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의 비상시국선언은 '범(汎)국민적 저항'의 시작이다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09-11 오전 10:12:00
사회 원로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그것도 1천5백 명의 전례 없이 많은 인원이 참여한 가운데 나온 선언이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현 시국을 장고(長考) 끝에 '위기'로 진단하고서 내놓은 원로들의 고언(苦言)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이 많은 인원의 사회원로들이 한마음으로 나섰을 것인가.
지난 7월 불교계의 송월주(宋月珠)스님 등 종교·시민단체 대표 및 교수 133명이 신행정수도 건설 잠정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가 아닌가. 1천5백명을 헤아리는 사회각계 원로가 "나라를 살리자"며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는 이들 원로의 시국선언 메시지에서 그야말로 어느 특정 정파(政派)의 이해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구국차원의 우려를 읽을 수 있다. 구구절절이 갈등과 국론분열로 치닫고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고자 원로들의 경륜에서 우러나온 권고가 담겨있다.
한 나라의 발전은 장년층 이상 원로급의 경륜(經綸)과 혜안(慧眼)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정(熱情)과 추진력 - 이 '두 개의 차바퀴(車輪)'가 동력(動力)이 되어 움직일 때 가능한 명제가 아닌가. 여권(與圈)은 국민화합차원에서 서둘러 내놓은 원로들의 충정 어린 '정책적 권고'를 기필코 받아들여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을 돌이켜 보자. 2002년 말의 대선(大選)이나 지난 4·15총선(總選) 이후 정부는 온 국민의 힘을 범국민적 에너지로 결집하여 국가발전을 위해 21세기를 향한 거보(巨步)를 힘차게 내디뎠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은 '진보' 또는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엉뚱하게도 '과거사 캐기' '친일 진상 규명' '행정수도 이전' '보안법 개폐' '조·중·동 때리기' 등에 열중했을 뿐, 국민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더욱이 이 모든 것들이 좌향좌(左向左)의 시각에서 진척되어 왔다. 과연 그렇게 해서 좋을 일이었을까.
국가원로-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까지의 건국(建國)과정에서부터 6·25 한국전쟁 이후의 호국(護國)과정을 거쳐 유신(維新) 이후 근대화(近代化)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을 주도했거나 그 맥(脈)을 함께 해온 주역들이 아닌가.
원로들은 바로 그런 역사인식을 온몸으로 익히며 살아왔음에 비추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무장을 해제하고있는 현 집권세력의 의도와 일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절박한 국가안보요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뒷전으로 미루고서 안이한 대북(對北)인식 아래 '과거사(過去事)·친일(親日)·국보법 폐지' 등 국익신장과 국가안보 구축에 역행하는 쟁점에 국론이 양분될 정도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소모전을 펴오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집권세력은 이제까지 '여론의 병풍(屛風)'이 필요할 경우 정부지원을 받는 친여(親與) 운동권 시민단체에 홍위병 역할을 주문하는 것으로 족할 뿐, 원로들의 견해나 중론(衆論)을 의식할 일은 없었다. 이야말로 '진보'이거나 '개혁'일 수가 없는 새로운 악습(惡習)이다.
어느 나라이든 '현자(賢者)그룹'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격동의 시대, 혼돈의 시대일수록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갖춘 현자(賢者)에 대한 갈망은 절실한 법이다. '원로'들은 바로 이 '현자그룹'과 무관치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들 '원로의 목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미래지향 정책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더욱 이들의 어드바이스를 중시해야 하는데도 우리의 역대정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우려를 덜어내는 뜻에서도 정부여당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내걸고 '미래지향의 정책'을 발굴하여 펼쳐 나가야 하는데도 그렇지가 않았다.
진보세력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 등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사회갈등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자는 이야기"로 애써 폄하하고 있다.
또는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냉전세력의 무성한 말들" 또는 "이제는 이 땅에서 청산되어야 할 남북 대결주의적 낡은 냉전적 가치" 등 췌언(贅言)도 잇따르고 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각(角)을 세워 해석할 일인가.
국가보안법 존폐문제- 한 가지만 해도 그렇다. 김일성은 남북간 국력비교에서 '북한의 열세'가 분명해지던 시점인 1980년 10월 10일의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밝힌 가운데 첫 번째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것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의 국가보안법 폐지였다. 그래야 남한 사회의 민주화(=적화통일)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저들의 대남(對南)적화전략·민족해방운동전략의 선결과제 중 첫번째가 국가보안법의 폐지인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중이 주체되는 '반(反)파쇼 민주화정권(=反美自主化 정권)'을 탄생시켜, 남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대남 적화전략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집권여당은 국보법 폐기 이유로 과거의 '인권 유린' 사례를 들고 있으나, 이미 7차례 개정으로 92년 이후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국보법으로 인해 그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은 없는 실정이다. '인권 유린 운운'은 과거 80년대의 반(反)독재 주사파(主思派)운동권이었던 친북(親北)·좌경(左傾)·반미(反美)세력의 말장난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원로들의 비상시국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적 저항'의 출발이기도 하다.여권(與圈)은 잔정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경시할 경우 엄청난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집권여당이 '원로들의 쓴 소리'를 스승의 회초리로 받아들이기를 외면한다면 엄청난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성(自省)은 빠를수록 바람직하다. 국민은 여권(與圈)에 시한부로 정권을 위임했을 뿐, '대한민국 호(號)'의 진로를 거꾸로 돌려놓을 권리를 부여한 적은 없다. 배(船)는 어떤 경우에도 정(正)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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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불교계의 송월주(宋月珠)스님 등 종교·시민단체 대표 및 교수 133명이 신행정수도 건설 잠정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가 아닌가. 1천5백명을 헤아리는 사회각계 원로가 "나라를 살리자"며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는 이들 원로의 시국선언 메시지에서 그야말로 어느 특정 정파(政派)의 이해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구국차원의 우려를 읽을 수 있다. 구구절절이 갈등과 국론분열로 치닫고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고자 원로들의 경륜에서 우러나온 권고가 담겨있다.
한 나라의 발전은 장년층 이상 원로급의 경륜(經綸)과 혜안(慧眼)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정(熱情)과 추진력 - 이 '두 개의 차바퀴(車輪)'가 동력(動力)이 되어 움직일 때 가능한 명제가 아닌가. 여권(與圈)은 국민화합차원에서 서둘러 내놓은 원로들의 충정 어린 '정책적 권고'를 기필코 받아들여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을 돌이켜 보자. 2002년 말의 대선(大選)이나 지난 4·15총선(總選) 이후 정부는 온 국민의 힘을 범국민적 에너지로 결집하여 국가발전을 위해 21세기를 향한 거보(巨步)를 힘차게 내디뎠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은 '진보' 또는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엉뚱하게도 '과거사 캐기' '친일 진상 규명' '행정수도 이전' '보안법 개폐' '조·중·동 때리기' 등에 열중했을 뿐, 국민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더욱이 이 모든 것들이 좌향좌(左向左)의 시각에서 진척되어 왔다. 과연 그렇게 해서 좋을 일이었을까.
국가원로-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까지의 건국(建國)과정에서부터 6·25 한국전쟁 이후의 호국(護國)과정을 거쳐 유신(維新) 이후 근대화(近代化)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을 주도했거나 그 맥(脈)을 함께 해온 주역들이 아닌가.
원로들은 바로 그런 역사인식을 온몸으로 익히며 살아왔음에 비추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무장을 해제하고있는 현 집권세력의 의도와 일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절박한 국가안보요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뒷전으로 미루고서 안이한 대북(對北)인식 아래 '과거사(過去事)·친일(親日)·국보법 폐지' 등 국익신장과 국가안보 구축에 역행하는 쟁점에 국론이 양분될 정도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소모전을 펴오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집권세력은 이제까지 '여론의 병풍(屛風)'이 필요할 경우 정부지원을 받는 친여(親與) 운동권 시민단체에 홍위병 역할을 주문하는 것으로 족할 뿐, 원로들의 견해나 중론(衆論)을 의식할 일은 없었다. 이야말로 '진보'이거나 '개혁'일 수가 없는 새로운 악습(惡習)이다.
어느 나라이든 '현자(賢者)그룹'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격동의 시대, 혼돈의 시대일수록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갖춘 현자(賢者)에 대한 갈망은 절실한 법이다. '원로'들은 바로 이 '현자그룹'과 무관치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들 '원로의 목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미래지향 정책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더욱 이들의 어드바이스를 중시해야 하는데도 우리의 역대정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우려를 덜어내는 뜻에서도 정부여당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내걸고 '미래지향의 정책'을 발굴하여 펼쳐 나가야 하는데도 그렇지가 않았다.
진보세력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 등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사회갈등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자는 이야기"로 애써 폄하하고 있다.
또는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냉전세력의 무성한 말들" 또는 "이제는 이 땅에서 청산되어야 할 남북 대결주의적 낡은 냉전적 가치" 등 췌언(贅言)도 잇따르고 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각(角)을 세워 해석할 일인가.
국가보안법 존폐문제- 한 가지만 해도 그렇다. 김일성은 남북간 국력비교에서 '북한의 열세'가 분명해지던 시점인 1980년 10월 10일의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밝힌 가운데 첫 번째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것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의 국가보안법 폐지였다. 그래야 남한 사회의 민주화(=적화통일)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저들의 대남(對南)적화전략·민족해방운동전략의 선결과제 중 첫번째가 국가보안법의 폐지인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중이 주체되는 '반(反)파쇼 민주화정권(=反美自主化 정권)'을 탄생시켜, 남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대남 적화전략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집권여당은 국보법 폐기 이유로 과거의 '인권 유린' 사례를 들고 있으나, 이미 7차례 개정으로 92년 이후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국보법으로 인해 그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은 없는 실정이다. '인권 유린 운운'은 과거 80년대의 반(反)독재 주사파(主思派)운동권이었던 친북(親北)·좌경(左傾)·반미(反美)세력의 말장난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원로들의 비상시국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적 저항'의 출발이기도 하다.여권(與圈)은 잔정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경시할 경우 엄청난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집권여당이 '원로들의 쓴 소리'를 스승의 회초리로 받아들이기를 외면한다면 엄청난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성(自省)은 빠를수록 바람직하다. 국민은 여권(與圈)에 시한부로 정권을 위임했을 뿐, '대한민국 호(號)'의 진로를 거꾸로 돌려놓을 권리를 부여한 적은 없다. 배(船)는 어떤 경우에도 정(正)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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