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수도고지 사수한 공해동 육군 하사...9월의 전쟁영웅
9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
국가보훈처는 공해동 육군 하사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931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출생한 공해동 육군 하사는 6.25전쟁기간 중 육군에 입대해 수도사단 기관총사수로 수도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기관총 사격으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고 고지를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2년 9월 6일 중공군에게 고지를 빼앗긴 수도사단은 제26연대가 6차례의 탈환전을 전개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임무를 교대한 제1연대가 9월 9일에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제1연대는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물리치면서 고지를 끝까지 사수했다.
특히 제1연대에 배속된 제21수색중대 기관총사수 공해동 하사의 활약이 컸다.
1952년 9월 13일 새벽 1시 15분, 적은 다섯 개의 접근로를 따라 각각 중대규모의 부대로 공격해 오며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다. 공해동 하사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실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굴의 투지로 기관총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발의 적 탄환을 어깨에 맞았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공해동 하사의 투혼에 힘입어 수도사단은 마침내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고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정부는 공해동 하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52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한편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지청천 장군은 1888년 1월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장군은 1907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1909년 폐교되자 일본 사관학교에 유학해 1912년 5월 졸업할 때까지 군사학 등을 공부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으로 독립군 간부 및 병사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1921년 3월 ‘대한의용군 총사령부’의 참모부원으로 선출됐고 ‘대한독립단’으로 개편된 후 군사고문으로 추대됐다. 같은 해 6월 하순 홍범도·안무등의 부대와 함께 고려혁명군정의회 제3연대로 편성됐다.
1925년에는 남만주의 통합 독립운동 조직이자 교민 자치조직인 정의부 군사위원장과 사령관을 겸했고, 1928년에는 만주의 유력조직인 정의부·참의부·신민부 등 3부 통합운동에 노력했다.
1930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중국의용군과 합세해 주로 하얼빈 부근의 북만주 일대에서 독립전쟁을 전개했다. 1933년 6월 30일에 중국 연변의 나자구에서 조선 회령으로 철수하는 일본군을 기습해 거둔 ‘대전자대첩’이 유명하다.
1938년 임시정부 군사학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1939년 10월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출된 뒤 군무부장을 겸임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한국광복군이 창건되어 장군은 총사령에 취임하여 해방 직후까지 한국광복군을 총지휘했다.
해방 이후에 정계에서 활약하던 장군은 1957년 1월 15일 69세로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 관련기사보기
-
- 7월의 6·25전쟁영웅 김재호 육군 일등병
- 2019년 6월의 6·25 전쟁영웅, 김문성 해병대 중위
- 전란 속 양구시민 지켜 낸 조관묵 경감...5월의 6‧25전쟁영웅
- 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4월의 6·25전쟁영웅
- 6·25 전쟁영웅 고(故) 한병구 일병 유해 68년만에 귀환
- 2월 6.25전쟁영웅에 김한준 육군 대위, 독립운동가는 김마리아 선생
- 8월의 독립운동가-김 구 선생, 6.25전쟁 영웅-홍은혜 여사
-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7월의 독립운동가
- 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
- 5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김순애 선생 부부 선정


