 코이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경험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경험 중에 하나가 군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로 훈련을 받다 보니, 훈련병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어느덧 훈련소 수료일이 다가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훈련병이라는 신분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경기도 김포에 있는 포병부대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입대한지 9개월이 되었다. 포병부대가 결코 쉽지 않는 부대이지만, 나는 훈련소 생활보다는 자대 적응이 훨씬 더 쉬웠다. 자대에서는 내가 해야 할 임무가 있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사정을 이해해주고 빨리 군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간부님들, 선임, 동기들이 도와주었고, 부대 동아리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며 전우들과 잘 지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리 부대는 절대 학습시간이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군대를 오기 전에 가혹 행위, 사고 등 안 좋은 뉴스를 봐서 나처럼 해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한국 군대 가는 것을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 자신도 그랬으니깐.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군대 생활은 절대 그렇지 않다. 면회 오신 부모님이나 친척분들에게 나의 군대 생활을 이야기 하면 모두 하나 같이 “요즘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 등의 말씀을 하신다. 결코 그냥 하시는 소리가 아니다. 예전 군 생활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6개월 동기제, 동기끼리 같은 생활관 사용, 마음의 편지 같은 것을 통하여 선진 병영문화로 바뀐 것이 그런 예이다.

 그래도 자유롭지 못한 군대이다 보니 고립되고 통제된 분위기에 갑자기 우울해질 수 있는데, 나는 훈련소에서 나름 깨달았던 나만의 노하우를 사용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이다. 식기 봉사, 화장실 청소, 힘든 작업들. 힘든 훈련을 할 때마다, ‘군대에 오니까 이런 훈련도 해보네’, ‘내가 언제 포를 쏘아 보겠어’, ‘미국 친구들한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겠군!’, ‘제대해서도 이런 것은 써먹어야지’ 라고 생각을 한다. 불침번 시간이나 위병, 탄약고 근무 때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 그때도 혼자 멍하게 서 있지 않고, 과거 내 생활에 대한 반성도 해보고, 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본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미래를 그리면, 지루하던 근무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또한 군대는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평등성과 다양성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회에서는 아직도 학벌, 재산, 직위, 외모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군대는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우리는 평등하다. 가난하든 부자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우리는 똑같은 군복을 입고, 식사도 주어진 양만 먹을 수 있고, 똑같은 분량의 일을 한다. 평등한 우리에게 나눠지는 계급은 누구나 다 시간이 되면 갖는 계급장뿐이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전우들과 생활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며,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배경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면 몇 시간, 몇 날, 길게는 몇 달을 대기하며 지내는 때가 있었는데, 뉴스에서만 들었던 남북한 상황을 실제로 몸소 체험해 보니, 그동안 외국에 살면서 남북한 뉴스를 남의 나라 뉴스처럼 무관심하게 대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제대하고 대학으로 돌아가서 나의 전공인 국제관계학을 공부할 때 나의 군인 경험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북한 대치가 한창이던 때, 선임과 동기들이 가끔 “군대 온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나는 뜻이 있어 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라틴어로 Amor Fati, 영어로는 Love Fate,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 군복을 입은 것은 내가 선택한 나의 운명 중에 하나라고 생각 한다.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훈련소에서 그렇게 생각나던 남아공의 바닷가와 미국 대학생활을 그리워하던 이방인 김민수가 아니라, 이제 나는 어느덧 TV에 걸그룹이 나오면 큰 소리로 환호하고, 휴가를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동기들과 노래방과 PX가는 것에 즐거움을 찾는 군인, 대한민국 육군 일병 김민수이다.(konas)

수도포병여단 일병 김민수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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