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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리처드 위트컴 장군 상설전시관 개관

전역후 한국으로 돌아와 평생 한국 재건에 기여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8-07-16 오전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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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며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군 리처드 위트컴 장군을 기리는 상설전시관이 지난 12일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 개관했다.

위트컴 장군의 36주기 추모일인 이날 문을 연 전시관에는 장군의 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당시 착용했던 군복과 모자, 권총집 등이 전시됐고, 장군을 기리는 특별다큐멘터리도 상영됐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미 제2군수사령관으로 부산에 부임한 위트컴 장군은 유엔군 군수지원과 한국군 전력 증강에 기여하면서 아울러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의 재건에 헌신했다.

특히, 1953년 11월 당시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에서 시작된 화재로 부산역과 부산우체국은 물론 3천 채가 넘는 주택이 불타고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위트컴 장군은 미군 군수물자를 동원해 이재민들을 위한 천막을 짓고 식량과 의복을 지원했다.

이 문제로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돼 추궁을 받은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역설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더 많은 구호물자를 싣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피난민촌을 자주 방문하던 위트컴 장군은 어느 날 보리밭에서 출산하는 산모를 목격하고는 부대원들과 함께 월급의 1%를 기부하는 운동을 벌였고, 스스로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 시내를 행진하며 기금을 모아 메리놀병원 등 여러 병원을 부산에 세웠다.

또 예하부대들에 부산 지역 복지기관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체계적으로 지원하도록 했고, 부산대학교 건립을 위해 한국 정부를 설득해 장전동 부지 50만평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건설비용 25만 달러를 제공받게 했으며, 예하의 공병부대를 동원해 진입로 공사와 학교 부지 조성을 직접 지원했다.

위트컴 장군은 1954년 12월 미 제2군수사령부 해체와 함께 전역했으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미재단’을 설립하고 한국의 재건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했다. 특히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위해 보육원과 고아원을 지원하면서 평생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에 헌신해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이 외에도 위트컴 장군은 한국전쟁 중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를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마지막 임무로 여겼다.

1982년 서울 용산에서 별세한 위트컴 장군은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묻어달라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묻혔다.

지난 2011년부터 위트컴 장군 추모식을 개최하고, 장군의 재조명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부산대 김재호 교수는 위트컴 장군의 삶을 연구하고 후대에 어떻게 물려주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군 제5군수지원사령부도 지난해 12월 부대 내에 위트컴 장군 기념시설을 마련해 고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konas)

코나스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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