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역사 헤집기'인가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10-19 오전 10:23:00
이처럼 국감(國監)기간 중에 이들 '개혁 관련 법안'을 잇따라 내놓은 것에서 향후 정국을 주도하고자 하는 여권의 숨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4개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조기 처리할 의도 아래 당의 명운(命運)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법은 (1) 일제 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2) 광복부터 한국전쟁기간중의 양민학살사건 (3)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있었던 인혁당 사건·통혁당 사건·민청학련 사건 등을 주요 조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죽 시끄러울 것인가. 이미 제출된 친일진상규명법의 개정안과 함께 향후 정국이 과거사 본격 헤집기 소용돌이 속으로 돌입할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또 그런 제도적 장치 역시 서둘러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분열이 아닌, 화해와 국민화합의 결집'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닌, '역사 헤집기'가 될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매사 명분과 실질은 일치하기보다는 서로 괴리되어 움직이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이다. 경제불안에 더해 국론분열까지 자초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 법안의 태동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대부분 이미 고인(故人)이 되어있는 사안이기도 하고, 적기(適期)도 아니며, 흑백이 쉽게 가려질 수 있는 명제들도 아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여권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착은 맹렬하기까지 하다. 여권은 과거사 규명 법안을 발의하면서 '진실과 화해'- 이 두 가지를 화두(話頭)로 내걸었지만, 어찌 '정치적 속내'가 없을 것인가.
보수권에서 한국사회의 이른바 기득권 세력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판 갈이'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진실규명과 화해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후유증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이 연전(年前)보다 크게 추락했다는 외신에 이어 원유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있는 상황인데도 여권은 이런 민생문제에는 별 다른 반응 없이 이른바 '개혁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여권이 국보법폐지와 과거사 헤집기에 집념을 불태우고 있어 경제가 계속 침체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국가경쟁력이 뒷걸음치고 말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여권은 이들 4개 법안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민생문제를 대하는 안이한 시각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국보법을 없애고 옛 기득권층의 과거 들추어내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나라는 결딴나도 무방할 것인가. 어떤 이유로 그처럼 서두르는 것인가. 어떤 이유로 그처럼 국가안보와 국가 정체성에 역(逆)효과가 예상되는 부문에 그토록 집념을 불태우는 것인가.
과거 어떤 정권에서도 이런 외곬 국정운영은 없었다. 그러기에 놀라움은 더욱 크다. 과연 그럴 때인가. 합(合)목적적이라 할지라도 때가 맞지 않으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일제의 식민지 시절에 이어 반(半)세기 여의 분단과 좌우대립의 아픔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 '한(恨) 맺힌 과거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사는 아르헨티나나 님아공(南阿共)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76∼1982년 6년간의 군사정권 하에서 3만6천명이 사망·실종이 있었다. 남아공의 경우 역시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흑인이 투표권도 없이 350년간 국토면적의 13%에 갇혀 살아야했다.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근대사는 1백여년은 왜곡과 굴절 속에서도 '전진(前進)을 거듭한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룩했고,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이룩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군사정권시절은 '남북분단 상황에서의 권위주의정권'이었을 뿐, 아르헨티나 남아공(南阿共) 북한과 같은 독재정권이 아니었다. 수평비교대상일 수가 없다.
넬슨 만델라의 과거사 청산과 민족통합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는 (1) 용서와 화해를 앞세운 리더십 (2) 이(異)민족의 부당한 흑백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항쟁 (3) 이념투쟁이 아닌, 화해와 관용을 앞세운 기본권리 회복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동족(同族)간의 이념적 정체성을 두고 갈등을 빚어온 우리의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정운영이 아니면 그 부정적 영향은 고스란히 서민의 몫으로 돌려지고 말 것이다. 국론분열과 '안보의 틀' 붕괴를 반길 국민은 없다. 이 나라 정통보수세력은 이 점을 크게 우려한다. (KONAS)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 명칭부터가 너무 거창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법안인가. 당연히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과거사 규명 법안'이 여권에 의해 국회에 제출됐다. 다소 엉뚱한 작명(作名)이다.
굳이 이처럼 긴 명칭의 법안 명(名)의 연원을 따지자면 이렇다. 남아공(南阿共)의 인권투사 넬슨·만델라가 대통령 취임 직후 흑백인 갈등 해소를 위해 출범시킨 조사기구 명칭이 바로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다.
여권은 이 '과거사 규명 법안'을 '국가보안법 대안'과 '사립학교법 개정안' 및 '언론관계법'과 함께 '4대 개혁법안'(야당은 이를 4대 惡法으로 호칭함)으로 명명하고 있다. '친일진상 규명법 개정안' 제출에 이어 나온 후속탄들이다. 얼굴만 '진실규명' '화해'일 뿐, 속셈은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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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감(國監)기간 중에 이들 '개혁 관련 법안'을 잇따라 내놓은 것에서 향후 정국을 주도하고자 하는 여권의 숨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4개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조기 처리할 의도 아래 당의 명운(命運)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법은 (1) 일제 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2) 광복부터 한국전쟁기간중의 양민학살사건 (3)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있었던 인혁당 사건·통혁당 사건·민청학련 사건 등을 주요 조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죽 시끄러울 것인가. 이미 제출된 친일진상규명법의 개정안과 함께 향후 정국이 과거사 본격 헤집기 소용돌이 속으로 돌입할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또 그런 제도적 장치 역시 서둘러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분열이 아닌, 화해와 국민화합의 결집'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닌, '역사 헤집기'가 될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매사 명분과 실질은 일치하기보다는 서로 괴리되어 움직이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이다. 경제불안에 더해 국론분열까지 자초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 법안의 태동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대부분 이미 고인(故人)이 되어있는 사안이기도 하고, 적기(適期)도 아니며, 흑백이 쉽게 가려질 수 있는 명제들도 아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여권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착은 맹렬하기까지 하다. 여권은 과거사 규명 법안을 발의하면서 '진실과 화해'- 이 두 가지를 화두(話頭)로 내걸었지만, 어찌 '정치적 속내'가 없을 것인가.
보수권에서 한국사회의 이른바 기득권 세력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판 갈이'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진실규명과 화해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후유증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이 연전(年前)보다 크게 추락했다는 외신에 이어 원유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있는 상황인데도 여권은 이런 민생문제에는 별 다른 반응 없이 이른바 '개혁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여권이 국보법폐지와 과거사 헤집기에 집념을 불태우고 있어 경제가 계속 침체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국가경쟁력이 뒷걸음치고 말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여권은 이들 4개 법안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민생문제를 대하는 안이한 시각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국보법을 없애고 옛 기득권층의 과거 들추어내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나라는 결딴나도 무방할 것인가. 어떤 이유로 그처럼 서두르는 것인가. 어떤 이유로 그처럼 국가안보와 국가 정체성에 역(逆)효과가 예상되는 부문에 그토록 집념을 불태우는 것인가.
과거 어떤 정권에서도 이런 외곬 국정운영은 없었다. 그러기에 놀라움은 더욱 크다. 과연 그럴 때인가. 합(合)목적적이라 할지라도 때가 맞지 않으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일제의 식민지 시절에 이어 반(半)세기 여의 분단과 좌우대립의 아픔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 '한(恨) 맺힌 과거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사는 아르헨티나나 님아공(南阿共)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76∼1982년 6년간의 군사정권 하에서 3만6천명이 사망·실종이 있었다. 남아공의 경우 역시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흑인이 투표권도 없이 350년간 국토면적의 13%에 갇혀 살아야했다.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근대사는 1백여년은 왜곡과 굴절 속에서도 '전진(前進)을 거듭한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룩했고,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이룩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군사정권시절은 '남북분단 상황에서의 권위주의정권'이었을 뿐, 아르헨티나 남아공(南阿共) 북한과 같은 독재정권이 아니었다. 수평비교대상일 수가 없다.
넬슨 만델라의 과거사 청산과 민족통합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는 (1) 용서와 화해를 앞세운 리더십 (2) 이(異)민족의 부당한 흑백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항쟁 (3) 이념투쟁이 아닌, 화해와 관용을 앞세운 기본권리 회복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동족(同族)간의 이념적 정체성을 두고 갈등을 빚어온 우리의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정운영이 아니면 그 부정적 영향은 고스란히 서민의 몫으로 돌려지고 말 것이다. 국론분열과 '안보의 틀' 붕괴를 반길 국민은 없다. 이 나라 정통보수세력은 이 점을 크게 우려한다. (KONAS)
정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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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당 사람들이 찬 시계는 항상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과거> 속에 살고있을 뿐, 도대체 <미래>라는 낱말 뜻도 모르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숙명은 여기서 끝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단연코 일어서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10-19 오후 4:1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