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民.軍 봉기 잇달아" <뉴욕타임스>
겉으로 보기엔 온순한 것 같은 북한 주민들이 근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재체제에 반기를 들고 잇달아 봉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유럽판이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독일 슈피겔지의 안드레아스 로렌츠 기자가 쓴 `환희의 춤'이란 기사를 통해 지난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제철공장과 군부, 최고 지도부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저항운동들을 열거하는 한편 용천역 폭발사고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둘러싼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소개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주요 내용.
169명의 사상자를 낸 용천역 폭발참사 현장에 조문 공무원도 위로 전문도 보내지 않은 북한 정권은 성대한 창군 72주년 기념식을 갖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환희의 춤' 공연을 즐겼다.
외부 정보로부터 차단되고 굶주림으로 쇠약해진 북한 주민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 이같은 독재정권에 반항의 몸짓을 보일 기력조차 없는 것으로 비쳐져 왔지만 실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용천역 사고가 나기 불과 몇시간 전 김위원장이 탄 열차가 이곳을 지나간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90년대 중반 기근으로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당시엔 열차와 육교, 공장 담벼락에 `김정일 타도'와 같은 구호들이 나붙었으며 김씨 왕조의 사치를 비난하는 전단들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에까지 뿌려졌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재스퍼 베커(48) 기자는 탈북자들과 한국 정보 관계자들, 그리고 과학자들과의 면담을 바탕으로 쓴 곧 출간될 책에서 공장과 군부대는 물론 한 마을 전체가 현 지도부에 저항해 들고 일어난 사실들을 유례없이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중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 2월 황북 송림의 제철공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사건. 굶주리는 노동자들을 보다 못한 관리자 8명이 중국 상인들에게 부품을 팔아 양식을 들여오려다 적발돼 공개처형된 것이 발단이었다.
당중앙위원 2명을 포함한 8명이 총살형에 처해지는 순간 소리쳐 항의하던 한 여성이 현장에서 총살되자 겁에 질린 군중은 곧 흩어졌지만 몇시간 뒤 공장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다음날 아침 탱크들이 공장 문을 밀고 들어와 시위중이던 노동자들을 뭉개버렸고 목격자들은 당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또다시 주동자로 몰린 수십명이 총살당했고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반혁명분자'와 그 가족들이 강제수용소로 쫓겨갔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김위원장에 대한 반감은 주민 사이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심지어 `2.16 부대'로 불리는 450명의 경호부대원 중에서도 90년대 중반 김위원장 암살 기도가 있었다.
1992년에는 함흥 주재 육군 부대 부사령관과 총참모차장 안종호 등이 경제개혁을 촉구하며 쿠데타를 모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계획이 사전 발각돼 처형됐지만 공모자들은 러시아로 달아났다.
1995년에는 청진에서 일부 장교들이 항만과 로켓포 기지를 장악하는 한편 부대원들에게 평양으로 진격하자고 설득하가도 했다.
김위원장의 군대사열 중 그에게 총격을 가하려던 군인들도 있었고 `민족구원최고회의'를 자처하는 군부내 저항세력은 트럭과 열차에서 군과 인민에게 "힘을 합쳐 투쟁하자"고 호소하는 전단을 뿌렸다.
김위원장은 이같은 움직임 때문에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살고 있고 평양 시내에 있는 그의 거주지들은 터널로 연결되고 있다. 저항음모를 분쇄하는 역할을 맡은 부대원만도 10만명에 이른다.
90년대 중반 공장문이 닫히고 군대까지도 굶주리게 만들었던 극심한 식량난의 원인은 가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농업 전문가들은 이미 1987년부터 기근의 징후를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통제경제 정책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김일성에게 감히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김일성이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고 그는 진상을 은폐한 아들에게 진노했다. 김정일은 중국식 모델을 본받아 경제개혁을 추진하려던 아버지에게 반대했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정황은 안개에 가려있다
당시 김정일은 한동안 의사들의 접근을 막았고 시신과 수행단을 평양으로 수송하기 위해 파견됐던 헬리콥터 5대 중 2대가 추락해 의사들과 경호원들이 사망했다. 당시 주변에 있던 공무원들은 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이 가난의 수렁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은 골프코스와 마구간, 영화관 등을 갖춘 10개의 궁전을 건설했고 그의 차고에는 최고급 자동차들이 가득 차 있다. 미중앙정보국(CIA)은 상당부분 스위스 은행에 은닉돼 있는 김정일의 재산을 40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konas)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