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⑯] 나는 매일매일 자라고 있다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어머니, 울지 마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애써 웃으며 뒤돌아서 연병장으로 걸어가던 작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2016년 8월 8일,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에 나는 “국외 영주권자 입영제도”를 통해 입대했다.
어쩌면 수많은 대한민국 국군장병들 사이에서 조금은 다를 수 있는 “국외 영주권자” 신분으로 입대하여 지금까지 복무하며 느낀 점들과, 앞으로 현역으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입대를 하기 전까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이라는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다른 대다수 유학생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 모두가 미국에서 살고 있었고, 모두 미국 영주권자라는 사실이다.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을 군입대라는 고민을 난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1년, 2년이 흘러감에 따라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이 하나 둘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군에 입대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비단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와 뉴스에서 북의 끊임없는 도발들을 지켜볼 땐, 걱정과 동시에 타국에 나와 맘편히 생활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까지 했다.
따라서 나는 군에 자원입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영주권자라서 굳이 군대에 안가도 되는걸 가야할까?”라는 고민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나에겐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었고, 심지어 이미 늦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실 것이 당연했기에 몇 달간 나는 부모님 설득을 위해 여기저기 직접 자문을 구하고, 검색해보며 준비했다.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기에 군복무를 하며 걱정하실 부모님을 뵈러 올 방법이나 제도는 있는지, 미국 영주권을 유지할 방법은 있는지 등, 부모님이 내 입대를 반대하며 주장하실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러던 도중 알게된 것이 병무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외영주권자 입영제도”다. 나 뿐만 아니라 군입대를 희망하는 여러 영주권자들이 오래 전부터 있었기에 나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는걸 알게된 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제도를 예로 들며 부모님과 오랜기간 얘기를 나눈 끝에 난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입영신청서를 내게 되었다.
“국외 영주권자 입영제도“로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한 나는 60명이 채 안되는 훈련소 동기들과 한 소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들 역시 모두 세계 방방곡곡에서 쉽지 않은 결심을 하고 입대를 자원한 영주권자들이였다. 첫 일주일은 ”국외 영주권자 입영제도“가 지원하는 적응 프로그램 기간이었다. 연대장님과의 간담회도 가지고, 독립기념관도 방문해 우리의 뿌리가 어딘지에 대해 다시 한번 느껴보고, 대전 병무청장님과 소통의 시간도 마련되어 가지고 있던 여러 궁금증들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 역시 있었다.
동기들 가운데엔 한국말이 서툰 동기들도 있었고, 군 특성상 많은 통제와 제한이 걸리는 환경에 유독 힘들어하는 동기들도 있었다. 그 중에 한명이 나였던 것 같다. 해맑게 웃으며 우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씩씩하게 연병장으로 걸어갔었던 나였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과는 180도 다른 답답한 규정들과 몸에 맞지 않는 음식과 잠자리, 낯선 사람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어색함 등에 한없이 나약해졌다. 밤을 꼬박 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화장실도 잘 못가며 괴로워했었다. 심지어 괴로워하는 내 자신을 보며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였는가에 대해 자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적응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한 주간 같이 입대한 영주권자 동기들과 대화하며 서로의 힘든 점을 나눴고, 점차 이겨내게 됐다. 시작부터 같은 공통점을 공유했던 우리는 그 적응 프로그램 기간동안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어느새 서로에게 끈끈한 전우들이 되어 있었다.
나아가 남은 본격적인 훈련 기간동안 여러 훈련들을 이겨낼 자신감까지 챙길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그 일주일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나를 포함한 내 영주권자 동기들은 본격적인 훈련 일정에 맞추어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한명의 유급자도 없이 모두 수료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후에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 배치된 자대로 흩어지게 되었다.
수료식 날, 높은 하늘로 베레모를 힘차게 던질 때만 해도 마치 군생활이 끝난 듯한 느낌을 받았었지만, 논산에서 자대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을 때 비로소 느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나는 육군 제 75보병사단에 자대배치를 명받았다.
“국외 영주권자 입영제도“라는 걸 통해 입대하긴 했지만, 별다른 군사특기를 가지고 입대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긴장한 상태로 기차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기차는 퇴계원역에 정차하였고, 퇴계원에서 부대까지는 미리 마중 나오신 이름 모를 간부님의 차에 올라타 가게 되었다.
부대에 도착하니, 병 인사를 관리하던 인사행정장교님께서 마중 나오셨고, 여러 가지를 작성한 후 최종적으로 나는 209보병연대 3대대 본부중대의 작전병으로 배치되었다. 일전에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주었기를, 이등병 생활 때 보여지는 이미지가 곧 너의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했기에 마치 훈련소에 처음 입소한 듯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으로 생활했다.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선후임 관계를 포함해, 훈련소 때 배웠던 것과는 또 다른 부대 안의 여러 규정들은 많이 낯설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것 역시 1~2주가 흐르고 나니 자연스럽게 몸에 익게 되었고, 어느덧 나도 진짜 군인이 되어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사람들이 혹여나 내가 영주권자라서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대장님을 비롯해 모든 간부님들과 선임들은 오히려 내가 영주권자이기에 좀 더 챙겨주고, 미숙한 부분이 있으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려고 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이 타지에 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떤 선임들은 본인 부모님이 면회를 오실 때 나를 같이 데려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입대 전엔 영주권자이기에, 남들과 조금 다르기에, 통일성을 중시하는 군대 특성상 잘 못 섞이고 못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더 잘 챙겨주려 하고, 더 도와주려하는 배려를 느낄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이등병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차츰 이등병 생활을 하며 부대에 적응하고 있을 때 쯤,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우연히 복도를 거닐다 마주치게 된 연대장님께서 나를 연대장실로 부르신 것이다. 연대장님 뒤를 따라 연대장실까지 걸어가면서 얼마나 긴장하고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연대장님께 들었던 얘기는 내가 걱정하던 그런 얘기와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현
재 사단의 최고 지휘관이신 사단장님 운전병이 곧 전역을 해서 후임자를 구하고 있는 중인데, 연대장님께서 나를 후보로 올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유는 내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 운전경험이 있었고, 내 계급 역시도 임무수행을 오래 하기 적합했고, 전입 온 후 부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것도 좋게 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난 후보에 올라갔고, 여러 간부님들과 면담을 거친 후에 운이 좋게도 최종적으로 뽑히게 됐다. 하지만 바로 임무수행을 하기엔 제약이 많이 따랐다. 일단 군 면허 취득이 필요했기에 제3야전수송교육단에 위탁 교육생 신분으로 입교해야만 했다. 훈련소에서 자대로 전입온 후 보다 자유로워진 생활에 적응했었던 나였기에, 다시 교육생 신분으로 여러 통제를 받으니 굉장히 힘들었었다.
또한 타본 적 없는 스틱차량으로 면허시험을 통과해야만 했기에 부담이 됐다. 힘든 교육기간을 이겨내게 해준 건 역시 동기들이였다.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동기들이 있었기에 서로를 누구보다 잘 도와주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육군훈련소와 제3야전수송교육단, 두 번의 교육기관에서 교육생활을 끝낸 나는 한 층 더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당하게 군 면허를 취득해서 자대로 복귀한 나는 그때부터 사단장님 운전병으로서 임무수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병으로 진급하고 나서 한 여름 밤의 꿈같았던 짧디 짧은 3박4일 신병위로 외박을 나갔었다. 두 달 뒤엔 5박6일 동안 군 생활 2번째 휴가를 보내고 복귀했다. 첫 휴가였던 신병위로 외박과 두 번째 휴가 모두 다 한국에 있는 이모 댁으로 휴가를 나갔었다. 물론 휴가 기간 동안 굉장히 즐거웠고, 오랜만에 마시는 사회의 공기는 미세먼지의 여부와 관련 없이 굉장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미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난 두 번째 휴가를 복귀했던 2017년 3월 2일, 다음 휴가는 꼭 미국에 있는 가족을 보러가겠다고 다짐했다. 감사하게도 나같이 영주권자 신분으로 자원입대를 한 용사들에게는 군에서 국외여행여비를 연 2회까지 지원해준다.
하지만 국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몇 가지 서류들이 있었다. 또한 여러 부서들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서류들이기에 2달의 여유기간을 잡고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소 생소한 서류들이였기에 국외여행 준비를 진행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었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오매불망 기다릴 가족들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 예상했던 2달이 채 안 걸린 40일 정도만에 모든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사실 정해진 규정만 따라가면 서류를 준비하는데 크게 지체되거나 문제될 부분은 없었다. 다만 일전에 말했다시피 영주권자로 복무중인 용사들이 비교적 많지가 않기에 간부님들이 가지는 “생소함”이 시간지체의 원인이었다.
영주권자 자원입대가 갈수록 증가한다지만, 여전히 한국 군대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영주권자들이 많다(내가 살았던 텍사스에도 열에 아홉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이 생각을 조금씩 전환해서 더 많은 영주권자들이 입대한다면, 많은 부대에서 영주권자들의 국외휴가를 준비할 때 더 수월해지지 않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4월 28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국으로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됐고, 전화나 인터넷 메신저로만 연락하던 가족을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입대 전엔 너무나도 당연다고 생각했던 가족을 9개월 만에 만나고 오니 그 소중함을 더더욱 느낄 수 있는 뜻 깊었던 휴가였다.
오늘은 자원입대를 한지 296일되는 날이다. 아직 복무일수보다 남은일수가 더 많지만, 296일이라는 어찌보면 짧은 시간동안 난 입대 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일단 나 자신이 여러모로 굉장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예를 들면, 기본적인 청소나 창고정리, 환경미화나 제설작업을 할 때도 다른 병사들보다 진행속도가 더뎠다.
평소에 부모님께서 아들을 끔찍이 여긴 탓인지, 미국에서 미국인들과 치열하게 학업경쟁만 하다 보니 몸을 쓰는 실무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떨어지는 내 자신을 보며 굉장히 실망했었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새로 배워나가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니, 부대에서 임무수행 할 때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얻은 건 익숙한 것 에 대한 소중함이다. 군 입대를 하지 않았다면 당연하다고 누리던 자유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또, 가족을 포함한 여러 지인들과 연락하는 소중함, 음식의 소중함 등 간과하기 쉽지만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미처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책임져야 할 임무와 도와줘야 할 후임들이 생김과 동시에 책임감도 생기게 됐다.
인내심 역시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게 됐다. 여러 훈련들을 겪으며 처음엔 금방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나약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참고 견뎌냈을 때 따라오는 성취감을 알기에 참고 인내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을 얻음으로서, 자원입대를 결심했었던 나의 그 선택이 후회가 없는 선택이었음을 하루하루 증명하고 있다.
내가 더 기대되는 것은 앞으로 남은 군생활이 지금껏 한 군생활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앞으로 내가 군복무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고, 더 성장한 청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나중에 자원입대라는 큰 결심을 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며 정말 후회 없이 잘한 선택이라고 자부하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다른 영주권자들에게 자랑스럽게 군입대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남은 기간도 열심히! 배우며! 활기찬 군생활을 해나가야겠다!
(제75보병사단 군수지원대대 본부 일병 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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