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지드의 생애 중 10년은 '공산주의자'였다
낡은 이념을 훌훌 털고 전향(轉向)한다는 것은 참으로 값진 아름다움이다. 이데올로기의 중독성을 두고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아롱(Raymond Aron·1983 작고)은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했다. 자신의 과오와 우매함을 고백하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것은 분명 깨달음이고 쉽지 않은 용기이다.
과거 젊은 시절 한때를 마르크스 레닌주의 또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휩쓸려 좌경세력의 전위(前衛)로 활약하다 '공산주의의 실상'을 접하고서 뒤늦게 전향한 이들은 비단 우리 주변에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렇다 할 해외의 지성(知性)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 그는 소설 '좁은 문'(1909) '전원교향곡'(1919) '사전꾼들'(1926)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 원주민들 참상을 목격하고서 나이 57세가 되던 해에 공산주의자가 됐었다. 그때 저술한 책이 '콩고 여행' (Voyage au Congo·1926)이었다.
지드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1936년 친구 고리키의 장례식 참석차 소련을 방문했다. 소련은 프랑스의 대문호 지드에게 칙사 대접을 했으나 그는 그곳에서 그의 꿈을 배반한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지드가 소련 방문 후 낸 '소련기행'(Retour de L'URSS)은 공산주의의 폐쇄성과 획일주의를 통렬히 비난한 고발문학작품이다. 지드의 '전향(轉向)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당시 지드가 남긴 말이 있다. "소련에서는 한 사람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전체국민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똑같은 답변을 한다. 예외가 없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사회학도 에이던 포스터카터는 자칭‘김일성 팬(fan)’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82년 이후 한국을 20여 차례 북한을 두 차례 다녀온 후 달라졌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며 경제 기적을 존경하고 독재를 혐오하는 사람이 됐다"고 공식석상에서 고백했다. 북한사회의 폐쇄성 획일성 허구성을 목도한 것이다. 그 이후 자동차도 줄곧 한국의 H사 차종만을 고집하여 구입해서 몰고 다닐 정도로 한국 팬이 되었다.
현재 영국 리즈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포스터카터(56)는 90년대 초 "장차 동북아의 막강한 강국들을 당당하게 중재하는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것"이라고 한국의 미래에 기대를 걸었던 인물이다. 지금도 그런 확신을 갖고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92년에는 한반도 통일비용을 '10년간 2600억달러'라고 계산해내는 수고를 마다 않던 그였다. 유럽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라는 평을 누릴만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95년에 금강산 관광 실현을, 또 97년에는 'IMF구제금융사태'를 예측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예측은 적중했다. 다만 '20세기 이내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한국 내 진보주의자들은 매사를 대립적으로만 몰고 간다" "미래를 위해 할 일이 태산인데도 60년 전의 친일문제를 다시 꺼집어내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수신문을 윽박지르듯 탄압하고, 방송에 또다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맡기고 있다" ….
포스터카터 교수가 지난 6월 내한하여 한 세미나 석상에서 한국의 '진보(進步)세력'을 타박한 말이다. 이른바 한국의 '진보·개혁'들 앞에서 젊은 시절 한 때 주체사상에 눈멀어 지낸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 더 답답하고 안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극좌(極左)의 길을 걷고서도 '중도 우파'라고 고집하는 이 땅의 386실세들이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라는 도쿄(東京)대 교수가 있다. 그는 지난 여름 30도를 넘는 도쿄의 무더위도 마다 않고 아스팔트 길 위에서 북한 참상을 고발하는 전단을 나눠주는 일을 도맡아 했다. 1960년대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지지하던 '친북주의자'였던 그는 그 후에도 김지하 구원활동에 나서는 등 줄곧 한국의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해 왔다.
그러던 중 94년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의 실상을 전해듣고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깼다. 그는 젊은 날의 어이없는 맹신(盲信)과 방황에 대한 반성으로 지금은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직접 만들어 활동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세기 해외 지성들의 전향(轉向) 사례는 이외에도 수 없이 많다. 루이스·피셔(Louis Fisher·미국 언론인), 리처드·라이트(미국의 흑인작가), 스티븐·스펜더(영국), 아더·쾨스틀러(독일·철학), 이그나시오·시로네(伊) 등도 모두 '앙드레·지드' '포스터카터' '오가와·하루히사'와 같은 궤적을 걸은 지성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산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장미 빛 예언에 현혹되어 '반(反)파시즘' '반(反)자본주의'를 주창하며 한때 공산주의를 추종하다 그 실상을 접하고서 크게 실망하여 뒤늦게 발길을 돌린 경우들이다. 이 모두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전향'이 아닌가. (konas)
정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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