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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홍일 장군 37주기 추도식 열려

“독립운동가·군인·정치인으로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 남겨”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7-09-22 오후 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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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6·25 전쟁에서는 군인으로, 이후 정치가로 활동했던 故 김홍일 장군(1898~1980) 37주기 추모행사가 평안북도 성우회 주관으로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김영철 평안북도 도지사와 장정열 평안북도 성우회장, 이영계 전쟁기념관장, 육종회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1898년 9월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난 김홍일 장군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신의주를 거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귀주성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군 소위로 임관해 3성 장군에까지 오르게 된다.
 
 장군은 1921년 대한의용군사회의 참모로 동참해 본격적인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며 중국 내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6·25 전쟁에서는 군인으로, 이후 정치가로 활동했던 故 김홍일 장군의 37주기 추모행사가 평안북도 성우회 주관으로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열렸다.ⓒkonas.net

 특히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가 동경 경시청 앞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오던 일왕 히로히도(裕仁)에게 던진 수류탄과,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던진 폭탄은 장군이 제공한 것이었다.

 장군은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참모장이 되어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선봉에 나섰으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홍일 장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돼 후퇴하던 국군을 결집해 한강 방어선을 6일간 저지했다.

 당초 미군은 김홍일 장군이 3일 정도만 버텨도 성공이라고 했는데 무려 1주일을 견뎌주면서 한국군이 다시 한 번 전열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고, 일본 주둔 미군이 달려올 수 있는 여유도 얻은 셈이었다.

 이후 장군은 1군단 사령관을 맡아 낙동강 지연전까지 성공,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맥아도 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6·25 전쟁의 3대 기적으로 6일간의 한강 방어선 저지, 낙동강 방어선 사수,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을 꼽았다.

 장군은 1951년 3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외무부장관과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80년 8월에 숨졌다. 정부는 김홍일 장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이날 김영철 평북 도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독립운동가였지만 그동안 평가절하되어 왔다”면서, 故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발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정열 평북 성우회장도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발자취를 살피고 반성해야 한다며, 김홍일 장군의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국가전략의 목표와 방침을 선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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