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안보정세 분석 / 동향과 전망(2017. 7.25)
❏ 6‧25전쟁의 정치, 군사적 평가, 영향, 교훈
① 6‧25전쟁은 왜 발생했고 방지 할 수 없었는지?
•소련은 1949년 핵실험 성공,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짐
•중공은 국공내전 승리 1949년 10월 공산정권 출범, 팽창주의 추구
•미국은 지상군 90% 감축, 중국 정세 변화, 극동에서 중국과 대결회피의향의 애치슨 선언
•북한은 중‧소의 병력/장비 대폭지원, 군사력 증강, 한국은 상대적 열세한 군사력 보유
※ 미국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낮게 평가, 반면 중‧소는 한반도 공산화하여 아시아 전 지역 세력 확산 의도로 인해 전쟁 발생
※ 소련의 스탈린은 김일성/박헌영의 전쟁계획을 승인하면서 만약 미국이 참전하면 중공이 참전하겠다는 모택동의 동의를 요구하여 확약 받음
② 6‧25전쟁의 인적, 물적 피해 현황
•아측의 군인 전사상/실종 포로, 민간/시설/재산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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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계 |
전사 |
부상 |
실종/포로 |
|
계 |
77만6천 |
17만9천 |
55만5천 |
4만2천 |
|
한국군 |
62만1천 |
13만8천 |
45만1천 |
3만2천 |
|
유엔군 |
15만5천 |
4만1천 |
10만4천 |
1만 |
※ 민간 99만(사망 24만, 학살 13만, 부상 23만, 납치/행불 39만)
※ 미망인 30만, 고아 10만, 피난민 320만, 이산가족 1,000만
※ 공공시설 84%, 가옥 60% 파괴, 광업 50%, 공업 43% 피해
•공산측 군인, 민간인 피해
|
구 분 |
근거자료 |
계 |
전사/부상 |
실종/포로 |
기타 |
|
북한군 |
한국전란지 |
61만 |
51만 |
10만 |
- |
|
군사정전위 |
64만 |
52만 |
12만 |
- |
|
|
미군문헌 |
80만 |
52만 |
10만 |
18만 |
|
|
중공군 |
항미원조전사 |
40만 |
- |
- |
- |
|
조선전쟁사 |
37만 |
34만 |
3만 |
- |
|
|
한국관련자료 |
97만 |
94만 |
3만 |
- |
※ 공산군 피해는 최대 177만, 최저 98만 명으로 대략 100만 명 이상 전사 또는 부상
※ 공산측의 민간인은 150만여 명 피해, 공공/주거시설, 산업기반은 막대한 피해
☞ 전쟁간 군인/민간인 사상자 등 430~500만여 명 피해
③ 6‧25전쟁이 한반도와 관련국에 미친 영향과 교훈
•향군의 군 입대 장병에 대한 설문결과(2016년, 829명)
※ 6‧25전쟁 발생 시기 1950년이라고 답변 65%
※ 6‧25전쟁은 북한이 먼저 공격했다는 답변 96%
• 6‧25전쟁의 성격은 내전이 아니라 스탈린의 지도, 김일성의 계획, 모택동의 지원/주도한 국제전/침략 전쟁
• 6‧25전쟁 발발 책임은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에 있으며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는 소련해체 후 오류로 판명
• 한민족은 외국군이 개입한 전쟁 후 휴전선에 의한 남북한 분단 고착화
•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정치, 자본주의 시장경제, 평등평화 공정사회 체제 선진국
• 북한은 억압 전제주의 정치, 계획통제 방식 경제, 불평등 차별사회 체제 후진국
• 미국은 한국과 동맹하여 이념과 가치를 이식하고 발전시켜 동북아 우호국 관계
• 중공은 UN에서 침략자로 결정, 외교는 20년간 국제적 고립되어 낙후되었음, 군사적으로 해‧공군, 기술 분야 현대화 추진, 국내정치는 통합 및 안정/중앙집권화
• 일본은 2차대전 시 군수시설을 이용 유엔군의 소요 장비, 물자를 공급하여 재기할 수 있는 기반 마련
☞ 외세가 개입된 한반도내 전쟁은 피해야 하고 동족간의 전쟁은 최악
❏ 安保 활동방향
❍ 남북한 분단은 6‧25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고 재발할 수 있으며, 통일이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함
❍ 6‧25전쟁의 원인, 경과, 피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고 숙지하여 계도할 수 있는 역량 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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