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태극소녀(홍보대사)로 거듭난 4․19소녀
『4․19혁명과 소녀의 일기』의 저자 이재영 4․19혁명공로자회 경기도지부장, 이제는 태극기전도사로 나라사랑 운동 전파에 분주
'4․19소녀'와 처음 대면한 건 약 12, 3년 전으로 기억된다. 나중 한참이 지나서야 '4․19소녀'인줄 알게 되었지만.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가락동 한 호텔에서 열린 조찬 포럼에서다. 지금은 잠정적으로 발전적 해산을 선언한 상태지만 1990년대 초 북한 핵이 국가 초미의 과제로 떠오르던 당시 서산․당진을 지역구로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현욱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국제외교안보포럼’이었다.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눌 때 4․19소녀는 당차 보이는 면면과 말수는 많지 않아도 참석자 누구에게나 따뜻한 눈길로 포용하며 특히 초청강사의 강연내용엔 귀 기울여 진지하게 듣는 한편으로 포럼 관계자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며 격려해주는 다정다감하고 극히 보편적인 우리 주변의 친근한 어머니상이었다.
필자의 뇌리에 그렇게 기억된다. 하지만 후일 포럼을 취재하면서 다가오는 감(感)은 조금은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강사의 강연 내용을 경청만 하는 청중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 핵심내용을 파고든 질문과 나아가 본인의 의견제시와 함께 논평까지 꿰면서 사회참여의식이 강해짐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함께 공유하는 스타일로의 변모라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일 듯 싶기도 하다.
바로 얼마 전 증․개정판을 낸『4․19혁명과 소녀의 일기』저자이자 4․19혁명 유공자로 건국포장을 받은 국가유공자 이재영씨다. 지금은 4․19혁명공로자회 경기도지부장으로 활발한 공로자회 활동과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한편으로 틈을 내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4․19혁명과 우리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견주어 안보교육에도 시간을 할애하며 태극기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이 지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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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소녀의 일기』초판 이후 개정판이 나오기 전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도지부 집무실에서 만난 이재영 지부장은 단아한 모습의 외모와는 달리 빠르게 토해내는 말 마디마디에서 마치 투사(鬪士)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다름 아닌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 ‘태극기’ 예찬과 절절하게 다가오는 태극기 사랑 마음에서 더 크고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무실 벽에는 온통 태극기 천지였다. 태극기 변천사로부터 시작해 각양각색의 태극문양과 태극기 제작도법, 태극기 퍼레이드 행사 사진 등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얘기의 반반이 4․19혁명과 태극기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말 그대로 ‘태극기 전도사’ ‘태극기 홍보대사’ 라 불러야함이 가장 적절해 보일 정도다. 어쩌면 드러나는 카리스마와 성격그대로면 본인 스스로가 그 직함을 미리 주고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이재영 지부장, 필자가 얼마 전『4․19혁명과 소녀의 일기』서평에서도 쓴 바 있지만 6․25한국전쟁 이후 전국은 전후 복구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업화의 걸음마를 떼던 시기에도 정국은 부정부패로 인해 사회상은 어두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부정부패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민주주의에의 갈망도 컸다. 광화문 네거리가 시민과 대학생 등이 한데 어울려 최루탄 속 구호 함성도 더해만 갔다. 경찰의 발포도 이어졌다. 생명이 종이 한 장차이로 갈릴 수도 있는 당시 현장을 목도한 18세 여고 2학년 소녀는 스스로 분노하며 일어섰다. 하얀 천위에 손수 그려 만든 태극기를 들고 부정부패 타도, 민주주의를 외쳤다. 시위대열의 선두, 지프차량위에 올라가 가슴에 펼쳐 보인 태극기와 함께 불의와 맞닥뜨렸다.
여린 18세 소녀의 어디에서 그런 의기(義氣)가 솟아올랐을까? 궁금했다. ‘자신도 모르게 군중심리에 압도돼서?’ 아니었다. 그 표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책(318쪽)에도 나오는 대목이지만 한 주간 신문에 실린 기사제목을 반박한다. “취재하는 기자에게도 분명하게 얘기했는데, 제목이 틀려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심사가 뒤틀리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차위에서 외쳤어요’ 였는데, 아니죠. 기자는 순간적인 상황과 감상적인 제목을 달려고 한 것 같았는데 저는 당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현 시국에 대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머릿속에 그리고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잘 알고 계신 부모님이 말려도, 참고 있을 수가 없었던거죠". 열혈 소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았다.
당시 18세, 여고2학년 소녀는 57년 시간의 흐름 속에 본인 스스로의 사회 공헌과 함께 사회적 기여도가 큰 네 아들의 효성아래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받는 할머니로 변화했다. 하지만 태극기 사랑펼침 운동 등 사회활동을 보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마치 57년 전 당시의 열혈소녀 의기가 그랬을까 할 정도다. 조금이라도 힘이 더 있을 때 여력이 닿는 한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카톨릭 신자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과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반국가적 활동에 대해서도 따가운 일침을 가하며 수십년 째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약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헌신하며 안보강연과 더불어 경기도내 지역과 초․중․고교에서 태극기 알리기 전도사로 변신해 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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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지부장은 4․19혁명공로자회 경기도지부가 지난해 4월과 9월 수원 화성 행궁일대에서 대대적인 ‘태극기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일궈낸 결과를 토대로 이 행사를 정례화하고자 한다. 올해도 4․19혁명 57주년을 기념하고 나라사랑 운동의 핵심 일환으로 ‘2017 나라사랑 태극기 퍼레이드’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와 관련해 이 지부장은 “엄청 힘들었어요. 예산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만큼 또 보람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처음에는 몸을 빼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특히 학생들이 많이 나와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하며 “오는 5월 두 번째 맞는 일요일(5.14)에 '태극기 얼마나 아십니까?'를 주제로 행사를 합니다. 참석자들이 직접 참가해서 다양한 체험행사로 진행합니다. 힘은 들지만 큰 보람을 갖습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 바로 우리나라잖아요. 4․19혁명에 나섰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도, 제가 들었던 태극기처럼 대한민국이라는 태극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경일이면 집집마다에 태극기가 잘 걸려있지 않아 서운해요. 우리가 벌이는 행사가 작다고 해도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 이웃들이 태극기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예견과 미사일 도발 등으로 우리를 둘러싼 안보적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다가오는 시점에서 ‘태극기’를 통한 나라사랑 운동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재영 지부장의 말과 행동에서 오늘의 우리사회 지도층과 일반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인가를 새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게 한다.
그러면서 이 지부장은 “우리 아들들도 육군 특전사 등 특수부대에서 훈련 빡세게 받아 나라에 충성하는 안보 선봉장들이예요” 역시 나라사랑 일깨움 안보전사 답다. 유쾌한 웃음으로 말을 맺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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