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창군 64주년 기념행사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제언
Written by. 한영숙
입력 : 2004-09-17 오후 2:22:24
기념식에 이어 '한국광복군의 민족사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는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만주독립군의 군사와 광복군의 맥락), 한상수 건국대 교수(한국광복군의 창군과 역할),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어느 한국광복군 선열의 항일투쟁과 친일반민족행위)가 각각 주제발표했다.
1940년 9월 17일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되어 영국군과 연합, 미안마 임팔전선에서 심리전 활동을 전개했으며 미국전략사무국(OSS)과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했다가 일제 패망으로 무산됐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서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과 독립군의 맥을 이어 오면서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하고 연합군에 교전단체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광복후 미군정에 의해 1946년 6월 해체된 뒤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국과 창군(創軍)에 기여했으며, 광복군 참모장이던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의병 → 독립군 → 광복군 → 국군으로의 맥을 계승해 왔다.
이런 과정으로 보아 광복군이 국군의 원류임이 분명하므로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자는 의견이 해마다 제기되고 있다. 아래는 광복군 창군일을 맞아 광복회 문화부장으로 있는 권중찬씨가 이날 동아일보에 기고한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제하의 기고문 전문이다.(konas)
광복군 創軍日을 ‘국군의 날’로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군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오전 6시 충칭(重慶)에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최고 간부들이 내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행사를 거행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군으로서 의병과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했고, 또한 의병의 후신인 대한 독립군의 맥을 이어간다고 했다.
한국광복군은 이어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해 독립의지와 대일항전의 결의를 굳히고 연합군에 교전단체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또 한중 연합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했고 1943년엔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 임팔전투와 인도전선의 만델레이 작전에 참가해 무공훈장을 받는 등 큰 공을 세웠다. 1944년 8월 미국의 전략정보국과 합동으로 첩보활동을 펼쳤으며, 1945년 4월부터는 연합군의 대일 상륙작전에 특수부대로 참전하고자 맹훈련을 한 뒤 출전 대기 중에 광복을 맞았다.
이처럼 한국광복군은 우리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민족의 군대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고 현창하는 차원으로 보나, 한국광복군 참모장이던 이범석 장군이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의병-독립군-광복군이라는 군의 대맥을 계승한 점으로 보아 의당 대한민국 국군의 원류임이 분명하다. 그런 대의명분에 입각해 한국광복군 창군기념일인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한 것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육군 3사단이 38선을 통과해 진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한다고 하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남북한의 상호협력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동족상잔의 6·25전쟁에서 명분을 찾아 기념하는 것은 현실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권중찬 (광복회 문화부장)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대로 창설된 한국광복군 창군 64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가 17일 오전 10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석근영)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기념행사에는 김우전 광복회장과 배철호 국가보훈처 차장,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한국광복군 회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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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 이어 '한국광복군의 민족사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는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만주독립군의 군사와 광복군의 맥락), 한상수 건국대 교수(한국광복군의 창군과 역할),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어느 한국광복군 선열의 항일투쟁과 친일반민족행위)가 각각 주제발표했다.
1940년 9월 17일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되어 영국군과 연합, 미안마 임팔전선에서 심리전 활동을 전개했으며 미국전략사무국(OSS)과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했다가 일제 패망으로 무산됐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서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과 독립군의 맥을 이어 오면서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하고 연합군에 교전단체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광복후 미군정에 의해 1946년 6월 해체된 뒤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국과 창군(創軍)에 기여했으며, 광복군 참모장이던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의병 → 독립군 → 광복군 → 국군으로의 맥을 계승해 왔다.
이런 과정으로 보아 광복군이 국군의 원류임이 분명하므로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자는 의견이 해마다 제기되고 있다. 아래는 광복군 창군일을 맞아 광복회 문화부장으로 있는 권중찬씨가 이날 동아일보에 기고한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제하의 기고문 전문이다.(konas)
광복군 創軍日을 ‘국군의 날’로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군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오전 6시 충칭(重慶)에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최고 간부들이 내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행사를 거행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군으로서 의병과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했고, 또한 의병의 후신인 대한 독립군의 맥을 이어간다고 했다.
한국광복군은 이어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해 독립의지와 대일항전의 결의를 굳히고 연합군에 교전단체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또 한중 연합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했고 1943년엔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 임팔전투와 인도전선의 만델레이 작전에 참가해 무공훈장을 받는 등 큰 공을 세웠다. 1944년 8월 미국의 전략정보국과 합동으로 첩보활동을 펼쳤으며, 1945년 4월부터는 연합군의 대일 상륙작전에 특수부대로 참전하고자 맹훈련을 한 뒤 출전 대기 중에 광복을 맞았다.
이처럼 한국광복군은 우리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민족의 군대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고 현창하는 차원으로 보나, 한국광복군 참모장이던 이범석 장군이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의병-독립군-광복군이라는 군의 대맥을 계승한 점으로 보아 의당 대한민국 국군의 원류임이 분명하다. 그런 대의명분에 입각해 한국광복군 창군기념일인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한 것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육군 3사단이 38선을 통과해 진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한다고 하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남북한의 상호협력을 도모한다고 하면서 동족상잔의 6·25전쟁에서 명분을 찾아 기념하는 것은 현실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권중찬 (광복회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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