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상상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해 50여명 가족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친 우당 이회영... 캐리커쳐로 되살아나
고향의 전 재산을 정리해 6명의 형제 50여 가족을 이끌고 1910년 경술년 국치(國恥)를 당하자 모두 만주로 가 항일투쟁의 기틀을 마련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일제에 체포 투옥돼 만주와 중국 등지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아 장렬하게 순국한 독립운동가가 후대 학생들에 의해 캐리커쳐로 되살아난다.
임진왜란 이래 좌의정과 우의정, 그리고 영의정 등을 지낸 백사 이항복을 10대조로 모신 명문가 후손이기도 한 이회영 선생이다. 이회영 선생은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이후 수탈이 가혹해지던 시기 식솔들을 이끌고 만주로 가 일제의 엄중한 감시아래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선두에서 맹활약하다 체포돼 잔혹한 고문을 받다 장렬하게 순국했다.
|
서울북부보훈지청(지청장 윤종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선생을 모티브로 한 캐리커쳐 배경화면 공유 이벤트를 실시한다.
캐리커쳐 배경회면(1920×1080)은 서울북부보훈지청이 주최한 현충시설 특별 탐방 프로그램인 『우당기념관×서울역사박물관』에 참여한 상명고 학생들이 그린 것들을 모아 만든 것으로 학생들이 보고 느낀 우당 이회영 선생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이번 이벤트는 서울북부보훈지청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bukbubohun)를 통해 '17년 12월 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며 참가자 중 5명을 선정해 3만원 상당의 상품권도 증정한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17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순국 85주기 추모식을 갖고 선생의 나라사랑을 위한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선생은 1910년 12월말 6형제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망명 후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柳河縣 三源堡 鄒家莊)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많은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3ㆍ1운동 직전 중국 북경으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상해에서 동지들과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북경으로 돌아와 1924년 4월 류자명ㆍ이을규ㆍ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28년 6월 상해에서 한ㆍ중ㆍ일ㆍ필리핀ㆍ대만ㆍ안남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창설되자「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논문을 보내 한국 독립 지원을 호소하였으며, 1930년 아들 규창과 함께 상해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서 활동했다.
1932년 중국의 동지들과 만주에서 한ㆍ중 연합의 항일투쟁을 계획하였으며, 11월 초 대련(大連)행 기선을 타고 상해 황포강을 출발하여 만주로 가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11월 17일, 66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