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독립운동가에 권병덕 선생, 6·25전쟁 호국영웅에 김형우
민족대표 33인…월암리 전투에서 결사대 자원해 본대 철수 막아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청암 권병덕(淸菴 權秉悳, 1868~1943) 선생을 2017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선생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18세경 동학에 입도한 후 1894년 손병희의 휘하에서 후군의 책임자로 3만 명의 교도를 이끌고 동학혁명에 참여했다.
1906년 천도교에 입교해 현기사장(玄機司長)을 역임하며 교세 확장을 위해 활동하다가 1918년 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약소민족의 자결권이 강조되는 등 국제정세가 변화하자 손병희 등이 추진한 독립만세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1919년 2월 26일 재동 김상규의 집에서 다른 민족대표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했다.
독립 선언 직후 일제 경찰에 연행되어 징역 2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7년 교인들과 함께 신간회 활동에 참여했다.
1930년대 중후반 일제가 민족말살 정책을 강화하자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수록한 역사책을 저술·간행하려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고, 1943년 향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3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에는 ‘김형우’ 해병대 삼조가 선정됐다. 김형우 삼조는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독립 제5대대는 육군 제1사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월암리에 정찰대 본부를 두고 개성 방면의 철저한 수색을 감행하며, 장애물 설치, 진지보강 등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1951년 7월 23일 2개 소대로 편성된 정찰대는 개풍군 월암리 지역에서 적 1개 연대병력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김형우는 결사대에 자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총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을 뚫으며 침착하게 적 앞 10미터 이내까지 접근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실탄이 떨어지자 김형우와 5명의 결사대원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의 적을 사살하고 일당백의 육박전을 벌였으나 안타깝게도 김형우는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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