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치안유지법
국가보안법이 악법임을 강조하고자 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법이 바로 「치안유지법」이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1월에 발의되고 2월에 통과되어 발효된 일본제국의 법이다. 박원순은 "제정 국가보안법은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하여 이를 계승하였으며, 동시에 그 후 정권의 독재 강화와 더불어 더욱 확대 강화되어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에 이르는 원형을 이룬 것이었다"고 하여 치안유지법이 국가보안법의 모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한편 사실이면서도 다른 한편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면에서 보면 국가보안법은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법이 제정되었으니 단순히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승계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여순반란사건만 없었다면 국가보안법은 제정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여순반란사건 때문에 공산주의자의 활동을 단속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게 되었으니 비록 치안유지법이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은 당시의 상황에서 제정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단순히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른 한편 국가보안법이 치안유지법과 내용이 비슷하다는 측면에서는 국보법이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내용이 비슷하다고 하여 국가보안법이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하고 있고 또 그 법을 승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한국이 전통적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잃게 되어 사회 각 부분마다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구석이 없다. 법체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독 국가보안법만 일제시대의 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균형을 상실할 것이다. 민법 형법 등 그 어느 법도 일제시대의 해당 법률과 내용이 상당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국보법이 치안유지법을 승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치안유지법도 국가보안법도 모두 공산주의자의 활동을 단속하기 위한 법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치안유지법의 핵심 내용은 그 법 제1조에 규정되어 있다. 제1조는 "국체를 부인하거나 불법수단으로써 의회제도 급 재판소 징병 사유재산 납세의 제도를 파괴할 목적 하에 결사를 조직하거나 혹은 차에 가입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함"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표현은 "사유재산 ... 제도를 파괴할 목적"이란 것이다. 바로 공산주의자를 단속하겠다는 법의 목적이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땅에서 최초로 치안유지법이 적용된 사례는 그 해(1925년) 9월에 있었던 고려공산당 사건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로서아에 있는 조선인주의자(주의자는 공산주의자를 의미함)수령 리동휘 한명서 등과 같이 『막사과』(모스크바) 제3국제공산당의 뜻을 바다가지고 조선주의자의 통일과 규합을 목적으로 고려공산당을 조직코저 그 본부를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두고..."라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원래 이 사건의 공판은 조선서 처음되는 공산당 공판일뿐만 아니라 ... 치안유지법을 처음으로 적용하는 공판임으로 일반의 흥미와 호기심을 극도로 끌어..."라고 하여 치안유지법이 처음으로 공산당 재판에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제1조는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는" 이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공산주의자를 단속한다는 표현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체제를 지향하고 있었으므로 "국헌을 위배"한다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은 실질적으로 공산주의자를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의 활동을 단속한다는 목적의 측면에서 치안유지법과 국가보안법은 비슷하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국가보안법이 인권침해 등 악법이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권침해니 양심의 자유니 또는 사상의 자유니 하고 외형적으로 그럴 듯한 명분을 붙여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사실은 이 법이 공산주의자의 활동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또 폐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국가보안법이 있어 불편한 사람은 자유민주체제를 선호하는 일반 시민도 아니며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직 북한과 연계하여 공산주의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이 불편하고 행동의 제약을 받을 뿐이다. 실제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서든 북한과 연계된 활동이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눈여겨 볼 사실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이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승계한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두 법이 모두 국가변란을 단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 활동을 단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한 마디로 자신들이 친북한 친공산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가보안법은 더더욱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konas)
정창인(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 정치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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